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면 마취 없이 대장 내시경 검사를 받은 적이 있다면 그게 얼마나 고통스러운 검사인지 말하지 않아도 압니다. 만일 검사를 실시하는 의사가 미숙하여 짧게 끝날 검사를 오래 지속한다면 아마 그 고통을 견뎌내기가 매우 힘들겠죠. 오랫동안 지속된 고통의 기억은 시간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아서 대장 내시경 검사를 다시는 받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들 겁니다.
하지만 도널드 레델마이어와 대니얼 카너먼은 '고통스러운 검사가 지속된 시간'은 '환자가 기억하는 고통'과 그다지 상관없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오히려 '환자가 기억(회상)하는 고통'은 검사를 받는 동안의 '최고 고통(Peak Pain)'과 '마지막 순간의 고통(End Pain)'과 상관이 있었다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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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캐나다 토론토에 있는 모 병원에서 대장 내시경 검사를 받으러 온 154명의 환자와 담석 파쇄 시술을 받게 된 133명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이런 결론을 얻었습니다.
레델마이어와 카너먼은 특별한 장치를 사용해 환자들에게 시술을 받는 동안 60초마다 한 번씩 고통의 정도를 측정하도록 요청했습니다. 그리고 환자들이 시술을 마치고 회복실에 누워 있을 때 '얼마나 시술이 고통스러웠는지'를 회고하여 평가하게 했죠. 레델마이어와 카너먼은 시술을 진행한 의사들에게도 환자가 경험했을 고통의 정도를 짐작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통계 분석 결과, 시술 받은 시간은 환자들이 경험한 고통 수준과 통계적으로 상관이 없었습니다. 시술을 짧게 받든 길게 받든 간에 환자들은 자신들이 스스로 측정한 '최고 고통'이 높을수록 시술이 힘들었다고 답했습니다. 또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시술 마지막 순간에 측정한 고통(End Pain)이 강할수록 환자들은 시술 받는 게 매우 괴로웠다고 기억했죠.
다시 말해, 시술 받는 동안 가장 아팠던 순간과 시술 마지막에 느끼는 고통이 시술에 대한 기억을 결정하는 변수였습니다. 시술 받은 시간, 즉 '총 고통(Total Pain)'이 환자들의 기억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가 아니었죠. 시술이 빨리 끝났어도 '최고 고통'이 높았으면 '시술 받는 게 너무 괴로웠다'고 기억하고, '마지막 순간의 고통'이 컸다면 역시 그렇게 기억했던 겁니다. 대장 내시경 검사를 받고 나서 기억이 가물가물해질 때(한 달 후) 다시 한번 더 물었지만 대답은 마찬가지였습니다.
이 실험의 결과가 무엇을 시사하는 걸까요? 우리는 미래에 대한 결정을 내릴 때 과거의 기억을 많이 참조합니다. 과거의 경험에 근거하여 전략의 세부 사항을 조정하기도 하죠. 하지만 여기에서 의문이 드는 것은 '우리가 기억하는 과거가 과연 과거 모습 그대로인가'입니다. 과거에 느꼈던 감정 상태가 과거에 대한 기억을 왜곡시키는 것은 아닐까요? 자금 부족이나 경쟁사의 압박 등과 같은 과거의 고통스러운 기억이 그 고통이 지속된 시간(즉, 총 고통)이 아니라 고통의 피크(최고 고통)에 의해 좌우된다면, 과거를 거울 삼아 결정되는 전략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조직이 경험했던 과거의 고통이 총량으로는 매우 컸지만 특별히 매우 힘들었던 순간은 없었을 때 여러분은 과거를 '견딜만 했다'고 '미화'할 가능성이 큽니다. 반대로 특별히 충격적인 일로 조직이 매우 큰 고통을 겪었다면 그 고통스러운 기간이 짧았더라도 여러분은 필요 이상으로 두려움이 앞서서 의사결정의 폭을 제한 받을지도 모릅니다. 과거로부터 배운다지만 그렇지 못할 가능성도 매우 크죠.
여러분의 조직에는 과거에 어떤 위기가 있었습니까? 그 위기에 대한 기억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이 기억하는 고통은 견딜만 했습니까, 아니면 떠올리기조차 싫습니까?
(*참고논문)
Redelmeier, D. A., & Kahneman, D. (1996). Patients' memories of painful medical treatments: real-time and retrospective evaluations of two minimally invasive procedures. Pain, 66(1), 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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