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나는 주말 내내 진행된 워크숍을 끝내고 회식을 겸해 스태프들과 함께 <위플래쉬>란 영화를 관람했다. 솔직히 영화관에 들어가기 전에는 ‘피곤한데 왠 영화?’란 생각에 살짝 후회스러웠고 광고가 나오는 동안 깜빡 졸기도 했다. 하지만 긴장감 있는 스토리와 주인공의 격렬한 드럼 소리에 빠져 들다보니 피곤함은 말끔히 사라졌고, 영화관을 나설 때는 마치 시원한 물로 온몸을 샤워한 듯이 뇌가 개운해졌다. 스태프들은 모두 신기해 했다. 처음엔 피곤해서 집에 가겠다던 스태프들은 한껏 밝아진 표정으로 술 한잔 하자며 내 팔을 잡아끌 정도였으니까.
어찌된 일일까? 이유는 천연 마약이라 불리는 ‘도파민’ 분비 때문이다. 호르몬의 일종인 도파민은 쾌락과 환각을 경험하게 해주는데, 캐나다 맥길대의 신경심리학자인 로버트 자토르는 음식, 스포츠, 섹스뿐만 아니라 음악도 도파민 분비를 촉진시킨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특히 음악이 최고조에 이르기를 기대하는 동안 뇌의 ‘미상핵’이란 부위에서 도파민이 분비됐고, 최고조에 이르면 ‘측좌핵’에서 역시 도파민이 분비되었던 것이다.
우리 스태프들의 뇌를 자기공명영상(fMRI)로 촬영했다면 주인공이 드럼 템포를 늦추다가 점점 손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연주하는 영화의 클라이막스에서 왕성하게 분비되는 도파민을 뚜렷이 관찰할 수 있었을 것이다. 물론 영화가 스태프들의 뇌를 도파민으로 샤워시킬 수 있던 까닭은 재즈 음악에 대한 거부감이 다들 없었기 때문이다. 자토르의 연구에 따르면 싫어하는 음악을 들을 때 도파민 분비가 활성화되지 않는다고 한다.
신경전달물질인 호르몬은 인간 행동을 지배하기도 하고 인간 행동에 의해 그 수치가 변한다. 벨기에의 연구팀이 실험참가자의 코에 ‘옥시토신’이란 호르몬을 뿌린 후에 ‘신뢰게임’을 진행하게 했다. 이 게임에서 참가자들은 자신이 받을 돈을 파트너와 나누면 공유한 돈의 세 배를 실험진행자로부터 받을 수 있었지만, 파트너를 신뢰할 수 없으면 돈을 나누지 않아도 됐다. 게임 결과, 코에 옥시토신이 뿌려진 참가자들이 파트너를 훨씬 더 신뢰하는 경향을 나타냈다. 더 많은 돈을 파트너와 공유했기 때문이다. 옥시토신은 무조건 상대방을 믿도록 만드는 묘약은 아니지만 특정 조건에서 신뢰감을 높인다고 연구팀은 결론 내렸다.
신경경제학자인 P. J. 작크는 인간 행동에 의해 옥시토신 수치가 변한다고 말한다. 그는 참가자들이 사전에 서로를 얼마나 신뢰하는지 측정하고 신뢰게임을 진행하도록 했다. 나눠줄 금액을 결정한 참가자의 혈액을 채취하여 호르몬 수치를 분석하니 많은 금액을 나눈 참가자일수록 혈중 옥시토신의 농도가 높게 나타났다. 상대방을 신뢰할수록 옥시토신 분비가 왕성했던 것이다.
옥시토신은 정서적 안정감을 촉진하고 유대와 협력 행동을 강화하는데, 앞서 언급한 도파민의 분비를 자극하는 역할도 한다. 옥시토신은 신뢰를 구축하고 하는 동기를 높이고 서로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데 도움을 주는 호르몬이다. 신뢰는 옥시토신을 분비시키고 옥시토신은 서로의 이득을 높이는 데 기여하며 높아진 이득은 다시 신뢰를 강화하는 선순환이 만들어진다.
반면, 신뢰 받지 못하면 어떻게 될까? 신뢰의 상실은 양자 모두에게 스트레스로 작용한다. 스트레스에 노출되면 우리의 몸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코르티솔이라는 호르몬을 분비하는데, 스트레스의 고통을 경감시켜주고 에너지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다. 하지만 오랫동안 스트레스를 받게 되어 코르티솔에 장기간 노출되면 오히려 면역체계가 약화되고 늘 긴장 상태가 되며 집중력도 떨어지고 신경이 예민해지는 역효과가 발생한다.
벼락치기로 공부한 내용을 시험 보는 동안 하얗게 잊어버리는 이유 역시 코르티솔 때문인데, 스트레스로부터 몸을 보호하기 위해 분비된 코르티솔이 기억력을 약화시키는 탓이다. 타인으로부터 불신을 자주 받는 사람에게 높은 성과를 기대할 수 없는 과학적 이유다. 이를 아는지 폭주족과 문제아를 받아들여 능력 있는 기술자로 양성해내는 주켄공업의 마츠우라 모토오 사장은 “서로 권리를 인정하고 서로에게 무조건 믿음을 주어야 한다. 그것은 (경영자의) 의무다.”라고 말한다.
‘도파민 샤워’ 효과를 경험한 나는 며칠 후에 다시 <위플래쉬>를 봤다. 도파민의 분자 구조가 마약과 비슷하다고 하니 아무래도 ‘음악 중독’이란 게 있는 모양이다.
(* 이 글은 제가 월간 샘터 5월호 '과학에게 묻다' 코너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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