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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이란 무엇인가? 선택을 뜻하는 영어 단어인 select는 라틴어인 selectus에서 유래했는데, ‘어딘가로부터(from) 무언가를 분리해서(apart) 취한다’는 뜻을 지녔다. 이런 점에서 선택이란 무언가를 얻는 일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무언가를 버려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따라서 옳은 선택이란 무언가를 얻는 데에서 오는 이득이 무언가를 버리는 데에서 발생하는 손실보다 큰 선택이라 말해도 무방하다. 하지만 대체 옳은 선택은 어떻게 하는 것인가? ‘선택의 기술(The art of choosing)'이라는 원 제목에 맞게 이 책은 선택 자체의 의미와 옳은 선택의 방법에 대한 다양한 심리학적 고찰을 우리에게 소개한다.
저자는 책의 서두를 선택의 권리와 삶에 대한 통제력과의 관계로 시작한다. 선택에 대한 통제력을 잃거나 위협 받으면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좌절한다. 기업 내에서 임금이 적은 근로자일수록 흡연과 비만 가능성이 높고 심장병으로 사망할 확률이 두 배나 높다고 한다. 통제력의 구속을 야기하는 여러 상황들이 혈압을 상승시키는 요인인 까닭이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선택에 대한 통제력을 잃으면 머리도 나빠진다는 또 다른 실험 결과가 떠올랐다. 사람들을 두 그룹으로 나누어 소음을 틀어 놓은 상황에서 수학 문제를 풀게 했다. 한 그룹이 앉은 테이블에는 소음 차단 스위치가 있었고, 다른 그룹에는 없었다. 실험 결과, 스위치를 가진 그룹의 사람들이 문제를 훨씬 많이 풀었고 또 틀린 개수도 얼마 안 됐다.
반면 스위치를 가지지 않은 사람들은 문제를 덜 풀었고 오답도 많았다. 그렇다면 소음 차단 스위치의 사용이 성적을 좌우했을까? 그렇지 않다. 스위치를 가진 그룹은 실제로 스위치를 한 번 밖에 사용하지 않았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차단할 수 있어!’라는 생각이 문제해결능력을 유지시킨 것이다. 선택 그 자체보다는 선택할 수 있다는 통제력이 더 중요하다는 증거이다.
이처럼 충분한 선택권과 통제력은 정신과 신체의 건강 상태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저자는 엘렌 랭거와 주디 로딘이 65~90세의 노인들이 거주하는 요양원에서 실시한 실험을 소개한다. 한 그룹의 노인들에게는 화초를 가꾸거나 영화를 관람하는 등 웰빙에 관한 모든 서비스가 직원들의 통제 하에 이루어질 거라는 메시지를 강조했다.
다른 그룹의 노인들에게는 화초를 스스로 선택하여 가꾸는 것이 노인들의 책임이고 영화를 관람하는 요일을 선택하는 권리를 주었다. 하지만 실제로 두 그룹 모두에게 동일한 화초가 제공되었고 똑같은 영화를 보여주었기 때문에 두 그룹에겐 사소할지 모르는 선택권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 밖에는 없었다.
하지만 결과는 놀라웠다. 3주일 후에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화초를 스스로 가꾸로 영화 관람일을 선택할 수 있었던 노인들이 그렇지 못한 노인들보다 더 행복하다고 느꼈고 보다 활동적으로 다른 사람들과 교류했다. 반면 선택권이 없는 노인들은 3주일이라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건강이 쇠퇴하고 말았다. 6개월 후까지 실험을 진행하자 선택권이 있던 노인들의 사망률이 상대적으로 낮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러나 선택에 대한 통제력이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온다고 해서 무조건 선택의 자유를 누리게 만드는 방법이 개인의 옳은 선택을 보장하지는 않는다는 점을 저자는 놓치지 않는다. 저자는 시티코프 사의 직원들을 대상으로 광범위한 조사를 실시했다. 시티코프는 전세계에 지사를 둔 글로벌기업이라서 다양한 출신의 구성원들이 근무하기 때문에 문화적 차이가 선택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하기에 좋았다.
조사 결과, 동일한 상사 밑에서 일하는 직원이라 해도 아시아계 미국인들은 앵글로색슨계 미국인에 비해서 직장에서의 선택권이 크지 않다고 답했다. 또한 앵글로색슨계 미국인들은 자신들이 선택권을 더 많이 가졌다고 생각할수록 업무의 동기, 만족도, 업무수행 과정에서 더 높은 점수를 받았다. 반면에 아시아인과 아시아계 미국인들은 일상 업무를 상사가 결정한다고 생각할 때 점수가 더 높았다. 선택권이 많다고 지각하는 것이 오히려 업무에 부정적인 향을 미치기도 했다.
처음에 이 실험 결과를 접할 때는 저자(비록 그가 인도계 미국인지만)가 인종적인 편견에 사로잡혀 그릇된 결론을 유도한 것은 아닌지 의심했다. 동양인들의 선택권을 박탈하고 그들의 통제력을 약화시켜야 함을 합리화하려는 의도가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하니 저자의 결론에 수긍이 갔다. 스스로 목표를 정해 실행계획을 수립하고 나중에 그 결과로 평가 받는 미국식 성과주의제도가 우리나라 기업에 잘 정착되지 않는 이유가 바로 선택권에 관한 시각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겉으로는 상사나 조직이 top-down으로 내려주는 목표에 반감이 크다고 말하지만, 스스로 목표와 계획을 수립하라고 하면 몇날 며칠을 고민하는 모습을 자주 봐왔기 때문이다. 우리가 스스로에게 솔직하다면 나보다 우리를 먼저 우선시하고 의존하려는 동양적 사고방식이 개인의 선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저자는 선택지의 다양성이 선택의 결과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도 많은 분량을 할애한다. 인간들은 대체적으로 적은 선택지보다는 선택지의 다양성을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 선택지가 줄어들 때보다는 선택지가 많아질 때를 선호한다.
한 가지 음식만을 먹는 것보다는 여러 가지 음식을 즐길 수 있는 뷔페 음식점을 좋아하는 이유도 그것 때문이다. 그래서 기업들은 개인들의 다양한 취향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가능한 한 많은 종류의 틈새상품을 만들어 내는 전략이 매출 확대와 시장점유에 효과적이라고 기대한다.
하지만 그런 전략은 너무나 많은 선택지로 인해 고객들의 스트레스를 높일 뿐만 아니라 매출에 오히려 부정적임을 저자는 지적한다. 저자가 수행한 유명한 ‘잼 실험’이 그 증거이다. 저자는 시식코너에서 24가지의 잼을 보여줄 때와 6가지 잼을 보여줄 때 고객들이 실제로 얼마나 잼을 구입할지를 살펴봤다. 그 결과 적은 가짓수를 본 고객들의 30퍼센트가 잼을 사겠다고 결정을 내렸다.
반면에 많은 종류의 잼을 본 고객들은 겨우 3퍼센트만이 구매했다. 이처럼 선택지를 줄여서 오히려 매출이 확대된 사례는 여러 가지가 있다. 프록터앤갬블이 헤드앤숄더 샴푸의 종류를 26종에서 11종으로 줄이자 매출이 10퍼센트나 상승했다는 사례가 대표적이다.
선택지가 많아지면 선택되지 않는 것들이 함께 많아지기 마련이라서 자신이 옳은 선택을 했는지 확신을 가지기가 어렵고 경우에 따라서는 수많은 선택지 앞에서 무력해지는 법이다. 사람들에게 많은 수의 선택지를 줄 때보다 적당한 수의 선택지를 줄 때 실제로 선택을 실행하고 자신의 선택에 더 큰 확신을 갖고 더 만족한다는 것이 저자의 결론이다.
저자는 책 말미에 이르러 ‘불편한 선택’에 대해 이야기한다. 불편한 선택이란 무엇을 선택하든 항상 행복이 감소되는 상황을 말한다. 3명이 최대정원인 구명보트에 4명의 가족이 타야할 때 누구를 뒤에 남겨야 하는지와 같은 상황은 선택권을 발휘하는 것 자체가 커다란 고통이고 선택을 강요받는 고문이다. 불편한 선택 상황에 처할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지, 저자는 철학적이면서도 동시에 현실적인 질문을 묵직하게 던진다. 이 점이 여타 심리학 책과는 다른 점이다.
저자가 강조한 것처럼, 선택에 힘이 있는 이유는 바로 불확실성 덕분이고 만약 미래가 결정되었다면 선택은 큰 가치를 지니지 않는다. 선택은 우리의 삶이 투영된 결과물이자 우리의 삶을 남에게 보여주는 매개체이기도 하다. 선천적인 시각장애자인 저자 쉬나 아이엔가는 시각장애라는 불행을 스스로 선택하지 않았지만, 장애가 주는 불확실성과 모순에 굴하지 않고 선택을 연구하는 학자가 되겠다는 선택지를 취함으로써 스스로 옳은 선택의 귀감이 된다.
무언가를 취하는 데에서 얻는 이득을 무언가를 버리는 데에서 오는 손실보다 커야 옳은 선택이라 했다. 옳은 선택에 영향을 미치는 것들, 옳은 선택을 나쁜 선택으로 만드는 함정들, 옳은 선택의 기술, 그리고 ‘삶에서 옳은 선택이란 무엇인가’ 하는 철학적 물음을 폭넓게 들여다보고 싶다면 이 책이 좋은 교사가 되리라고 생각한다. 많은 이들의 일독을 권한다.
(* 교보 북모닝CEO에 게재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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