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조동진의 음악은...   

2009. 6. 23. 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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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등학교에 다닐 때 친구들은 소방차, 박남정, 김승진, 박혜성, 김완선, 이지연과 같은 하이틴 스타들에 열광했었지요. 지금 생각하면 촌스럽기 짝이 없지만, 핑클 파마에 스노우 진 자켓은 기본이고 거기다 승마바지를 곁들이면 멋쟁이로 통하던 시절이었습니다. 담다디로 혜성 같이 등장한 꺽다리 이상은의 춤을 추고 '컬처 클럽(보이 조지)'의 Karma Chameleon을 따라 부르는 것이 학교 내에서 대유행하기도 했습니다.

허나 저는 그런 음악에 매력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맥박보다 빠른 템포의 음악을 싫어한 저의 기질 때문인지, 남들이 다 좋아하는 대상에겐 이상하게 호감이 가지 않는 반골 성향 때문인지 모르겠습니다. 건방진 생각이지만, 제딴엔 그런 유행에 열광하는 친구들의 모습이 별스러워 보였습니다. 미안한 말이지만, 조금은 한심해 보이기도 했습니다. 저에겐 저만의 음악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중고등학교 때 저를 사로잡은 음악은 조동진의 노래였습니다. 라디오에서 그의 노래 '나뭇잎 사이로'를 듣던 순간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합니다. 조용히 읊조리는 듯한 목소리, 단순하면서 깔끔한 멜로디 흐름, 서정적인 가사에 저는 매료되고 말았습니다. '아, 이런 노래가 있구나!' 온몸에 전율이 일었습니다. 트로트 음계를 기반으로 한 타령조의 노래와는 차원이 다른 그의 노래는 맑고 투명했습니다. 

그날 이후 저는 조동진의 음반(실은 카세트 테잎)을 모두 사들였지요. 그가 워낙 과작인지라 음반수가 많지 않아서 돈은 별로 들지 않았습니다. 매일 그의 노래를 들으며 공부했습니다. 주위 사람들은 그런 저를 보고 애늙은이 같다고 놀리곤 했죠. 그리고 제발 꺼달라고 하더군요. 그의 노래를 들으면 '졸려 죽겠다'고 말입니다.

남들은 조동진의 음악을 들으면 하품을 해대며 몸이 나른해진다며 핀잔을 주기 일쑤였지만 저는 이상하게도 정신이 더 맑아지고 또렷해졌습니다. 그가 튕기는 기타줄 소리의 떨림과 나즉이 깔리는 바리톤의 음성은 신산하고 고된 수험생의 마음을 쓰다듬는 봄의 미풍 같았지요. 맥박이 느려지고 숨소리가 작아지면서 이 세상엔 오로지 나만이 존재하는 듯했습니다. 그의 음악은 명상 그 자체였지요.

그의 노래는 다 좋지만, 그 중에 제일 좋아하는 노래는 위에서 말한 '나뭇잎 소리'를 비롯해서 '제비꽃', '일요일 아침', '저문 길을 걸으며', '해 저무는 공원', '차나 한잔 마시지' 입니다. 이 중에서 '일요일 아침'이란 노래만 들으면 가슴 밑바닥이 저며 오는 야릇한 느낌을 받습니다. 그 이유는 가사 속에 숨어 있습니다.

또 '저문 길을 걸으며'를 들으면, 궁핍했던 대학 시절이 생각나 눈물이 핑 돌기도 합니다. 이제와 부끄러울 것도 없지만, 아버지의 사업이 잘못된 탓에 겨울방학인데도 집에 올라가지 못했지요. 겨울학기가 열리지 않는 시기엔 기숙사를 폐쇄하기 때문에 어쩔 수없이 기숙사에 몰래 숨어 들어가 추위와 싸우며 새우잠을 자야 했습니다. 아침이면 늘 '살아났구나'란 안도감에 잠을 깨곤 했습니다. 그때 이불을 푹 뒤집어 쓰고 듣던 노래가 이 노래였습니다.

20년이 훌쩍 지난 지금 조동진의 노래를 다시 듣습니다. 그의 노래 한마디마다 추억이 한가닥씩 딸려 나오며 방 안을 둥둥 떠다닙니다. 기쁜 기억이든 슬픈 기억이든 이제는 모두 한가지 색으로 빛납니다. 모두 행복으로 갈무리할 수 있는 젊은 날의 초상입니다. 

조동진은 96년을 끝으로 새 음반을 내지 않습니다. 이제 63세라는 적지 않은 나이 때문인 듯 합니다. 하지만 저는 그의 노래를 고대합니다. 늘 삶을 깊은 시선으로 바라보던 음유시인이 삶의 후반부에 이르러 어떤 노래로 고된 삶들을 위무할지 궁금합니다. 

그가 2001년 프로젝트 음반 '바다'에 마지막으로 남긴 노래 '빈 하루'를 들으며, 글을 마칩니다. 
(이 노래는 조동진의 홈페이지 http://www.jodongjin.com  에 들어가면 들을 수 있습니다. 음질이 좋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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