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는 성공의 어머니가 아니다   

2008. 7. 10. 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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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흔히 말한다. 또 '실패를 성공의 기회로 생각하라'고 여러 현자들은 이야기한다. 옳은 말이다. 하지만 이 말들을 각각 열 번씩 되뇌어 보라. 실패와 성공 중에 어떤 단어에 힘이 들어가는가? 아마 성공에 악센트를 두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이런 말들이 은연 중에 풍기는 뉘앙스로 볼 때, 의도와는 달리 실패 자체보다는 성공에 더 큰 가치를 부여하고 있다는 점을 조심해야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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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 베케트 (출처 : 네이버)

이 격언들 때문에 저 높은 곳에 자리잡은 성공의 모습이 자동적으로 연상된다면 우리는 더 초라해지고 괴로울 수밖에 없다. '성공을 위한 실패'를 강조하는 이런 충고들은 '성공의 반대말이 실패'임을 더 각인시키고 성공과 실패 사이의 괴리를 더욱 크게 느끼도록 만든다. '그것을 달성해야 하는데 이번에도 실패했구나. 언제쯤 그걸 이룰 수 있을까?'란 생각 때문에 절망감만 더욱 키운다.

실패에 보다 현명하게 대처하는 방법은 실패를 '성공을 위한 실패'가 아니라 '더 나은 실패'라고 인식하는 것이다. 성공과 실패를 별개의 개념으로 떨어뜨려 놓는 것이다. '이번에도 실패했군. 그렇지만 저번 실패보다는 조금 나아졌으니 괜찮아'라고 생각하며 다음에는 지금의 실패보다 '더 나은 실패'를 위해 달려나가는 것이다. '고도를 기다리며'라는 희곡을 쓴 사무엘 베케트가 "또 실패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좀더 세련되게 실패했다"라고 말했던가? 실패는 성공이 좌절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인생을 좀더 세련되게 만들어가는 방법을 알아가는 과정이다.

실패 = 인생을 좀더 세련되도록 만드는 과정


성공은 온 힘을 다해 추구해야 할 숭고한 가치는 결코 아니다. 어제의 실패가 어제보다 나은 방법으로 오늘을 대하도록 하고, 오늘의 실패가 오늘보다 더 나은 방법으로 내일을 만들어 가도록 이끌면, 그 과정에서 성공은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것이다. 실패하는 과정 중에 성공이라는 단어가 끼어들기 시작하면 실패는 긍정적인 것이 아니라 일종의 죄처럼 느껴지고 그토록 원하는 성공의 언저리에서 무너지고 만다.

노벨화학상 수상자인 해럴드 크로토(Harold Kroto)는 "열 번의 실험 중에 아홉 번을 실패했다면 과학자들 사이에서는 아주 좋은 기록이다"라고 말하며 실패를 긍정적인 눈으로 바라보라고 충고한다. 그의 말 속에는 실패를 죄악으로 간주해서 실패하지 않으려고 지나치게 완벽을 고집하면 성공에 거의 다다랐음에도 그 근처에서 스스로를 좌절케 만들 뿐이라는 숨겨진 의미가 담겨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말하면서 성공 자체에 의미를 두기보다, 실패 자체에 의미를 두는 것이 보다 건설적인 사고 방식이다. 이탈리아의 리빙 용품 제조사인 알레시(ALESSI)의 CEO 알베르토 알레시(Alberto Alessi)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매년 출시하는 제품 중에 실패한 것이 1건도 없을까봐 걱정스럽다." 그는 모든 성공은 실패한 경험과 환경에서 나옴을 꿰뚫어 보고 있는 것이다. 실패는 초라하고 성공은 영광스러운 것이 아니라, 실패는 성공은 얼굴과 행동이 똑같은 쌍둥이다.

작가 매들린 랭글은 실패에 대해 말할 때 성공을 언급하지 않는다. 그녀는 '시간의 주름'이라는 대표작을 출판하기까지 2년 반 동안 수많은 출판사로부터 거절 통보를 받는 수모를 겪었지만 그것에 굴하지 않았다. 그녀는 인생에서 얻은 실패의 의미를 이렇게 말한다. "인간은 실패가 허락된 유일한 창조물이다. 만일 개미가 그랬다면 죽음 뿐이다. 우리는 실수와 실패를 통해 배우도록 허락됐다. 만일 마음 놓고 실패할 수 없다면 새로운 일을 하지 못할 것이다." 실패는 우리로 하여금 배우면서 새로운 것에 도전하도록 만드는 힘이지, 성공하기 위해 쓰고 버리는 1회용 젓가락이 아니다.

당신이 만일 실패를 했다면 그것 때문에 낙담하고 괴로울지 모르겠다. '잘 할 수 있었는데 난 왜 이리 못낳을까?'라며 자신을 꾸짖는다. 이런 자책이 더욱 괴로운 이유는 자신의 실패를 바라보는 다른 사람의 시선 때문이다. 실패에 대한 반성과 자책이 자신에게서 끝나면 좋으련만, 남들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지 상상하기 때문에 스스로가 더 바보인 것처럼 느껴지고 패배감에 젖고 만다. 이 또한 실패와 성공을 한묶음으로 연상하기 때문에 생기는 부작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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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리 매닐로


하지만 당신은 타인의 눈을 의식할 이유가 전혀 없다. 토머스 길로비치를 포함한 3명의 심리학자들은 코넬 대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이런 실험을 진행했다. 어떤 학생에게 배리 매닐로가 그려져 있어 보기에 민망한 티셔츠를 입게 한 후에 다른 학생들이 모인 강의실에 들어가도록 했다. 길로비치 등은 적어도 50%의 학생들이 그 학생이 입은 티셔츠를 알아볼 거라고 추정했다. 그러나 결과는 예상 밖이었다. 겨우 23%의 학생들만이 그 티셔츠에 주목한 것이다. 여러 종류의 티셔츠(남루한 것, 촌스러운 것 등)를 가지고 실험해도 결과는 비슷했다.
 
짐작과는 달리 다른 사람들은 당신의 실패에는 별 관심이 없거나, 있어도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고 금방 잊어 버린다는 점을 실험 결과가 말해 준다. 실수로부터 뭔가를 배우기보다 남들의 시선 때문에 자기혐오의 철창 안에 갇히는 것은 매우 슬픈 비극이다. 다른 사람의 시선에 초연해진다면, 실패로 인한 고통과 패배감은 쉽게 떨쳐 버릴 수 있다.

이러한 자기혐오에서 벗어나려면 타인의 시선에 뻔뻔해지고, 실패를 과거의 일로 정리해야 한다. 그냥 잊어버리라는 말이 아니라, 10년 전 일기를 들여다 보듯 그것을 관찰하고 분석하라는 의미다. 그러면 실패란 자신의 한계를 깨닫게 만드는 지표가 되고 자신이 좀더 세련되도록 일러주는 지침이 된다.

당신에게는 부실한 계획, 모자란 능력, 게으름과 낮은 집중력 등과 같이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것이 당신의 한계라고 인식하고 분석하는 순간 오히려 실패의 고통에서 헤어나올 수 있으며 힘을 축적할 수 있다. 그냥 주저앉아 실패의 고통에 매몰된다면 아무것도 배울 수 없다.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다면,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가 아니라 성공의 장애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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