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과관계를 파헤쳐 봅시다   

2009. 7. 3.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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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가설을 실증하는 단계로 넘어오겠습니다. 실증(proof)이란 가설의 참/거짓 여부를 밝히는 과정이고, 관찰을 행할 때 설정되는 가설은 문제의 원인에 초점을 맞춰야 좋은 가설임을 지금까지의 포스트에서 언급했습니다. 따라서 실증은 '인과관계'를 밝히는 과정이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실증이란,
1) 가설의 참/거짓 여부를 밝히는 과정
2) 인과관계를 증명하는 과정

그렇다면 인과관계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말 그대로 두 개 이상의 사건이 '원인과 결과의 관계'로 묶인다는 뜻입니다. 아주 자명해서 굳이 정의할 필요가 없다 싶을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문제해결사의 자격을 취득하려면 흠결 없는 실증을 위해서 인과관계의 의미를 올바르게 알아야 합니다. 

영국의 철학자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은 인과관계가 성립하려면 다음의 3가지 조건을 반드시 만족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인과관계 성립조건
1) 원인이 결과보다 시간적으로 먼저여야 한다.
2) 원인과 결과가 서로 관련이 있어야 한다.
3) 다른 인과적인 설명은 배제되어야 한다.

머리가 어지러우시죠? ^^


첫번째 조건은 너무나 당연해서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 수 있습니다. 원인이 되는 사건이 먼저 일어나야 결과의 사건이 벌어지지, 결과가 먼저 생겨난 다음에 원인이 발생하지는 않습니다. 물론 문제해결사가 처음 문제를 접할 때는 결과가 먼저 눈에 들어오지만, 그렇다고 결과가 원인보다 앞서서 발생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이 첫번째 조건을 제시하면 많은 분들이 '당연한 말을 왜 해?'라며 약간은 빈정거리며 자신만만한 표정을 짓습니다. 그러나 문제해결에 직면하여 실증을 행할 때, 이토록 자명한 인과관계의 성립조건을 망각하는 경우가 심심찮게 발생합니다. 시간적인 선후관계를 따져보지 않고 마음대로 인과관계란 표시를 합니다.

예를 들어, '직원들에게 충분한 양의 업무량이 주어지지 않아서 직원들이 태만하다'라는 가설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충분하지 않은 업무량이 원인이고, 직원들의 태만함이 결과라고 제시된 가설이죠. 수학에서 쓰는 형식으로 이 가설을 표시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충분하지 않은 업무량 → 직원들의 태만함

일할거리를 많이 주지 않으면 남아도는 시간이 많기 때문에 동료들과 잡담하거나 멍하니 자리를 지키는 것이 당연합니다. 따라서 인과관계가 성립된다고 보기 쉽죠. 허나 '당연함'에 도사린 함정을 조심해야 합니다. 과거 경험이나 타 사례를 통해 자동적으로 이러한 인과관계를 옳다고 인정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자명하다는 본능적 판단을 억제하고, 충분하지 않은 업무량이 직원들의 태만함보다 시간적으로 먼저 일어났는지의 여부를 따져보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직원들이 다른 이유(예:월급이 짜서)로 태만하게 일하니까 관리자들 사이에 암묵적으로 '어차피 일을 많이 줘 봤자 안할 테니 이 정도의 일만 시키자'라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업무량이 점차 적어졌는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직원들의 태만함이 먼저 발생했다면 위의 가설을 참이라 단정 짓기 어렵습니다.

두번째 조건인 '원인과 결과는 서로 관련이 있어야 한다'를 살펴보죠. 이 조건도 지극히 당연하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서로 관련이 있다'라는 문구에 주의해야 합니다. 이 말을 상관관계란 의미로 오해하면 곤란합니다. 상관관계란 두 개의 사건 사이에 규칙적인 관계가 존재함을 일컫는데, 인과관계와 혼동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인과관계가 성립하면 상관관계도 성립합니다. 그러나 상관관계가 성립한다고 해서 항상 인과관계가 존재하는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이 일화는 실제가 아니라, 진화생물학자인 스티븐 제이 굴드가 자신의 저서 '풀 하우스(Full House)'에서 상관관계를 인과관계로 오인하는 경향을 비꼬기 위해 쓴 글입니다.

유명한 통계학자가 데이터를 분석해 본 결과,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바로 술주정꾼 검거 건수와 침례교 목사 수 사이에 '정(+)'의 상관관계가 존재했기 때문입니다. 통계학자는 이렇게 결론을 내렸습니다. "술주정꾼이 많아져서 그들을 계도하려고 목사들이 많아졌다." 목사가 많아진 원인이 술주정꾼이 늘었기 때문이라는 주장입니다. 과연 그럴까요?

한 마디로 그의 결론은 엉터리입니다. 술주정꾼이 많아진 사건이나 침례교 목사가 늘어난 현상이나 모두미국 인구의 증가가 원인이기 때문입니다. 술주정꾼과 목사 수 사이에는 강한 상관관계가 존재하지만, 그것을 가지고 바로 인과관계가 존재한다고 말하지 못합니다. 상관관계가 있으나 인과관계도 있다고 주장한다면 "목사 수가 많아진 시대상황을 개탄(?)하느라 술주정꾼도 많아졌다"는 말도 우스꽝스럽게 성립돼 버립니다.

두번째 조건에서 '서로 관련이 있다'라는 말은 '원인이 발생하면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결과가 일어난다', 혹은 '결과가 일어나지 않았다면 원인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를 의미합니다. '업무량이 충분하지 않으면 반드시 직원들이 태만해지고', '직원들이 열심히 일한다면 업무량이 적을 리 없다'는 뜻이죠. 상관관계를 의미하지 않음을 유의하기 바랍니다.

세번째 조건 '다른 인과적인 설명은 배제되어야 한다'는 무슨 말일까요? 이 말은 좀 어렵습니다. 천천히따져보겠습니다. '업무량이 충분치 않으니 직원들이 태만해지고, 동시에 월급도 줄었다'고 가정하겠습니다. 이럴 때 우리가 다뤄야 할 사건은 1) 충분치 않은 업무량, 2) 줄어든 월급, 3) 직원들의 태만함, 등 3개가 됩니다.

'충분치 않은 업무량이 반드시 직원들의 태만함으로 이어진다'는 것이 우리가 실증할 가설임을 다시 상기하기 바랍니다. 이 가설을 증명하려면, '업무량은 태만함과 전혀 관련이 없다. 월급이 줄어들어서 직원들이 태만해졌다'라고 주장하는 또다른 인과적 관계를 배제해야 합니다. 

'줄어든 월급'이라는 인과적 설명을 배제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업무량이 충분하지 않은 상황(원인)에서 월급이 줄어들지 않았을 경우(배제할 인과관계)에 직원들이 태만(결과)해졌는가?'를 증명하면 됩니다. 쉽게 말해 월급이야 줄든 늘든 원인과 결과 사이의 관계가 확고하다면 인과관계가 성립되고 가설도 실증됩니다.

그러나 '충분치 않은 업무량'만으로 '직원들의 태만함'을 설명할 수 없다면, 즉 '줄어든 월급'이라는 또다른 원인이 가미되어야 직원들이 태만해진 이유를 설명할 수 있다면, '충분하지 않은 업무량 → 직원들의 태만함'이라는 가설은 기각되고 다음과 같이 새로운 가설을 설정해야 합니다.

(충분하지 않은 업무량) and (줄어든 월급)  →  직원들의 태만함

반증(Disproof)이란, 가설이 거짓임을 밝히는 과정입니다. 위에서 실증이란 인과관계를 증명하는 과정이라고 했으므로, 반증은 인과관계가 성립하지 않음을 증명한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반증의 실행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반증의 실행방법
1) 원인과 결과가 시간적으로 거꾸로임을 증명한다.
2) 원인과 결과 사이에 상관관계가 없다는 증거를 찾는다.
3) 대체하거나 보완할 새로운 인과적 설명을 찾는다.

요약하면, 실증은 가설의 참/거짓 여부를 증명하는 과정이고, 결국은 인과관계가 성립하는지를 밝히는 절차입니다. 위에 제시한 인과관계의 성립조건을 명확히 인지해야만 참인 가설을 거짓으로, 혹은 그 반대로 증명하는 오류에 빠지지 않습니다. 문제해결사는 이를 명심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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