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다시피 좋은 취미를 즐기는 것은 행복감을 높이는 방법입니다. 370명의 미니아폴리스 주민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정원 가꾸기 같은 취미가 도시 주민들의 행복감 증진에 가장 좋은 취미라고 합니다. 같은 정원 가꾸기라 해도 장식용 가드닝보다 야채 키우기가 삶의 의미를 느끼게 하는 데 더 좋은 방법이고 혼자 사는 사람에게도 좋은 취미라고 하네요.
그러나 취미 즐기기는 공짜가 아닙니다. 무언가를 생산할 시간을 취미 생활에 쏟아야 하기 때문이죠. 그 시간에 일을 하면 더 많은 것을 생산할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인간은 기계가 아니잖습니까? 쉬지 않고 일하면 당장은 성과가 높아지겠지만 장기적인 관점으로는 커다란 손실을 감수해야 할 겁니다. 이것은 상식이죠.
그래도 믿지 못하겠다면 연구 결과 하나를 소개해 드릴게요. 키아라 켈리(Ciara M. Kelly)라는 경영학자는 달리기, 공예, 암벽등반, 스탠드업 코미디 등 취미생활을 즐기는 129명의 일반인을 모집하여 7개월 간의 연구에 참여시켰습니다. 그리고 취미생활을 얼마나 진지한 태도로 즐기고 있는지, 취미생활에 얼마나 시간을 투여하고 있는지를 1개월마다 한 번씩 질문했습니다. 그런 다음, 각자의 생업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고 있다는 믿음, 즉 ‘자기 효능감(self-efficacy)’를 측정했죠.
분석을 해보니 보통 수준보다 취미생활에 시간을 많이 보낼수록, 그리고 자신의 취미를 진지하게 여기는 사람일수록 자기 효능감(자신의 업무 수행 능력이 뛰어나다는 믿음)이 증가하는 모습이 관찰됐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상식과 일치하는 결과입니다.
하지만 여기에 흥미로운 사실이 숨어 있습니다. 켈리는 각자의 취미가 업무와 얼마나 연관성이 있는지, 즉 유사성을 따로 조사했는데요, 취미 생활이 자기효능감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경우는 '업무와 유사하지 않은 취미'를 진지하게 즐길 때였습니다.
반면에 '업무와 유사한 취미'를 진지하게 즐기는 사람들의 자기 효능감은 시간이 갈수록 떨어지는 역효과가 관찰됐습니다. 예를 들어 직업이 경영자인 사람이 경영서적을 탐독하는 것을 취미로 즐긴다면 독서 생활은 ‘내가 훌륭하게 조직을 경영하고 있다’는 믿음을 오히려 떨어뜨릴 수 있습니다. 격투기 선수가 취미로 암벽등반을 즐기는 것, 가수가 악기 연주를 취미로 갖는 경우도 비슷할 겁니다.
인간의 의지력은 한정된 자원입니다. 취미가 업무와 유사하면 같은 자원을 서로 차지하기 위해 취미와 업무가 서로 다투는 형국이 됩니다. 이럴 때 취미는 레저 생활이라기보다 업무의 연장일 뿐이죠. 수의사를 직업으로 가진 사람에게 반려동물 돌보기는 엄밀히 말해 취미가 아닙니다. 산업 디자이너가 풍경 수채화를 즐기는 것 역시 취미가 아니죠.
과학자라면 암벽 등반이 좋은 취미이고, 경영자라면 그림 그리기가 좋은 취미입니다. 나 같은 자칭 ‘경영 작가’에게는 작은 마당 가꾸기나 워크맨 수리가 제법 훌륭한 취미죠. 자신의 업무를 ‘완전히’ 잊어 버리도록 해주는 '엉뚱한 활동'이야말로 업무의 고됨을 씻어내는 진정한 의미의 취미입니다.
저는 이 글을 쓰기 전에 어제 도착한 정크 워크맨을 분해해 수리했습니다. 돋보기를 들여다보며 녹아붙은 고무벨트를 닦아내느라 눈이 빠질 것 같지만, 그 덕에 이 글을 빠르게 쓸 수 있었습니다. 저의 자기 효능감도 1퍼센트쯤 높아졌겠죠?
*참고논문
Kelly, C. M., Strauss, K., Arnold, J., & Stride, C. (2019). The relationship between leisure activities and psychological resources that support a sustainable career: The role of leisure seriousness and work-leisure similarity. Journal of Vocational Behavior, 103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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