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어려운 질문을 던져야겠다. 인간은 본디 이기적일까 아니면 이타적일까? 이 질문은 성선설과 성악설을 사이에 두고 오래 전부터 수많은 철학자들과 사상가들이 벌여온 논쟁과 비슷한 논란을 일으킨다. 그러나 이 질문에 답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이기적인 존재로 보느냐 이타적인 존재로 보느냐에 따라 인간을 대하고 다루는 방법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생존을 위해 자신에게 유리한 것을 극대화하려는 이기적인 존재라고 인간을 규정한다면, 그 이기심이 조직과 사회의 안녕을 해치지 않게 유도하고 나아가 시너지를 구축하도록 만들려면 통제와 명령으로 인간을 다스리고 이끌어야 한다는 생각이 당위성을 갖는다. 반면, 타인을 돕고 자신을 기꺼이 희생하며 사회의 일원으로서 정체성을 확인 받고 보호 받으려는 존재로 인간을 바라본다면, 자유로운 생각과 행동을 존중하고 타인과 사회에 기여하려는 내적 동기를 극대화시켜야 한다는 논리가 힘을 얻는다.
출처: daddytypes.com
인간이 이기적인지 이타적인지에 관한 논쟁을 이 짧은 칼럼에서 다루기는 어렵다. 하지만 유아와 침팬지를 대상으로 실험한 펠릭스 바르네켄과 마이클 토마셀로의 연구 결과를 들여다 본다면 이 오래된 질문의 답이 무엇인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바르네켄과 토마셀로는 17~18개월 정도의 유아 24명을 대상으로 여러 가지 간단한 과업을 수행했다. 그들은 어른 남자가 일부러 펜이나 빨개집게를 떨어 뜨리고 손에 안 닿는 척 하거나, 손에 물건을 가득 들고 있어서 캐비넷 문을 열지 못하는 척 하거나, 또는 책을 쌓다가 실수로 책을 미끄러뜨렸을 때 유아들이 어떤 행동을 보이는지 관찰했다.
모두 10가지의 과업을 수 차례 실험한 결과, 유아들은 10회 시도할 때마다 5.3회 꼴로 남자를 도와주는 행동을 보였다. 분석해 보니 24명 중 22명의 유아들이 적어도 한 번 이상 남자를 도왔다. 개인별로 차이가 있긴 했지만 어떤 유아가 항상 남을 돕는지, 또 어떤 유아가 절대로 남을 돕지 않는 이기적인 성격을 지녔는지 구분하기가 어려웠다.
바르네켄과 토마셀로는 비슷한 실험을 세 마리의 침팬지를 대상으로 실시했다. 침팬지는 인간과 동일한 조상으로부터 갈라져 나온 유인원이고 유전자의 98퍼센트 이상을 공유하기에 이타성의 본류를 확인하는 데에 좋은 실험 대상이다. 침팬지에게도 모두 10가지 종류의 과업을 실시했는데, 실험자가 테이블을 스폰지로 닦다가 일부러 떨어뜨리고 집어올릴 수 없는 척 하거나, 손에 물건을 잔뜩 들고 있어서 바닥에 있는 물건을 치우지 못하는 척 하거나 했다. 그랬더니 유아를 대상으로 했을 때와 동일한 결과가 나왔다. 비록 유아들보다는 도와주는 회수가 적었지만 침팬지들은 도움이 필요한 실험자를 제법 자주 도왔다.
바르네켄과 토마셀로의 실험은 인간이 남을 도우려는 이타심을 타고났을 거라 짐작케 한다. 이타심이 발현되는 이유가 사회로부터 배척 당하지 않고 생존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이기심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한다 해도, 또는 ‘이기적 유전자’ 관점에서 유전자가 자신의 복제 가능성을 높이려고 숙주인 인간을 이타적으로 행동하도록 조종하는 것이라 말한다 해도, 인간은 선천적으로 대가 없이 타인을 도우려는 심성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물론 이 연구 하나만으로 논쟁을 종식시킬 수 없다는 한계가 있긴 하다.
심리학자이자 경영학자인 더글러스 맥그리거는 ‘조직의 구성원들을 대하는 관점’을 ‘X이론’과 ‘Y이론’이라는 말로 구분했다. X이론은 직원들을 전적으로 신뢰할 수 없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통제해야 하고 동기가 사라지면 열심히 일하려 하지 않기에 바른 길로 가도록 끊임없이 동기를 불어넣어야 한다고 보는 관점이다. 그래서 통제와 규율, ‘당근과 채찍’을 통한 경쟁을 강조한다. 반면, Y이론은 직원들이 스스로 성취감과 자아실현을 적극적으로 추구하고 솔선하며 자율적인 책임 하에 목표에 헌신한다는 관점이다.
따라서 Y이론 하에서는 자유와 창의, 협력과 상호존중을 가치로 삼는다. 바르네켄과 토마셀로의 실험 결과는 Y이론을 지지하는 하나의 증거다. 인간은 본디 이타적이고 선한 존재이므로 자율을 부여하고 존중하는 마음으로 대할 경우 최고의 성과를 이끌어낼 수 있음을, 또한 그렇게 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을 거스르지 않는 길임을 보여준다. 당신은 이기적인가, 아니면 이타적인가?
*이 글은 월간 <샘터> 10월호의 <과학에게 묻다> 코너에 실린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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