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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란한 문명의 꽃을 피웠던 마야 문명은 왜 갑자기 멸망했을까요? 거대한 제국을 형성하며 위세를 떨치던 로마는 왜 분열되었을까요? 거대 석상인 '모아이'를 만들 만큼 높은 문화 수준을 자랑한 이스터 섬의 사람들은 왜 서로 잡아먹을 지경까지 이르러 붕괴되고 말았을까요? 이들 문명이 몰락한 원인들에 대해 많은 고고학자와 인류학자들이 여러 가설을 내놓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계속된 가뭄이 원인이다, 이방인들의 침입을 막지 못해서다, 자원을 무분별하게 써서 없앴기 때문이다, 등등이 그렇습니다. 모든 의견이 다 일리가 있지만, 애석하게도 이들 문명의 몰락을 아우르는 근본원인들을 잡아내지는 못합니다.
'지금, 경계선에서'의 저자인 레베카 코스타는 과감하게도 여러 문명들이 몰락한 근본원인 2가지를 제시합니다. 그녀는 문명의 몰락을 나타내는 2가지 징후로 '정체 상태'와 '믿음이 지식과 사실을 대신하는 상태'임을 지적합니다. 그리고 현대 문명에서 이 2가지가 점점 뚜렷해진다고 경고합니다.
'정체 상태'란 문명이 거대하고 복잡한 문제를 이해하지 못하거나 해결할 수 없게 될 때를 의미합니다. 마야인들은 고질적인 물 부족과 식량 부족 문제를 겪으면서도 수천 년을 유지했습니다. 이는 그들이 문제를 해결할 시간이 수천 년이나 있었음을 의미합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해 점점 심각해지는 자원 부족 문제를 저수지를 만들거나 수로를 정비하는 등 예전에 했던 방법 그대로 해결하고자 고집했죠. 저수지를 만들어 봤자 비가 오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는데도 말입니다. 그들은 인구를 이동시킨다든지 새로운 수원(水源)을 찾는 등의 획기적인 해결책은 생각해 내지 못하는 정체 상태에 빠지고 말았죠.
이렇게 문제해결에 실패하자 '믿음이 지식과 사실을 대신하는' 현상들이 심각해졌습니다. 신체가 절단된 여성과 어린 아이들의 유해가 발굴됐다는 것은 마야인들이 종국에는 신에게 제물을 바치는 주술 행위에 집착했음을 말해 줍니다. 마야인들은 문제를 해결할 실질적이고 논리적인 해법을 멀리하고 격노한 신을 위로하는 것만이 유일한 해법으로 인식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2가지 징후는 왜 발생하는 걸까요? 코스타는 인간의 생물학적 한계를 언급하면서 진화론적으로 설명합니다. 바로 인간의 진화 속도가 문명의 발전 속도를 따라잡기에는 매우 더디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알다시피 인간이 문명을 이루며 살게 된 것은 고작 1만 년 전의 일인데, 1만 년이란 시간은 두뇌가 진화하기에는 턱없이 짧은 시간입니다. 문명이 발달할수록 발생하는 문제의 복잡성 역시 심화되고 결국 인간의 두뇌로 풀 수 있는 지점을 넘어서는 '인식의 한계점'에 도달하게 된다는 게 코스타의 주장입니다. 인식의 한계점에 이르면 기존에 계속해왔던 미봉책을 적용하다가 다음 세대에 책임을 전가해 버리는 지경까지 갑니다. 이것이 문명이 붕괴하는 진정한 원인이라고 코스타는 말합니다.
'정체 상태'와 '믿음이 지식과 사실을 대신하는 상태', 문명 몰락의 2가지 징후가 기업의 흥망을 가늠하는 데에 더없이 좋은 열쇠입니다. 조직의 규모가 커지면서 한때는 별로 심각하지 않았던 문제들이 여기저기서 불거지고 복잡성을 더해갑니다. 매출이 점점 떨어진다든지, 시장에서 지배력을 상실해 간다든지, 직원들의 애사심이 희미해져 간다든지 등의 문제 등은 기업의 생존을 위태롭게 만들죠.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고 이것저것 여러 방법을 써봅니다. 가격을 인하하거나, 틈새상품을 출시하거나, 직원들의 성과평가를 강화하거나, 연봉을 인상해 보거나 하는 방법을 동원합니다.
그러나 이런 방법은 완화책이거나 미봉책에 불과합니다. 회사의 존속을 위해서는 기존 사업을 과감하게 정리하거나, 컨셉트가 완전히 다른 제품 개발에 뛰어들거나 하는 전면적이고 혁신적인 해결책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마야인들이 한곳에 모여 문제를 심각하게 만드는 인구를 분산시키는 해결책을 실행에 옮기지 못했듯이 웬만해선 그런 해결책을 떠올리지 못합니다. 설령 누군가가 혁신책을 내놨다 하더라도 많은 사람들의 격렬한 반대에 부딪히고 맙니다. 단순히 '해보지 않았다'란 이유만으로 반대를 위한 반대를 행하죠. 반대하는 자들이 내놓는 대안이란 과거에도 여러 번 시행했던(하지만 그리 효과적이지 못했던) '열심히 하자' 식의 해결책들입니다.
이것이 바로 코스타가 지적하는 '정체 상태'입니다. 시장 지배력이 약화되는 문제가 여전히 지속되는 데도 문제해결에 한 발자국도 나아지 못하고 완화책이나 미봉책들이 문제를 저절로 해결해 줄 거라 믿고 기대하죠. 그리고 시장에서 유행하는 경영기법들을 적용하면 회사가 금방이라도 좋아질 것처럼 믿고 거액을 쏟아 붓습니다. 효율을 높이면 효과도 높아지리라 헛된 기대심에 사로잡힙니다. 급기야 믿음이 사실을 대신하는 상태에 빠지고 맙니다.
모 회사는 2005년에 외국기업을 주인으로 맞이하면서 기업을 회생시킬 목적으로 공격경영 전략을 기치로 내세웠습니다. 하지만 내막을 살펴보면 새로운 성장동력 없이 영업망의 확충으로만 성장을 추구하겠다는 방안이 주를 이뤘습니다. 그것은 매일매일 되풀이되어 강조해 왔던 영업강화 전략과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시장과 고객에게 새로운 가치의 기준을 제시하려는 전략은 무시한 채 단순하게 영업을 강화하여 많이 팔아내는 것을 공격경영이라 이름 붙이긴 어렵겠죠. 공격경영이란 말 대신 ‘전통적인 전략의 가속화 방안’이란 이름으로 바꿔 부르는 것이 적절합니다. 애석하게도, 그 회사의 공격경영은 익숙한 먹이를 ‘더 많은 인력과 비용을 들여서 더 열심히 찾아내자’라는 의미로밖에 해석되지 않습니다. 결국 이 회사는 최근 들어 또 다른 외국기업에게 팔리면서 여전히 경쟁력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회사는 지금 복잡한 문제를 기존 방법으로만 해결하려는 '정체 상태'에 빠져 있지는 않습니까? 이 방법, 저 방법 써보면 언젠가는 문제가 해결되겠지, 하는 '믿음에 사로잡혀' 있지는 않습니까? 이 2가지 징후가 뚜렷하게 나타난다면, 여러분은 무언가 혁신적인 해결책을 실행에 옮겨야 합니다. 대안 없는 반대는 그만 두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머지 않아 마야인들의 운명을 경험할지도 모를 테니까요.
(* 참고도서 : '지금, 경계선에서', 레베카 코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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