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숭이가 아니라면, 탈출하세요   

2010. 2. 17. 09:00

어린이대공원 내에 있는 동물원에 가면 원숭이들이 사람들이 던져주는 과자를 받아 먹으려고 철망에 매달려 있는 모습을 쉽게 봅니다. 박수를 치며 이리로 던지라고 하는 놈도 있고, 어떤 놈은 자신에게만 과자를 던져주지 않는다는 듯 화가 나서 소리를 지르기도 하지요. 

애가 타서 낑낑거리는 녀석도 있습니다. 먹이를 구하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사육사들이 끼니 때마다 충분한 양의 먹이를 줄 텐데 놈들은 왜 그렇게 먹는 것에 탐닉할까요?


왜냐하면 매우 지루하기 때문입니다. 좁은 우리에 갇혀 있다는 구속감과 몇 안 되는 동료 원숭이들과 함께 지내야 하는 지겨움을 해소할 유일한 방법은 그저 먹는 것 뿐입니다. 원숭이들은 관객이 던져주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게걸스럽게 입으로 가져가고 배가 다 차도 끊임없이 먹어댑니다. 

관객들이 던져주는 과자 받아먹기는 원숭이에게는 지루함을 이겨내는 놀이일 뿐입니다. 하나라도 더 받아먹으려고 서로 다투는 것은 경쟁 욕구를 자극할 뿐만 아니라 뱃속에 추가적인 에너지까지 저장할 수 있으니 일석이조죠. 

원숭이가 아닌 다른 동물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는 대로 다 받아 먹다가 배의 압력 때문에 질식해서 죽는 곰이 있습니다. 어떤 고릴라는 고대 로마의 귀족들이 깃털로 목구멍을 간질여 먹은 것을 토해내고 다시 먹는 행위를 즐겼던 것과 똑같이 하기도 한답니다. 동물원 관리자들이 동물들에게 먹을 것을 던져 주지 말라는 건 이런 이유 때문이죠. 이처럼 동물들은 무료한 상태에 빠질수록 식욕이나 성욕 같은 ‘익숙한 자극’에 탐닉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사람도 똑같습니다. 군인들을 보면 알 수 있죠. 영내로 제한된 이동의 자유. 이성(異性)과 차단된 생활.매일 똑같은 또래집단. 지겹고 지루할 만합니다. 자유가 억압된 상태에서 동물이나 인간은 자연스럽게 본능의 충족에 집중합니다. 군인들이 사회에서는 거들떠보지 않을 초코파이를 보면 눈이 초롱초롱해지는 이유도 비슷한 이유 때문은 아닐까요? 

먹는 행위에 빠지는 것 이외에 동물들은 평소와 다른 이상한 행동을 하기도 합니다. 사자 같은 고양이과 동물들은 지루함이 극에 달하면 죽은 새나 죽은 쥐를 공중으로 높이 던지고 나서 그것을 쫓아가서 잡아채는 행동을 반복합니다. 마치 살아 있는 먹잇감을 사냥하듯이 말이다. 원래 고양이과 동물은 이미 죽어 버린 먹이는 먹지 않고 오직 살아있는 먹이만 잡는 습성이 있습니다. 

놈들이 죽은 먹이를 공중으로 던져 ‘날도록’ 만드는 이유는 그렇게 하면 살아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죽은 먹이를 날려서 잡아 채는 행위는 나름대로 무료함을 극복하려는 놈들만의 ‘스포츠’인 셈이죠.

이처럼 늘어질 대로 늘어진, 별다른 자극 없이 평탄하고 지루한 일상은 우리 몸에 무척 해롭습니다. 자극이 빈곤하고 늘 한정되어 있는 일상의 범주는 폭식과 같은 잘못된 자극원(原)에 탐닉하도록 만들기 때문에 비만뿐만 아니라 각종 합병증을 유발할 수 있지요. 

혹은 고양이과 동물들이 그러하듯이 정신적으로 이상이 올지도 모릅니다. 지루할 정도로 편안한 일상에 액센트를 가할 따가운 자극이 없다면 우리는 익숙한 자극에 몰두할 수밖에 없으며, 심할 경우 삶의 의미를 상실하거나 부정하게 되는, 매우 위험한 지경에까지 이를 수 있지요.

누군가에게 실제 있었던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어느 날 TV 뉴스에서 교통사고로 일가족이 한꺼번에 죽은 사건이 보도되었습니다. TV를 보던 그는 소식을 전하는 비통한 표정의 앵커를 무감각하게 쳐다보다가 “불쌍한 저 사람들 대신에 내가 대신 죽어 줄 수도 있는데…” 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그 이후 그는 신문이나 TV에서 사망 사건이 보도될 때마다 가능하기만 하다면 대신 죽고 싶단 생각이 들곤 했답니다. 왜 그런 마음이 드는지 그 자신도 알지 못했습니다.

그는 삶에 대해 아무런 의미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죽음에 대해서도 일말의 두려움을 느끼지 못했지요. 삶으로부터 행복을 느끼지는 못했지만, 그렇다고 절박하거나 괴롭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의미 없이 비슷비슷한 일상이 매일 반복되는 것에 숨이 갑갑했다고 합니다. 사고로 숨진 사람들을 대신에 죽을 수만 있다면 자신을 조여오는 삶에서 탈출할 수 있으리라 믿었죠. 그에게 있어 삶은 그저 덤이었습니다.

그랬던 그가 가까스로 삶의 의미를 찾게 된 것은 최근의 일입니다. 그를 변화시킨 것은 바로 처음으로 떠난 스위스 여행이었습니다. 만년설이 머리를 덮고 있는 몽블랑 아래 드넓은 초원. 산기슭 여기저기에 띄엄띄엄 자리잡은 장난감처럼 아기자기한 샬레(chalet, 스위스 전통 가옥)들. 

눈이 시리게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산을 휘감고 올라가는 빨간 산악열차의 달리는 소리. 그는 가슴이 벅차 올랐습니다. ‘세상은 이렇게 넓고 볼 것이 많구나.’ 산에서 산으로 부는 바람 속에 서서 그는 자신이 살아있다는 촉감과 후각을 맘껏 느꼈습니다.

그는 가만히 자신에게 삶의 새로운 의미를 일깨우는 가슴 속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살아있음은 갑갑함이 아니라 기쁨이고 희열이었습니다. 더 이상 다른 이에게 선뜻 내어 줄 수 있는 덤이 아니라 죽을 때까지 소중히 간직해야 할 선물이었지요. 자신이 스스로 밀어 낸 삶이 가슴을 꽉 채우는 의미로 되돌아 온 경험은 그가 고백했듯이 감격 그 자체였습니다.

니체는 “왜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상황도 견딜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삶이 무료하고 갑갑하고 짜증난다면, 그래서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해 혼돈스럽고 무감각하다면 자신을 억류한 철창을 부수고 당장에 여행을 떠나야 합니다.

여행은 새로운 자극의 체득을 통해 삶의 의미를 탐색할 수 있는 가장 손쉽고 안전한 방법입니다. 폭식이나 폭주, 혹은 마약을 통해서도 색다른 자극을 경험할 수 있지만, 그것은 말초적이고 일회적인 자극에 불과하죠. 

답답한 가슴을 활짝 열고 지금 바로 여행을 떠나세요. 싱그러운 바람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발을 옮기며 새로운 풍경이 가슴을 지나 내 삶 안에 가만히 자리잡는 걸 느껴 보세요. 점심을 먹고 산책하는 공원길도 짧지만 훌륭한 여행입니다. 낯선 버스를 타고 아무 곳에나 내려서 어슬렁거려보는 것도 좋죠. 뜻하지 않는 즐거움과 행운이 거기에서 여러분을 기다릴지 누가 아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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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1. 소심쟁이 2010.06.04 10:53

    평범하지만 가슴에 와 닿는 진리인 것 같습니다.
    늘 알면서도 선뜻 실행하기 힘든 것이기도 하고요.
    새삼 자신을 돌아보게 만드는군요.
    이번 주말 짧은 여행이라도 다녀와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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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항상 배워갑니다 2013.06.21 10:23

    여름에 해외여행을 계획해뒀습니다. 10년전 공부를 그만두고 귀국할때 막막한 심정으로 떠나왔던 영국을 가본답니다. 영국은 뭐 별로 변하지 않았겠지만 저는 많이 변했지요. 추억이 있는 곳으로, 동물원 우리 안을 떠나 뭐 짧은 시간이긴 하지만 떠난다는 생각을 하니 즐겁습니다. 니체 이 양반 말씀이 맞네요. 의미가 있다면 견딜 수 있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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