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를 화로 풀지 마라   

2008.05.05 10:17

여자는 자신이 살고 있는 아파트 단지 안에서 학원을 운영하고 있었다. 그러다 살던 집의 시세가 오르자 남편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집을 팔고서 교외로 이사를 갔다. 하지만 학원은 옮겨가지 않고 원래 있던 곳에서 계속 운영했다.

그런데 집을 팔자마자 시세는 그녀가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치솟기 시작했다. 하루가 멀다하고 몇 천 만원씩 오르더니 급기야 자신이 판 금액의 두 배 가까이 육박하고 말았다. 이사를 갔으니 떨어지든 말든 잊어버리면 그만이었겠지만, 학원 때문에 자신이 판 아파트 시세의 변화를 가까이서 목도할 수 있었던 그녀는 거의 미칠 지경이었다. 학원으로 가다가 팔아 버린 아파트를 볼 때면 가슴이 방망이질 치면서 숨쉬기 조차 힘들었다. 그래서 일부러 그 아파트가 보이지 않는 길로 돌아가곤 했다.

누구를 탓할 수 없는 일이었다. 남편의 반대를 무릅쓰고 내린 결정이기에 그를 원망할 수도 없었다. 그저 자신이 내린 판단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스스로를 책망하면서 퍽퍽한 가슴만 내리 칠 수 밖에 없었다. 한 두 푼도 아니고 몇 억원의 돈이 순간의 판단 때문에 사라지고 말았으니, 자기학대로도 화를 이겨내기 어려웠다.

여자의 성격은 점점 포악해졌다. 아무것도 아닌 일에도 짜증이 났다. 집안 일이고 학원 일이고 모두 귀찮았다. 학원에서 아이들이 실수를 하거나 잘못을 저지르면 이유야 상관없이 소리부터 질러댔다. 가슴 속의 화가 활활 타오르다 보니 애꿎은 아이들에게로 자신의 화가 전달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변한 걸 스스로 느낄 정도였다. 하지만 그렇게 소리라도 벅벅 질러야 화가 좀 풀리는 기분이 들었다. 결국 그녀는 다혈질이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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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화를 참으면 병이 된다고 말한다. 그래서 화를 풀어야 한다고도 말한다. 스스로에게 화가 나든, 타인 때문에 화가 나든 간에 참지 말고 그때그때 풀어야 한다고 말이다. 맞는 말이다. 화는 풀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푼다'라는 말을 잘못 이해하곤 한다.

화가 난다고 해서 그 화를 남에게 전이시키거나 되갚아 주는 것, 즉 나의 화를 '풀어해치는' 방법은 옳지 않다. '내가 화났으니 내 심기를 건드리지 말고 똑바로 하지 않으면 가만히 안둘 테야' 혹은 '네가 날 화나게 만들었으니까 나도 널 화내게 만들겠다'며 화를 있는 그대로 앙갚음하는 것은 화를 푸는 방법이 아니다.

나를 화내게 만든 사람을 증오하고 저주하면서 술을 마시거나, 샌드백을 대신 두들겨 패거나, 상관없는 이들에게 소리를 지른다고 해서 화가 줄어들지 않는다. 순간적으로는 가슴이 시원해지는 카타르시스를 느낄지 모르지만, 그런 행위들은 오히려 자신의 화를 증폭시키고 스스로를 모난 인간으로 변하게 만들 뿐이다.

위에서 말한 그녀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스스로를 보호할 목적으로 제3자에게 화를 내는 행동을 취했겠지만, 그것으로 화의 근원을 치유할 수 없다. 남에게 화를 냄으로써 자신의 화를 풀다보면 처음 한 두 번은 상대에게 미안한 마음이 있겠지만 그것이 지속되면 차츰 익숙해지면서 일상이 된다. 그리고 어느덧 자신의 성격은 괴목처럼 비뚤어진 모습으로 굳어진다.

화는 화로 풀어서는 안 된다. 불 난 집에 불씨를 던져 넣는다고 불이 꺼지지 않는다. 불은 물로 끄는 게 상식이다. 틱낫한 스님의 말처럼, 화는 '자각(自覺)'이라는 물로 꺼뜨려야 한다. 가슴 속에 화가 일렁이면 그것에 일차적으로 반응하려는 감정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 그리고 활활 타오르는 화를 마치 내것이 아닌 듯이 바라보라.

그리고 나를 화내게 한 사람으로부터, 혹은 화가 발생한 물리적 장소에서 잠시 벗어나 생각에 잠겨보라. 깊은 숨을 쉬며 마음을 가다듬어 본다. 눈을 감고 명상에 잠겨도 좋다. 화가 어디에서 기인했는지, 내가 힘든 것이 무엇인지, 나를 화 나게 한 사람(자신 또는 타인)의 지금 상태는 어떨지, 시간이 지나고 나면 지금의 화가 어떻게 변할지 등을 제3자가 되어 찬찬히 생각해 볼 시간을 가져본다. 그렇게 자각하는 '냉각기'를 거치면 그전보다 화가 엷어진 게 느껴지고 용서할 마음이 생겨난다.

그런 다음, 지금 내가 얼마나 행복한지를 느껴보라. 내 행복의 크기가 화에 의해 좌우되도록 만들어선 안된다. 행복은 누구에게서 주어지거나 누구로부터 빼앗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스스로를 얼마나 행복한 사람으로 여기는지에 달렸다. 자신이 얼마나 행복한지 자각할수록 화 따위는 봄 눈 녹듯 사라진다.

그녀가 비록 수 억원의 돈을 물거품처럼 날렸다고 해도, 소중한 가족인 남편과 자녀들은 변함없이 그녀와 함께 숨쉬고 있질 않은가? 수 억원의 행운을 받게 된다고 해서 가족의 불행을 댓가로 치를 사람은 없을 것이다. 자신이 잃어버린 것을 노여워하고 괴로워하기 전에, 자신에게 남아 있는 것들의 소중함을 먼저 깨닫는 것이 이글이글 타오르는 화를 잠재우는 방법이다.

화가 나면 감정의 노예가 된다. 노예가 되면 자신의 삶을 노예의 삶 이상으로 결코 만들 수 없다. 화가 나면 자신이 화를 다루는 주인임을 자각하라. 화가 주인 행세를 하도록 놔두면 안 된다. 자각하고 명상하는 것이 화를 올바르게 푸는 방법이고 나를 화내게 만든 사람(자신 또는 타인)을 진정으로 용서할 수 있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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