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많이 벌면, 많이 놀 수 있을까?   

2015. 5. 12.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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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즈는 2030년이 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주일에 15시간만 일하면서도 과거보다 많은 부를 축적할 것이고 더 많은 레저 시간을 즐길 것이라고 예측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주당 40시간 이상 일하는 사람이 부지기수이고 어떤 사람들은 70~90시간 일하곤 합니다. 


물론 필요 이상으로 돈을 벌지 못해서 어쩔수없이 과중한 노동시간에 시달리는 사람들도 많습니다만, 이 글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주제는 ‘먹고 살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버는 사람들이 많아졌음에도 불구하고 왜 그들은 놀기보다는 일에 파묻혀 ‘피곤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지입니다. 여러분이나 저나 “돈을 많이 벌면서 쉬엄쉬엄 일하고 싶다”고 푸념 섞은 말을 입에 달고 살지만, 돈을 남들보다 많이 벌게 되면 과연 그에 맞춰서 일을 덜 하고 더 많이 놀게 될까요? 여러분은 어떨 것 같습니까?





시카고 대학교의 심리학자 크리스토퍼 시(Christopher K. Hsee)와 동료 학자들은 실험을 통해 돈을 많이 벌수록 필요 이상으로 많이 벌려는(overearing) 심리(혹은 관성)가 존재한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보통 가족의 행복을 위한 가장의 책임감,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한 불안감, 편하게 살고 싶은 욕망, 명예로운 생활 등으로 ‘overearing’하려는 이유를 설명하곤 하지만, 시는 그런 이유를 통제한 상태에서도(즉 영향을 끼치지 못하게 만든 상태에서도) overearing 현상이 나타난다는 점을 밝혔습니다.


시는 불쾌한 소음을 들은 회수에 따라 상으로 초콜릿 바를 주는 실험을 했습니다. 첫 번째 그룹의 참가자들은 소음을 20번 들을 때마다 1개의 초콜릿 바를 받았고, 두 번째 그룹은 120번을 들어야 초콜릿 바 하나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 첫 번째 그룹은 ‘많이 버는 그룹’이고 두 번째는 그렇지 못한 그룹이었죠. 참가자들은 소음 듣기 과제를 끝내고 자신들이 획득한 초콜릿 바를 먹을 수 있었는데, 다 먹지 않고 남겨도 무방했습니다. 이렇게 참가자들은 먹을 만큼의 초콜릿 바를 얻기 위해 소음을 들어야 하는 ‘일’을 해야 했고 나머지 시간엔 피아노 곡을 들으면서 쉴 수 있었죠.


결과가 어땠을까요? 20번 소음을 들을 때마다 초콜릿 바 하나를 버는 그룹은 평균 10.74개의 초콜릿 바를 획득한 반면, 초콜릿 바 하나당 120번 소음을 들어야 했던 그룹은 평균 2.54개밖에 얻지 못했습니다. 이는 당연한 결과였죠. 또 ‘고소득 그룹’은 4.74개의 초콜릿 바를, ‘저소득 그룹’은 1.68개의 초콜릿 바를 먹었습니다. 다시 말해 고소득 그룹은 평균 6개의 초콜릿 바를, 저소득 그룹은 평균 1개의 초콜릿 바를 남겼다는 것이죠. 


흥미로운 사실은 ‘먹을 수 있는 초콜릿 바 개수’와의 비교에서 나타났습니다. 시는 별도의 사람들에게 실험 내용을 상상하게 하면서 몇 개 정도 먹을 수 있을 것 같냐고 물었는데, 그때 나온 개수는 3.75~3.77개였습니다. 따라서 고소득 그룹은 필요보다 7개 가량의 초콜릿을 더 벌었던 것이고 그 7개를 더 얻기 위해 140번 가량(초콜릿 바 1개당 20번)의 소음을 더 참아냈던 겁니다. 소음을 들을 시간에 피아노 곡을 들으며 편히 쉴 수 있었는데도 말입니다.





이 간단한 실험은 돈을 많이 버는 직업을 가지면 필요한 만큼만 일하고 나머지 시간은 휴식을 취할 수 있겠다는 일반인들의 ‘다짐’이 말처럼 쉽지 않음을 보여 줍니다. 돈을 많이 벌면 별 생각없이 돈을 축적하게 된다는 점도 드러냅니다. 시는 일하는 시간을 결정하는 요소는 ‘시간당 소득’ 혹은 ‘투입 노동 대비 소득’이 아니라, 일을 하느라 몸이 느끼는 피로와 관련이 있다고 말합니다. 이는 고소득 그룹이 평균 215번의 소음을, 저소득 그룹이 305번의 소음을 들었던 것으로부터 유추할 수 있습니다. 즉, 고소득자는 “충분히 벌었으니까 이제 쉴 시간이다”라기보다 자기 몸이 지치지 않는 한 일을 계속한다는 뜻이죠. 정리하면, 돈을 많이 버는 직업을 가지면 더 많이 놀 수 있다는 생각은 환상일지 모른다는 점을 이 실험이 꼬집습니다. 


이런 우스개 소리가 있습니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이미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지만, 더 격렬하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시의 실험을 접하고 나니, 이 말은 돈이 많다고 해서 자연스레 노는 시간이 많아지지 않는다는 점, ‘노는 것’은 수동적인 상태가 아니라 적극적인 활동이란 점을 뜻하는 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여러분과 비슷한 조건의 친구에게 “너는 이 정도만 벌면 충분해”라고 조언할 때의 금액보다 여러분이 제법 많이 벌고 있으면서 “돈이 많으면 놀 시간이 많을 텐데”라고 푸념하고 있지 않나요? 만일 그렇다면 이제 ‘적극적으로’ 놀 시간은 아닐까요? 물론 방법은 각자 찾아야겠죠.



(*참고논문)

Hsee, C. K., Zhang, J., Cai, C. F., & Zhang, S. (2013). Overearning. Psychological science, 09567976124647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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