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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가 마틴 루터(Martin Luther)는 어느 날 대중 강연을 하면서 코페르니쿠스를 맹비난했습니다. 아시다시피 코페르니쿠스는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는 지동설을 주장한 천문학자입니다. 루터는 “어떤 초보 천문학자가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늘과 해와 별이 지구를 도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는 군요. 아마도 그 바보는 천문학의 모든 성과를 뒤엎고 싶은가 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마틴 루터가 코페르니쿠스를 얼치기 바보라고 비난하는 까닭은 천동설이 지배하던 세상에서 지동설은 아주 낯설고 불경스러운 주장이었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패러다임을 주장하는 사람은 이렇게 바보로 여겨지기 쉽습니다.
비슷한 이유로, 누군가가 아직 다가오지 않는 미래에 대해 의견을 제시하면 “그럴 듯하긴 하지만, 설마 그런 일이 일어나기야 하겠나? 흥미로운 이야기지만 현실적이지 않아.”라는 조롱 섞인 말을 듣는 경우가 간혹 있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자가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이라면 그 말은 무소불위의 힘을 행사해서 모든 구성원의 전략적 사고를 마비시키고 맙니다. 그리고 그런 조직에는 미래에 대한 통찰력이 끼어들 자리가 한 뼘도 되지 않을 겁니다. 불확실한 미래에 자신감을 갖는 자세는 나쁘지 않습니다. 어찌 보면 건강한 사고방식이죠. 그러나 불확실한 미래를 알고 있는 듯이 확신하는 태도는 버려야 합니다.
철학자 존 모티머(John Mortimer)는 “민주주의를 시험하는 것은 다수의 의견이 항상 선행돼야 한다는 점이 아니라, 소수가 어디까지 존중되냐는 점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이 스스로 민주적인 사람임을 자인한다면 미래를 이야기하는 ‘이단자’들에게 귀를 기울여야 하며, 여러분 스스로가 그러한 이단자가 되어야 합니다.
아인슈타인은 상대성 이론을 정립해서 기존의 우주관과 세계관을 뒤엎었습니다. 이렇듯 과학의 진보는 이단적 발상을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기업의 성장동력 역시 새롭고 이단적인 시각을 제시하는 사람과 그것을 수용하는 사람 사이의 조화 속에서 만들어집니다.
이탈리아는 르네상스가 화려하게 꽃피던 나라였습니다. 하지만 곧 세계의 중심에서 변방으로 몰락하고 맙니다. 영국의 시인 존 밀턴(John Milton)은 그 결정적 원인이 갈릴레이를 영원히 침묵하게 만든 것이라고 한탄했습니다.
불확실성을 정복하려 하는 자, 현실의 쳇바퀴에 머물려는 자, 아무 생각 없이 자신이 신념을 강조하는 자들을 여러분은 물리쳐야 합니다. 미래를 이야기하는 '이단자'를 포용해야 합니다. 여러분 스스로도 이단자적 시각으로 미래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것이 지속경영을 가능케 하는 경영의 덕이자 지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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