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CEO   

2008. 4. 25.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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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 CEO는 요즘 슬프다. 수년 전 회사를 설립해 각고의 노력으로 중견규모의 기업으로 키워 낸 그가 요즘 심한 우울증에 빠져 버렸다. 회사만 생각하면 머리가 지끈거린다. 직원들의 눈빛은 자신을 질시하는 느낌이 역력하다. 출장이다, 미팅이다 해서 웬만하면 사무실에 나가지 않을 핑계거리만 생각난다. 일부러 직원들이 거의 퇴근한 저녁 무렵에 회사로 나가 씁쓸한 표정으로 텅 빈 사무실을 둘러보며 도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어쩌다가 내가 이렇게 됐을까, 하며 한숨을 내 쉴 뿐이다.

무엇이 그의 고민일까? 그 회사 직원들의 평균 근속연수, 아니 근속월수는 고작 7개월에 불과하다. 그 회사가 영위하는 사업 자체가 인력의 회전이 매우 빠른 특성이 있지만 가히 업계 최고수준의 이직률이라 할 수 있다. 더욱이 근속월수는 점점 짧아지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그 회사를 가보고 처음 든 느낌은 직원들의 얼굴빛이 왠지 모르게 어둡다는 것이었다. “정말 이 회사가 싫습니다. 마지못해 다니는 것이지 기회가 생기면 언제든 떠날 겁니다.”라고 말하는 표정이 누가 봐도 뚜렷했다. 왜 직원들이 회사를 싫어할까? 그 CEO는 몇 날 며칠의 고민 끝에 바로 자기 자신이 문제의 원인이라는 사실에 도달하고 나에게 도움을 청했다.

나는 먼저 직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대부분의 직원들은 과거 개인기업 수준에서 사람들을 관리하던 구태를 아직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데에 불만을 토로하고 있었다. 회사가 중견규모로 성장했는데도 불구하고 이른바 ‘구멍가게’ 시절의 행태가 아직까지 위세를 떨치고 있다는 말이었다. 모든 의사결정 권한이 CEO에게 집중되어 있다는 것을 큰 문제로 지적했는데, 중간관리자들은 CEO의 지시만 그대로 반복하여 부하직원에 전달하는 메신저 역할에 불과한 실정이며 직원들은 앵무새 같은 관리자들을 신뢰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게다가 업무에 관해 협의할 것이 생기거나 어떤 문제가 발생되면 조직관리체계를 무시하고 CEO가 직접 해당 실무자를 불러 업무를 지시하거나 호통치는 식으로 운영되다 보니 중간관리자들은 자기가 모르는 사이에 업무가 진행되어 나중에야 뒤통수 맞듯 알게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 회사와 CEO에 무슨 충성심을 가질 수가 있냐며 업계 최고의 이직률은 오히려 당연한 현상이 아니겠냐는 노골적인 불만을 쏟아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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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CEO의 생각은 이랬다. 직원들을 도무지 믿을 수가 없다는 것이 그의 불만의 요지였다. “무엇 하나 일을 시키면 가지고 오는 보고서가 도무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왜 그렇게 생각을 안 하는지 모르겠다. 내가 일일이 수정해 주지 않으면 안 될 정도다” 라는 말을 고통스럽게 내뱉었다. 그렇기 때문에 직원들에게 권한을 주고 임무를 맡기기가 겁이 난다는 말이었다. 자칫 잘못하면 시장에서 철저히 외면 당해 망하기 십상인 사업을 하고 있기 때문에 섣불리 권한을 내려 줄 수 없다는 이유였다.

충분히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개인기업에서 중견규모로 키워가는 CEO에게서 나타나는 전형적인 고민이며 어쩌면 반드시 견뎌내야 할 ‘성장통’ 이기도 한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문제를 어떻게 원만하게 해결할 수 있을까? CEO의 고민도 덜어주고 직원들의 불만을 줄여 서로 화합하는 문화를 어떻게 만들어 나갈 수 있을까?

이쯤 해서 CEO는 결단을 내릴 필요가 있다. 직원들이 알아서 잘 해줘야 한다는 기대감은 일단 버리는 것이 좋다. 피하지 말고 직원들과 당당히 만나라. 부모와 자식간의 반목과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서 부모가 먼저 마음의 문을 열고 다가서야 하듯이 기업에서도 CEO가 먼저 손을 내밀고 진정으로 이해를 구하는 행동을 해야 한다.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모든 직원을 차례로 만나라.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만나서 허심탄회하게 직원들과 대화하라. 이 때 주의해야 할 것은 CEO 자신은 말을 아껴야 한다는 점인데 말이 많으면 분위기는 상명하달식으로 빠지기 쉽기 때문이다. 먼저 직원들의 이야기를 충분히 듣고 그런 다음에 무엇이 고민이고 무엇 때문에 괴로운지를 솔직하게 표현하여 직원들의 도움을 청하는 것이 순서다.

이러한 만남이 오히려 독이 되는 경우가 있는데, 양자간에 복잡한 심리적 계산이 깔려 있을 때가 그러하다. 직원의 날카로운 말 한마디 한마디를 CEO 자신에 대한 공개된 공격으로 인식하거나 갑자기 CEO의 변한 모습에 놀란 직원들이 혹여 발생할 수도 있을 불이익에 몸을 사릴 경우에 예전보다 오히려 반목의 골이 더욱 깊어질 수도 있음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그런 다음, 믿을 만한 사람을 중요한 위치에 하나씩 배치하여야 한다. 즉, CEO 자신에게 집중된 권한을 부분적으로 나누어 이양하더라도 무리 없이 일을 끌고 나갈 수 있는 인재를 발굴해야 한다. 조직 내에서 찾기 어렵다면 외부에서 공인 받고 있는 사람을 찾아라. 그리고 충분한 권한을 부여하여 전담케 하라. 여기서 CEO가 인내심을 가질 필요가 있는데, 초기에 발생할 수 있는 ‘매끄럽지 못함’을 CEO가 직접 나서서 해결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참아내야 한다. 조급함을 버리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때까지 기다려 주어야 한다.

CEO 자신의 강점이 ‘사업’에 있지 않고 ‘기술’이나 ‘재무’ 등에 있다고 판단되면 과감하게 경영 자체를 전문인에게 이관하는 결단이 필요하다. 위에서 예를 든 CEO는 남들보다 뛰어난 기술을 스스로 개발하고 개선하여 그것을 기반으로 지금까지 힘을 들여 회사를 키워 온 사람이다. 예외는 있지만, 대부분의 벤처기업 창업자들이 기술에 대해서는 탁월한 능력을 가졌을지는 몰라도 경영능력은 따라가 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럴 때 CEO는 스스로를 최고기술책임자(CTO) 혹은 R&D 책임자로 포지션을 전환하여 ‘기술’ 측면에 집중하고 경영시스템 안정화와 사업전략을 담당할 전문경영인을 외부에서 긴급 수혈하는 방안을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각자가 잘 할 수 있는 분야에 집중하자는 말이다. 쉽지는 않은 결정이겠지만 장기적인 회사의 발전을 위해서라도, CEO 자신의 건강한 삶을 위해서라도 결단을 내려봄 직한 일이다.

CEO는 외로운 자리다. 회사가 잘 나갈 때나 어려움에 처할 때나 항상 그렇다. 외로움을 느끼면 자연스레 오해와 의심이 싹트기 마련이다. “내 생각은 이러한데 왜 너는 이해를 못하냐” 며 한탄하며 다그치지 말라. 회사의 규모가 커지면 ‘인정’이 아닌 ‘시스템’으로 꾸려가야 한다. 앞서의 CEO처럼 ‘인정’에 기반하여 직원들을 다루던 예전의 습성을 버리지 못하면 성장은 거기서 멈추고 직원들은 하나 둘 등을 돌릴 것이다. 익숙하지 않겠지만 공식화된 시스템을 갖추려고 노력하라. 처음엔 지지부진하고 삐걱대겠지만 시간을 충분히 투자하라. 급하더라도 이때는 돌아가는 것이 빠르고 안전한 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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