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제가 번역한 책 '무기가 되는 알고리즘'이 세상에 나왔습니다. 제목에 '알고리즘'이라는 단어가 포함돼 있어서 IT 관련 책이 아닌가 오해할 것 같은데, 사실은 리더가 하루에 하나씩 실천해야 할 것을 이야기하는 책입니다. 리더십 책에 가깝습니다.
당초 '옮긴이의 글'을 책에 싣기로 했으나 출판사측이 편집 단계에서 게재하지 않기로 결정했는데요, 그래도 이 책을 선택하는 데 참조하십사 하는 마음으로 여기에 공유합니다.
---------
20여년 전에 나는 외국계 컨설팅 회사를 다니다가 ‘1인 컨설팅 사’로 독립했다. 그때 나는 여러 기업이 겪고 있는 ‘시스템 과부하’ 증상을 해소하는 것을 나의 미션으로 삼았다. ‘Not Plus, But Minus. 직역하면 ‘더하지 말고 빼자.’ 문제를 해결하고 효율을 높인다는 취지로 도입된 각종 시스템과 제도가 생산성과 성과를 향상시키기는커녕 직원들이 자유롭게 활동하지 못하도록 족쇄가 된다든지, 그 복잡성 때문에 눈앞의 단기 성과에 매몰되게 만든다든지, 단순하게 접근해도 되는 문제에 복잡한 분석을 들이대는 바람에 오히려 문제 해결을 어렵게 한다든지 등 문제가 심각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이렇듯 ‘Not Plus, But Minus’는 경영 시스템이 복잡해지는 것을 경영의 고도화 혹은 과학화라고 오해하는 분위기를 깨야겠다는 나의 신조가 담긴 문구였다.
“평가제도를 없애라.” 나는 CEO나 인사담당자들을 만날 때마다 이 말을 주저없이 던졌다. 직원을 평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평가를 해야 연봉을 결정할 수 있는데, 평가를 없애라니 이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인가 싶었을까? 상대는 늘 놀란 눈을 하며 이유를 물었다.
평가를 없애라는 내 ‘공격적 제안’에 워낙 반발이 심했기에, 그리고 예상 질문이 거의 비슷했기에 반격할 준비가 되어 있었던 나는 평가를 없애야 하는 이유를 논리적으로 설명했다. 연구 논문으로 검증된 결과들을 제시하며 평가제도가 일으키는 다양하고 심각한 문제를 지적했다. 심각한 표정으로 듣던 상대는 내 설명이 다 끝나면 십중팔구 이렇게 말했다. “잘 알겠습니다. 하지만 평가를 없애면 그 대신 무엇을 해야 할까요?”
이 질문의 기저에는 ‘평가를 없애면 직원들이 일을 안 할 것이다.’라는 우려가 깔려 있었다. 직원들이 열심히 일하도록 무언가 강제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고 덧붙였으니까. 대안을 달라는 뜻인데, 나는 짐짓 모른 척 하면서 이렇게 대꾸하곤 했다. “평가를 없애면 됐지, 또 뭘 하려고 하세요?”라고. 그러면 상대는 아까보다 더 깊이 미간을 찡그렸다. 속으로 ‘이 사람이 장난하나?’ 싶었을 것이다. 나는 잠깐 침묵을 유지하다가 상대에게 평가를 없앴을 때의 대안을 차근차근 제시했다. 물론 먼저 평가를 없앤 타사의 사례를 들어가면서.
하지만 나는 자괴감을 자주 경험했다. 그렇게 자세히 설명하고 타사 사례를 들어가며 이해를 시켜도 이미 화석처럼 박힌 제도를 없애려고 시도한 회사는 손에 꼽을 정도였다. 평가의 대안을 제시해도 평가만큼의 강제성과 압박이 없다는 이유로 ‘까이기’ 일쑤였다. 상시 피드백을 통해 직원의 성과 창출 과정을 꾸준히 모니터링하고 지원해야 하는 것이 점수 매기듯이 1년에 한두 번 평가하는 제도보다 훨씬 근본적이고 효과적이라는 나의 주장은 효율과 일괄 조치를 좋아하는 경영자들에게 잘 먹히지 않았다. 경영의 복잡성을 해제하고 ‘심플’한 기본으로 돌아가자는 담론에 다들 동의하면서도 정작 실행은 주저하고 ‘그래야 하는 이유’를 너무나 따져 묻는 경영자들이 꽤나 많다는 데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여러 책을 번역하면서 종종 드는 생각이 있는데 바로 ‘그때 이 책을 알았더라면….’라는 아쉬움이다. 이 책 ‘비즈니스 메이드 심플’이 그때 나왔더라면 ‘더하지 말고 빼라’는 나의 ‘고독한’ 외침을 든든히 지지해 주었을 텐데. 하지만 지금이라도 이 책이 나온 것이 오히려 잘된 일이다. 업계를 돌아보면 많은 기업들이 복잡한 시스템의 무게에 짓눌려 있음을 깨닫고 경영의 기본으로 돌아가려는 움직임이 점차 주류가 되고 있다. 내가 욕을 먹어가며 줄기차게 외친 ‘평가를 없애라’는 주장이 이제 인사관리의 메인 테마 중 하나가 됐다는 게 단적인 예다. 이런 분위기 하에서 이 책은 리더들을 ‘심플’한 경영의 기본으로 돌아가도록 돕는 가이드로서 역할을 충분히 수행할 것이다.
이 책은 리더 본인의 마인드 전환과 정립뿐만 아니라 마케팅, 연구, 영업, 협상 등 경영 전반의 기본을 망라한다. 하루에 한 꼭지씩 60일간 읽으며 실천해가는 구성이 참신하고 ‘심플’하다. 저자는 이 책을 몇 번이고 꼼꼼히 읽는다면 경영대학원에 지불해야 할 수천만 원의 등록금을 아낄 수 있다고 장담한다. 과장이 살짝 심하다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그만큼 ‘심플’한 경영의 기본을 잘 다지고 반복 실천하는 것이 경영대학원에서 복잡한 경영 이론을 배우는 것보다 훨씬 유용하고 값지다는 점에서 저자의 주장에 동의한다.
지면을 빌어 저자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전한다. 저자가 이 책에서 제시한 미션 수립 프레임워크로 모 회사에 미션 재정립 제안서를 제출해 프로젝트를 수주할 수 있었다. ‘히어로’의 여정으로 미션 수립 과정을 설명한 것이 클라이언트 측에 참신하게 느껴졌던 모양이다. 이 책이 매우 실용적이란 말에 이보다 강력한 증거가 있을까 싶다. (끝)
유정식의 경영일기 구독하기 : https://infuture.stibee.com/
'[연재] 시리즈 > 유정식의 경영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삼체>에서 발견한 권위주의의 포악성 (15) | 2024.04.16 |
---|---|
이번 총선을 보며 든 몇 가지 생각 (18) | 2024.04.15 |
'취약한 리더'가 훌륭한 리더입니다미리보기 (10) | 2024.04.11 |
이런 정치인은 다음부터 안 봤으면 좋겠습니다 (0) | 2024.04.09 |
내가 좋아하는 여성 보컬 3인의 앨범 (3) | 2024.04.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