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뎅으로 생일 파티를!   

2008. 2. 20.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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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내 생일이었다. 어줍잖게 이제 나도 중년 초입이다. 해서 생일날이 그다지 반갑지는 않지만, 1년에 하루 밖에 없는 날이니 가족들과 조촐하게 파티를 할 생각이었다.

헌데 유치원에서 전화가 오더니 아들녀석의 머리에서 열이 펄펄 끓는단다. 이마를 짚어 보니, 외식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평소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리던 녀석이 내 가슴에 안겨서 고양이처럼 앓는 목소리를 한다.

어쩔 수 없이 오늘 파티는 물 건너 갔다고 생각하며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오는 길이었는데, 문득 오뎅('어묵'이 옳은 표현이지만...) 생각이 났다. 이른 황사 때문에 뿌옇고 을씨년스러운 날씨라서 그랬던지 뜨끈뜨끈한 오뎅을 집어서 한 입 꿀꺽 하고 싶었다. 점심이 부실해서인지 배도 고팠다.


집 근처에 '명품 오뎅'집이 있다. 다른 곳이랑 차원이 다른 맛이라나? 주인의 자부심이 가게 이름에 잘 나타나 있다. 한꺼번에 오뎅 6000원 어치와 떡볶이 6000원 어치를 사니 주인 아저씨는 기분 좋은 눈치였다.

집에 돌아와 아이에게 약을 먹이니 곧 쌕쌕하며 잠에 빠져 들었다. 다행히 심하지는 않은 듯하다. 아이가 안쓰러웠지만 배가 꼬르륵댔다. 미안하다, 아들아! 아빠가 너무 배고프단다! 아내와 나는 게 눈 감추듯 오뎅과 떡볶이를 신나게 해치워 버렸다. 먹을 욕심으로 많이 산 떡볶이가 반 정도 남게 됐지만 말이다.

생일날에 오뎅과 떡볶이라... 뭐 나쁘진 않다. 인생이란, 계획된 대로 움직이지 않는 것이거늘, 생각지 않던 일 때문에 잘 생긴 케잌을 대신하여 오뎅과 떡볶이로 생일 파티를 벌이는 경우도 있기 마련이거늘. 그 또한 행복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P.S.
잠 자던 아이가 깨고 나서 조금 전에 케이크에 촛불을 켜고 생일축하 노래를 불렀다.
초가 부족하게 들어있어서 졸지에 서른 네살이 됐다. 회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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