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매사추세츠 주의 보스턴에서 워싱턴 D.C. 까지 거리는 약 700 km로 자동차로 8~9시간 걸리는 구간입니다. 이 두 도시 사이에 필라델피아, 뉴욕, 하트퍼드 등 비즈니스 중심지가 밀집되어 있기 때문에 사업상 필요로 비즈니스맨들의 이동이 많죠. 이 황금노선의 교통 수요를 차지하기 위해 철도 회사 앰트랙(AMTRAK)은 아셀라(Acela)라고 명명한 고속열차를 운행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앰트랙의 최대 경쟁자는 항공사였는데요, 항공 서비스에 익숙한 고객을 아셀라로 끌어당기는 것이 사업 초기의 선행과제였습니다. 앰트랙은 아셀라를 이용하는 것이 비용으로 보나 서비스로 보나 비행기보다 낫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차별성을 부각시켰죠.
이처럼 앰트랙은 항공사를 이기려고 여러 노력을 기울였는데요, 아셀라의 내부 디자인이 비행기를 능가하기를 원했습니다. 하지만 그게 중요하지는 않았습니다. 고객들이 기차 대신 비행기를 선택하는 이유가 인테리어 디자인에 있지 않았던 것이죠. 고객들은 역에서 기차를 대기하는 시간을 지루해 하고 표를 구매하는 과정을 불편해 했습니다. 그래서 '이 돈이면 그냥 비행기를 타고 말지'라고 했던 겁니다.
처음에 인테리어 디자인 작업을 의뢰 받았던 IDEO사는 앰트랙의 경영진에게 객차의 인테리어 디자인보다 더 큰 그림을 봐야 한다고 역으로 제안했습니다. 고객이 아셀라를 이용하려고 역사에 들어서고 목적지에 도착하여 역사를 떠나기까지 일련의 고객 동선에 아셀라만이 제공할 수 있는 ‘고객 경험’을 심어 놓아야 한다는 점을 설득했죠.
IDEO는 매표소, 대합실, 고객 라운지, 플랫폼 등 모든 고객 접점에 아셀라의 이미지를 강력하게 내보이도록 아셀라의 로고, 직원들의 드레스 코드, 열차의 외관, 객차 내부 등을 일치시키는 통합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그 결과, 아셀라는 비행기와 차별되어 특별한 고객 경험을 제공하는 서비스로 자리잡을 수 있었죠. 이 사례는 부분이 아니라 전체를 조망해야 한다는 교훈을 줍니다.
많은 기업에서 문제 해결을 빨리 해야 한다는 이유로 문제의 원인이나 해법을 단순화시키려는 관성을 보입니다. 직원들이 평가제도나 연봉에 불만을 제시하며 경영진을 압박해 온다면 인사제도를 개선하여 직원들과 타협하고자 하고, 고객이 경쟁사의 제품에 열광하기 시작하면 제품의 성능이나 디자인을 획기적으로 개선하면 빼앗긴 고객을 되찾을 수 있다고 믿죠. 이렇게 단순화한 근본원인에 단순화된 전략을 대입시킵니다.
하지만 단순화된 전략으로는 직원 불만의 근본원인이 인사제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출근해서 퇴근하기까지 접하는 모든 사람들이 유발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갈등과 괴로움에 있음을 잡아내지 못합니다. 고객이 경쟁사에 매료되는 이유가 경쟁사로부터 느끼는 신뢰, 배려, 끈끈한 소속감 때문임을 간파하지 못하죠.
어쩌면 근본원인이 무엇인지 알고 있으면서 ‘귀찮으니까’ 단순화를 통해 문제가 해결되기를 희망하는 것일지 모릅니다. 말하자면, 단순화에 도박을 거는 셈입니다. 앰트랙의 경영진은 열차와 비행기를 놓고 무엇을 탈지 고민하는 고객의 선택 상황을 객차의 인테리어 디자인 문제로 단순화시켰지만, IDEO는 문제를 오히려 확장시키고 복잡하게 만듦으로써 궁극적이고 획기적인 해법을 찾아냈습니다.
창의적이고 획기적인 전략은 문제의 복잡성을 있는 그대로 바라봐야 얻어지는 고통의 산물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단순화가 항상 좋은 것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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