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이 다 가는 소리   

2009. 6. 28. 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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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에 여행 준비를 하느라 늦게 잠에 든 탓에 아침에 늦잠을 잤습니다. 9시에 일어나 아욱국에 밥 말아 먹고서야 겨우 정신이 들더군요. 후텁지근한 하루를 예고하듯이 창밖으로 수증기를 잔뜩 머금은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습니다.

어영부영 오전시간을 보내다가 11시쯤 집 근처의 마트에 갔습니다. 장을 볼 목적이었지만, 집에서 찐득한 더위와 싸우느니 매장에서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쐴 요량도 있었지요. 우리 가족처럼 마트로 피서(?)를 온 사람들이 많아서인지 마트 주차장은 제법 차로 북적였습니다.

무빙워크를 타고 오르는데 누군가가 알은 체를 하더군요. 웬 아저씨가 손을 흔드는데 '어, 누구지?' 처음엔 정체를 알지 못해 의아했습니다. 가까이 다가가보니 예전에 직장을 다닐 때 자주 만나던 입사 동기였습니다. 풋풋했던 시절 함께 한 이를 세월의 흔적이 깊게 패인 얼굴로 해후하니 그 느낌이 생경했습니다. 악수하던 손에서 십수 년의 세월이 우리에게 남긴 허약함이 감지되는 듯했습니다. 나중에 연락하마, 짧은 인사 후 헤어졌지요.

마트에서 가져온 물건을 냉장고와 다용도실에 채워 넣은 후, 우리 가족은 도서관으로 향했습니다. 집 앞의 초등학교에서 얼마 전 개방도서관을 열었다고 해서 찾았지요. 도서관이 턱없이 부족한 우리나라에서 학교 시설을 이용하여 도서관'망'을 확충하면 좋을 거라 평소 생각해왔는데, 우리집 근처에 개방도서관이 생겨서 아주 기뻤습니다.

교실 두 개 정도 되는 넓이의 작고 아담한 도서관이었습니다. 대부분의 책들은 초등학생들이 엄마 아빠가 읽은 책을 기증하는 방식으로 확보됐더군요. 그래서 권종이 다양하지 않고 권수도 적었지만, 큰 기대를 하지 않은지라 오히려 그러한 아담함과 '가난함'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읽을 만한 책이 적더라도 그냥 흘려 보내기 쉬운 휴일 오후에 냉방 잘 되는 도서관에 앉아 편안하게 책을 읽을 수 있겠다 싶으니 고마웠습니다.


도서관을 나와 집으로 가는데, 장모님과 처형네가 우리를 반깁니다. 같이 저녁을 먹기로 했지요. 저녁을 먹기엔 좀 이른 시각에 집 근처 삼계탕집으로 향했습니다. 사람이 별로 없을 줄 알았는데, 빈 테이블을 찾기가 어려웠습니다. 여름은 여름인가보다 했지요. 덥다고 찬 음식을 요즘 자주 먹었는데, 뜨거운 국물을 마시니 땀구멍이 활짝 열린 듯 땀이 흘렀습니다. 이열치열, 제대로 했습니다.

저녁을 먹고 공원에 위치한 콩다방에서 어른들은 커피를 마시고 아이들은 잔디밭에서 공을 차게 할 계획이었는데, 굵은 빗방울이 차창을 때리더군요. 아쉽지만 그대로 헤어질 수밖에요. 공놀이할 생각에 잔뜩 기대에 찼던 아들녀석은 내내 울상이다가 끝내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다음을 기약할 수밖에요.

집에 돌아와 어제 널어놓은 빨래를 털고 진공청소기를 돌리니 또다시 땀이 비오듯 합니다. 샤워를 하고 에어컨을 켰지요. 그 아래 앉아 시원한 바람을 쐬며 이렇게 블로그에 글을 씁니다. 언제 그랬냐는듯 피부가 보송보송하니 상쾌합니다. 맥주 한 잔 곁들이면 딱이다 싶습니다. 아, 그러고보니 아까 마트에서 사온 맥주가 있군요. 이 글을 포스팅하고 시원하게 들이켜야겠습니다.

"지민군, 이제 잘 시간이에요~~!"   
"아빠, 안녕히 주무세요~~!"

일요일이 다 가는 소리가 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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