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의 영어몰입교육 정책은 애초부터 실패할 가능성이 매우 높게 보인다. 인수위의 '다급한' 정책 발표와 수정 제안이 실패 확률을 더 높이고 있다. 그 이유를 다음의 비유를 통해 설명해 보고자 한다.
핵심부품이 50개로 이루어진 자동차와, 10개로 이루어진 차가 각각 1대씩 있다. 가격, 디자인, 성능, 품질 등 기타 조건이 모두 동일하다고 한다면, 여러분은 어떤 차를 선택하는 것이 좋을까?
답은 핵심부품의 개수가 작은 차를 고르는 것이 안전을 위해 옳은 결정이다. 각 핵심부품이 제대로 동작할 확률(즉, 신뢰도)이 99.94%라고 해보자. 이 정도 신뢰도면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50개 핵심부품 모두가 올바르게 작동할 신뢰도를 구하려면 99.94%를 50번 곱하면 된다. 그 값은 97%이다.
반면 핵심부품이 10개로 이루어진 차가 제대로 운행할 신뢰도는 99.94%를 10번 곱해서 얻은 99.40%이다. 핵심부품이 50개로 이루어진 차보다 1.6%가 더 높은 신뢰도를 가진다. 이 정도(1.6%) 차이는 별 것 아니라고 여길지도 모르지만, 자동차를 100만 대 생산한다고 했을 때, 1만 6천대에 해당하는 값이기 때문에 무시할 숫자가 아니다.
이 예가 시사하는 바가 무엇일까? 복잡하게 설계된 제도나 시스템일수록 오류가 발생할 확률이 높아진다는 의미가 된다. 그러므로 최대한 단순하게 설계하는 것이 제도의 오류룰 최소화하는 방법이 된다. 오류는 복잡한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는 영어몰입교육 정책은 취약한 제도들의 '꾸러미'로 구성되어 있다. 완성도(신뢰도)가 낮은 제도들의 꾸러미로 이루어져 있어서 그 중 하나가 실패하면 정책 전체가 와르르 무너질지 모든다. 예를 들어, 인수위가 내놓은 영어몰입 정책 중 대표적인 '영어수업을 영어로 진행한다는 방침' 하나도 여러 가지 세부 요건이 갖추어져야 성공이 가능하다.
우선, 영어로 수업이 가능한 교사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교사를 확보하려면 기존 교사를 교육시켜야 하고 새로운 교사를 충원해야 한다. 기존 교사를 교육시키려면, 예산이 있어야 하고 그들을 교육시킬 또다른 선생(원어민)들과 교육기관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bla bla bla...
이렇게 조금만 생각해 보면, 영어수업을 영어로 하기 위해서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 있는 여러 가지 세부 제도들 모두가 잘 실행이 되어야 한다. 그 중 어느 하나의 세부제도가 삐끗하면 영어수업을 영어로 하는 야심찬 계획 조차도 수포로 돌아갈 수 있다. 그리고 영어몰입 정책은 흐지부지 되고 만다.
만일 영어몰입 정책에 누수가 발생하면, 해결을 위해 보완 장치를 붙이게 된다. '개선'이라는 이름 하에 말이다. 그러나 그런 조치가 항상 좋은 결과를 낳지는 않는다. 위의 예에서 말했듯이, 오히려 추가로 덧붙여진 보완 장치가 영어몰입 정책 전체의 복잡성을 높이고 실패 확률 역시 높이게 된다. 최악의 경우 보완장치가 정책의 본질을 압도하는 상황이 연출될지도 모른다.
비전을 제시하는 것은 좋다. 그러나 의욕에 차서 너무 앞서 나가면 안 된다. 임기 내에 할 수 있는 것부터 차근차근 해야 한다. 10년 야당의 한풀이일지 모르지만, 이슈를 빵빵 터뜨리는 인수위의 정책 발표는 국민으로부터 환영받지 못할 뿐더러 처음부터 실패확률을 크게 안은 채 가는 위험한 행동이다. 교육은 백년지대계이지, 오년지소계(五年之小計)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숨 좀 고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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