휠라가 패리스 힐튼과 재계약한 이유는?   

2008. 7. 6.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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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5월에 미국 사교계의 패선 아이콘이자 트라블 메이커인 패리스 힐튼은 무면허인 상태에서 음주운전을 하다가 적발되어 철창 신세를 지게 된다. 전 세계 언론들은 일제히 그녀의 수감과 감옥에서의 생활, 그리고 석방되기까지의 일거수 일투족을 연일 보도하는 데 열을 올렸다. 힐튼에 대한 가십성 보도가 오죽 도가 지나쳤는지 TV 뉴스 생방송 도중 앵커우먼이 힐튼에 관한 뉴스는 더 이상 보도하지 않겠다면서 기사가 적힌 종이를 찢어 버리는 해프닝까지 있었다.

힐튼이 침울한 표정으로 감옥에 수감되는 장면이 전세계에 방영되는 순간, 아마 한국의 어떤 회사 사람들은 그녀를 원망과 걱정이 반반씩 섞인 표정으로 바라봤을 것이다. 바로 그 사건이 터지기 겨우 2달 전에 그녀와 광고 모델 계약을 맺은 휠라 코리아(FILA Korea) 말이다.

휠라 코리아는 노후된 브랜드 이미지를 새롭게 바꾸기 위해 한국에서는 가수인 동방신기, 김종국, 빅뱅 등 신세계 스타를 모델로 기용하고, 더욱더 공격적인 마케팅을 위해서 2007년 3월에는 패리스 힐튼과 1년 간의 광고 모델로 전격 계약하기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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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가뜩이나 평소 행실이 좋지 않은 그녀가 이번엔 전세계 인구가 지켜보는 가운데에 구속되다니! 마케팅 담당자가 신문사와의 인터뷰에서 "구속이 확정적일 경우에는 다른 모델로 대체하는 등 대안을 마련하겠지만 구속되지 않는다고 해도 이번 사건 자체가 브랜드 이미지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어 곤혹스럽다" 라고 말했던 것으로 볼 때, 휠라 코리아로서는 상승을 기대했던 브랜드 이미지가 그녀의 구속으로 인해 오히려 추락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를 금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랬던 휠라 코리아가 2007년 11월에 패리스 힐튼과 1년 더 재계약을 단행했다. 대담하게도, 이번엔 그녀를 한국으로 초청해서 기자들을 모아 놓고 윤은수 회장과 재계약 협약식까지 가졌다. 그녀는 4박 5일 동안 체류하면서 쇼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등 많은 화제를 뿌리고 떠났다.

조금 이상하다. 나는 과거에도 여러 번 경찰서를 드나든 전력이 있는 그녀가 CF에 나온 것을 보고 "이미지가 별로 안 좋은데 왜 모델로 쓴 거지?"라고 생각하며 고개를 갸웃했었다. 헌데, 전세계가 지켜보던 가운데 그녀의 비행이 '확실히' 드러난 이후에 계약 파기는커녕 오히려 계약을 연장하다니!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휠라 코리아는 왜 그녀와 재계약을 한 것일까?

'주목은 또 다른 주목을 낳는다.' 이 말은 홍보의 첫번째 규칙이다. '아하!' 어느 날 우연히 이 문구를 발견했을 때 휠라가 그녀를 다시 선택한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그녀는 바로 이 첫번째 규칙을 아주 잘 만족하는 모델이었던 것이다. 언론들은 연일 그녀의 모든 언행을 파파라치처럼 주목하기 때문에 그녀에게 불미스러운 일이라는 호재(?)가 터지면 전세계의 눈과 귀는 일제히 그녀에게 쏠린다. 그리고 그녀의 옷, 장신구, 헤어스타일 등도 덩달아 시선의 집중을 받게 되고 그 상품에 '꽂힌' 시청자들은 다음 날이면 매장으로 달려간다.

그녀는 '걸어다니는 광고판'이라는 소리를 듣는 이유는 사고를 칠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주목하면서 그녀가 걸친 상품도 스포트 라이트를 받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녀는 최악의 상황에서도 평소처럼 광고 멘트를 날리는 센스를 지녔다. 그녀는 2006년에 구속될 때 '인앤아웃 버거(미국 햄버거 회사)를 먹고 싶어 빨리 달렸을 뿐이에요'라고 진술했고, 2007년 6월에 3주 간의 수감생활로부터 풀려나면서도 감옥 안에서 '시크릿'이라는 책을 읽으며 마음을 달랬다고 말했다. 아마 그 다음날, 인앤아웃 버거의 매장과 서점은 햄버거와 '시크릿'을 사기 위한 사람들로 북적대지 않았을까? 광고주로서는 그녀처럼 '예쁜' 모델이 없는 셈이다.

계약한지 두 달만에 법정 구속된 그녀 때문에 브랜드 이미지가 실추될 것이 매우 염려된다는 마케팅 담당자의 말은 이제 생각해 보면 엄살, 아니 거짓말로 들린다. 아마 그는 기자를 만나고 돌아서면서 참았던 웃음을 터뜨리진 않았을까? 오히려 힐튼의 '악녀' 이미지는 휠라 제품과 잘 맞아 떨어진다.

패리스 힐튼과, 그녀를 모델로 계속 기용하기로 한 휠라 코리아를 보면서 '자기PR'의 의미를 생각해 본다. 힐튼이 광고 모델로서 가진 미덕이 바로 전세계적으로 이목을 집중시키는 능력에 있듯이, 자기PR이란 뭐니뭐니해도 시선을 집중시키는 것이 가장 먼저가 아닐까?


자기PR = 시선집중


주목은 또 다른 주목을 낳는다고 했다. 어떤 사람을 시켜 거리에 우두커니 서서 60초 동안 말없이 하늘을 올려다 보도록 했다. 관찰 결과, 대부분의 행인은 그냥 지나치고 4% 정도만이 그 사람을 따라 하늘을 올려다 봤다. 그러나 실험자(하늘을 올려다 보도록 지시 받은 사람)의 수를 늘릴수록 따라 하는 행인의 비율이 점점 커졌다. 15명의 사람에게 하늘을 올려다 보도록 하면 행인의 40%가 그들을 따라서 했다. 하늘을 쳐다보는 사람이 많을수록 더 많은 사람이 동조하는 것이다.

시선을 집중시키지 못한 자기PR은 추운 겨울 길거리에서 초라하게 공연을 하는 무명가수처럼 공허한 메아리에 지나지 않는다. 사람들의 시선을 잡아 끄는 무엇인가가 있어야 비로소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이 생긴다. 한 두 사람이 모이면 세 사람이 모이고, 세 사람이 모이면 아홉 사람이 주목하게 되어야 자기PR이 효과를 거둘 수 있다.

방문자수가 많고 추천자수가 많은 블로그의 글들을 보면, 제목의 힘 때문인 경우가 더러 있다. 내용도 좋아야 하지만 제목이 사람들의 시선을 잡아 끌지 못하면 힘들게 쓴 글이 하루에도 수백만 건이 올라오는 인터넷 상에서 흔적없이 묻히고 만다. 간혹 내용은 부실하고 제목만 '섹시한' 글들이 있다. 분명 화 나는 일이다. 내가 쓴 글의 제목도 그렇다는 소리를 가끔 듣는다. 하지만 그런 경우 때문에 시선을 집중시키기 위한 제목의 중요성이 평가절하될 수는 없다.

자기를 널리 알리는 행위, 즉 자기PR에 '한정 지어' 생각한다면, 자신의 내실을 기하는 것은 2차적인 것이다. PR이 성공하려면 포장을 잘해 시선을 집중시키는 것이 제1의 덕목이다. 아무리 좋은들 사람들의 눈과 귀가 쏠리지 않으면 쓸쓸히 퇴장할 각오를 해야 한다. 서점에 가면 얼마나 많은 양서들이 시선을 모으지 못해 서가 뒤편으로 사라지는가?

혹시, 내실이 있어야 집중된 시선이 더 많은 시선을 끌어 들이기 때문에 내실이 우선이고 시선집중을 위한 포장은 나중의 일이라고 말하고 싶은가? 일리가 있는 말이긴 하나, 세상은 참을성이 없다. 한가롭게 기다려 주지 않는다. 내실이 먼저라고 생각되면, 그렇게 하라. 말리지 않는다. 하지만 자기를 PR하고 싶다는 생각은 나중에 하는 게 좋겠다. 내실과 포장, 이 모두를 잘하면 금상첨화지만, 적어도 자기PR을 하고 싶다면 포장에 방점을 찍어야 한다.

(이 글의 제목에는 '패리스 힐튼'이 들어가 있다. 공짜로 그녀를 모델로 고용한 셈이다. 만일 '자기PR은 시선집중에서 시작한다'라는 딱딱한 제목을 단다면 어떨까? 똑같은 내용에 제목만 달리 해서 실험을 해볼 수 없는 노릇이니.... 암튼, 그녀 덕분에 많은 방문자가 있길 기대해 본다. 아님 말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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