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NA 발견자 왓슨은 왜 침묵했나?   

2010. 3. 24.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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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NA 구조를 규명하여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제임스 왓슨(James Watson), 프랜시스 크릭(Francis Crick), 모리스 윌킨스(Maurice Wilkins)을 아십니까? DNA라고 말하면  ‘왓슨과 크릭’의 이름이 항상 따라 붙을 만큼 그들은 생물학계의 스타입니다. 

왓슨

윌킨스

크릭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불리함이 드러날까봐 끝까지 침묵을 지킴으로써 한 여자의 일생과 업적을 철저히 모욕한 사람들이기도 합니다. 그들이 100% 자신들의 노력으로만 DNA 구조를 규명했다는 것은 잘못 알려진 사실입니다.

DNA를 발견할 당시 그들은 케임브리지 대학 소속이었는데, 런던 킹스칼리지의 로잘린드 프랭클린(Rosalind Franklin)과 DNA 구조 규명을 위한 연구 경쟁을 벌이던 중이었습니다. 그들이 DNA가 이중나선 형태라는 결정적인 단서를 얻게 된 계기는 프랭클린이 찍은 DNA의 X선 사진이었습니다.

그녀의 동의 하에서 사진을 열람했다면 문제가 될 게 없었겠죠. 하지만 그들은 꼼수를 썼습니다. 까칠한 성격의 소유자였던 프랭클린과 그의 상급자 윌킨스는 사이가 좋지 않았습니다. 윌킨스는 왓슨과 크릭을 수 차례 만나 그녀를 헐뜯으며 심정적으로 ‘동맹’을 맺고 있었지요. 급기야 윌킨스는 프랭클린이 찍은 사진을 몰래 빼내 왓슨과 크릭에게 보여주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그녀의 사진을 보고 나서 겨우 일주일 만에 DNA 구조를 완성했습니다. 그리고 서둘러 ‘네이처’ 지에 1 페이지 짜리 논문을 게재했죠. 알다시피 1963년에 그들 셋은 노벨상의 영예를 안았습니다.

누가 봐도 도둑 맞은 프랭클린의 X선 사진이 DNA 구조 규명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음이 분명했습니다. 그러나 왓슨과 크릭은 프랭클린의 기여를 무시했고, 그녀가 암으로 1958년에 37세라는 젊은 나이로 숨지고 나서도 침묵을 지켰습니다. 그것은 명백히 정직하지 못한 태도였습니다.

로잘린드 프랭클린


왓슨은 수십 년이 흐른 1984년에 프랭클린의 모교인 세인트폴 여학교에서 연설하면서조차 끝내 정직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우리는 그녀의 데이터를 생각하기 위해서 사용한 것이지, 훔치기 위해 사용한 것이 아닙니다"라는 애매한 변명만 늘어 놓았습니다.

게다가 그녀가 가족과 관계가 좋지 않았다는, 확인되지 않는 사실을 언급함으로써 죽은 자의 무덤에 침을 뱉고 말았죠. 크릭과 윌킨스는 왓슨만큼 노골적이지 않았고 죄책감을 많이 느끼긴 했지만, 그들 역시 진실 고백에 소극적이었습니다.

미국의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Richard Feynman)이라면 그들의 태도를 ‘정직하지 못한 행동’이라고 일갈했을 것 같군요. 그는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습니다.

과학적 사고는 전적으로 정직성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 예를 들어 어떤 실험을 했다면, 여러분에게 불리한 것까지 모두 말해야 한다. 유리한 것만 말해서는 안 되며, 다른 방식으로 설명될 가능성에 대해서도 말해야 한다....(중략)....여러분의 해석에 미심쩍은 점이 있다면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다 말해야 한다. 여러분은 자신의 이론에 잘 맞는 사실 뿐만 아니라 잘 맞지 않는 사실까지 모두 알려 주어야 한다.

정직 = 불리한 것까지 밝히는 용기

정직은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주장할 때 옳은 면뿐만 아니라 불리한 증거와 배경까지 함께 이야기함을 의미합니다. 정직은 솔직하게 자신의 결점을 드러내는 것입이다. 불리한 면을 감추고 침묵을 지키는 것은 부정직한 태도입니다. 

파인만이 초전도성 연구를 진행할 때 보인 언행은 그가 말만 번드르르한 지식인이 아니라 정직을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과학자임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초전도성은 금속을 매우 낮은 온도로 냉각했을 때 전기 저항이 완전하게 사라지는 현상을 말합니다. 파인만은 초전도성이 나타나는 이유에 대한 나름의 이론을 정립했으나 다른 물리학자 세 명(존 바딘, 리언 쿠퍼, 존 슈리퍼. 이들은 1972년에 노벨 물리학상을 공동 수상한다)이 BCS이론으로 불리는 새로운 견해를 내놓자 자신의 것을 버리고 즉각 그들의 이론이 옳음을 인정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이론을 폐기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기회가 있을 때마다 공식석상에서 BCS이론의 우수성을 칭찬했지요. 존 슈리퍼(John Schrieffer)는 파인만의 정직한 태도에 감명을 받아 “과학자가 자신이 실패한 분야에서 남의 이론을 그렇게 자세히 설명하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파인만의 전기를 쓴 물리학자 존 그리빈(John Gribbin)이 “그의 정직성은 다른 사람들이 같은 함정에 빠지는 것을 막아 주었고, 틀린 나무에 오르면서 자기가 바르게 간다고 속아 넘어가는 것을 스스로 경계하는 능력을 명료하게 보여줬다”고 썼습니다. 그의 행동은 왓슨 트리오가 보여 준 자기방어적인 부정직함과 반대되는 것입니다.

평소에는 아주 정직한 사람도 자신에게 불리한 점이 발견됐을 때 침묵을 지키거나 솔직하게 말하지 않습니다. 자신에게 돌아올 불이익을 염려하기 때문입니다. 정치인들은 사건이 터지면 대개 그런 행태를 보입니다. 

자신에게 불리한 것을 감추지 말고 떳떳이 밝히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자신의 생각이 틀릴 수 있음을 인정하면서 사물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바라보려 노력해야 합니다. 그것이 왓슨이 다다르지 않은 정직의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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