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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가시고기는 흥미로운 물고기입니다. 여러 과학실험에서 피실험자로 자주 등장하는 단골손님이죠. 지난 번에 큰가시고기가 포식자를 향해 나아갈 때에 보이는 행동에 대해 포스팅(누군가가 총대 메기를 원합니까?)했는데요, 이번엔 그것과 비슷하면서 조금 다른 실험을 하나 소개하겠습니다.
애쉴리 워드와 데이비스 숨프터는 커다란 직사각형 모양의 수조에 플라스틱 모양으로 만든 '가짜 큰가시고기'를 넣었습니다. 그리고 진짜 큰가시고기들과 한동안 같이 두었습니다. 모형 물고기에 익숙하게 만들기 위해서였죠. 지난 번에 소개했듯이, 큰가시고기는 다른 물고기가 앞으로 나아가면 같이 따라가는 습성이 있습니다.
(큰가시고기. 이미지 출처 : http://pond.dnr.cornell.edu )
헌데, 따라가는 습성은 무리의 크기에 좌우되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워드와 숨프터는 큰가시고기 2마리를 수조에 넣고 모형 물고기를 앞으로 나아가게 해봤습니다. 그랬더니 2마리 모두 모형 물고기를 따라갔습니다. 하지만 무리의 수가 4~8마리가 되면 절반 정도만 모형 물고기를 따라가는 모습이 발견됐습니다.
앞으로 나아가는 행동은 큰가시고기의 세계에서는 '설득'에 해당합니다. 큰가시고기의 행동을 보면 보다 많은 물고기를 설득하기 위해서는 보다 많은 증거가 필요하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습니다. 이런 가설을 세우고 워드와 숨프터는 무리의 수를 4~8마리로 둔 상태에서 모형 물고기를 하나 더 넣고서 2마리의 모형 물고기를 동시에 앞으로 나아가게 했습니다. 그랬더니 큰가시고기들이 거의 모두 모형 물고기들을 따라갔다고 합니다.
워드와 숨프터는 한 가지의 실험을 더 해봤습니다. 이번엔 20센티미터의 가짜 포식자 물고기를 수조 한 쪽에 놓은 다음에, 모형 큰가시고기를 포식자를 향해 움직였습니다. 진짜 큰가시고기들을 딜레마에 빠뜨리기 위해서였죠. 앞으로 나아가면 포식자에게 잡혀 먹을지 모르고, 그렇다고 가만히 있자니 무리로부터 외떨어지기 때문에 혹시나 있을지 모를 다른 포식자의 표적이 되기 쉬운 상황이었습니다.
진짜 큰가시고기가 2마리일 때는 모형을 따라갈 때도 있었고 아닐 때도 있었습니다. 포식자가 없을 땐 모두 따라갔는 데 말입니다. 게다가 무리의 규모가 커지면 거의 모두가 모형 물고기를 따라가지 않았습니다. 포식자 물고기라는 '압박 상황'에 놓이자 더 보수적이 된 것입니다. 헌데 워드와 숨프터가 포식자 물고기가 있는 상태에서 모형 큰가시고기를 2~3마리로 늘리자 주저했던 물고기들이 모형을 따라가는 행동을 보였습니다.
큰가시고기 실험은 우리에게 무엇을 시사할까요? 집단의 변화를 이끌기 위해서는 한 두 명의 사람들만 움직인다고 일이 성사되지 않음을 보여주는 실험입니다. 변화를 주도하는 자나 변화하고자 하는 자가 일정한 규모에 도달하지 않으면, 리더가 아무리 목소리를 높여도('나를 따르라'는 모형 물고기처럼 앞으로 나아가도) 대다수의 구성원들을 변화에 동참시키지 못한다는 것도 알려주죠. 환경이 구성원 개인들에게 우호적이지 않을 때 더욱 그러합니다.
그렇다면 과연 그 '문턱값', 혹은 '역치'는 얼마일까요? 몇 명의 사람들이 주도해야 집단 전체를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어갈 수 있을까요?
이를 시사하는 실험이 독일에서 행해졌습니다. 연구자는 참여자들에게 하나씩 쪽지를 나눠주었습니다. 10명의 사람들에게는 "9시 방향으로 가라. 하지만 집단을 이탈하지 말라"란 쪽지를 주고, 나머지 190명의 사람들에겐 "집단을 이탈하지 말라"란 쪽지를 줬습니다. 그런 다음, 다른 사람의 쪽지를 보거나 다른 사람에게 쪽지의 내용을 알려주지 못하도록 통제했습니다. 아예 서로 이야기를 나누지 못하도록 했죠.
연구자는 200명의 참여자를 원형으로 모이게 한 다음 출발하라는 신호를 보냈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한동안 혼란스럽게 뒤섞이다가 이내 일정한 방향으로 움직이는 패턴이 발견되었습니다. 9시 방향으로 가라는 쪽지를 받은 사람들을 따라 나머지 190명의 사람들이 함께 움직이기 시작했던 겁니다. 200명 중 5%에 해당하는 10명이 집단의 대다수인 190명을 목적지까지 데리고 간 것이죠. 서로 의사소통을 한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이 실험을 조직의 변화를 이끌기 위해 선봉에 서야 할 사람이 5%가 되어야 한다고 기계적으로 해석하면 곤란합니다. 하지만 중대한 변화를 주도하고 전파하는 데에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필요하지 않다는 점만은 "변화의 5%의 법칙"이라는 말로 새겨둘 만합니다.
5%의 법칙은 우호적이지 않은 환경을 타개하기 위해 구성원을 변화에 동참시키려면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전략보다는 변화의 촉매 역할을 담당할 소수의 사람들을 변화의 리더로 집중 양성하는 전략이 훨씬 효과적임을 상징적으로 나타냅니다.
교장선생님의 훈화처럼 모든 구성원들에게 "변화하자"라고 해봤자 소용이 없습니다. 2~3명으로 이루어진 작은 조직이 아니라면, 리더 역할을 할 '모형 큰가시고기'를 수조 속에 더 많이 넣어야 합니다. 그래야 모두 움직입니다. 하지만 너무 많이 넣을 필요도 없습니다. 5%의 사람들이 95%의 다수를 충분히 견인할 수 있으니까 말입니다(5%란 말은 상징적인 말이니 기계적으로 5%의 사람이 필요하다고 이해하진 않겠죠?).
변화의 5%의 법칙은 '5분 법칙'이라는 말로 바꾸어 개인에게도 적용할 수 있습니다. 힘들고 어려워서 하기 싫은 일이 있을 때 5분만 하고 무조건 끝내자고 마음 먹고 시작해 보세요. 아마 5분, 10분, 1시간 넘게 그 일을 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겁니다.
모든 변화는 '턱'을 넘기가 가장 어렵습니다. 하지만 그 턱을 넘고나면 시원하고 편안한 내리막길이 펼쳐집니다.
(*참고도서 : '스마트 스웜')
(*참고논문)
Quorum decision-making facilitates information transfer in fish shoa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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