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설'이라는 색안경을 끼세요   

2009. 6. 30.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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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포스트에서는 현상 중에 '문제가 벌어지는 상황'을 기술하기 위한 관찰을 살펴보면서 순수하게 객관적인 관찰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오늘은 현상의 나머지 부분인 '문제 발생의 잠정적 원인'과 '문제 속에 내재된 해결책의 실마리'를 관찰을 통해 어떻게 파악할지를 설명하겠습니다.

현상이란, 
1) 문제가 벌어지고 야기하는 상황   --> 어제 다룬 내용
2) 문제 발생의 잠정적 원인
3) 문제 속에 내재된 해결책의 실마리

문제가 벌어지는 상황을 관찰하면서 자연스럽게 문제 발생의 잠정적인 원인들을 함께 파악합니다. 비유하자면, 지붕에서 비가 새는 문제를 관찰할 때 '아, 저기에 구멍이 생겨서 그렇구나'라며 원인을 알아차리는 것과 같습니다. '직원들이 태만하고 불평불만이 심하다'는 문제라면 왜 직원들이 그럴 수밖에 없는지를 함께 보고 듣게 됩니다. 월급이 적어서, CEO가 너무 강압적이라서, 혹은 직원들 모두 건강에 이상이 생겨서, 등등 원인이 여러 가지가 있겠지요.

또한 관찰을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잠정적 해결책에 대해 힌트를 얻게 됩니다. 비록 잠정적이지만, 파악된 문제의 원인을 뒤집어보면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기 때문입니다. 원인을 제거하면 문제가 발생하지 않으리라는 가정 하에 잠정적인 해결책을 구상할 수 있습니다. 월급이 적다면 월급을 올려주거나 업무량을 줄여주는 해결책을, CEO의 강압적인 리더십이 문제라면 CEO에게 리더십의 변화를 주문하거나 용퇴를 권하는 해결책을 생각할 수 있겠죠.

물론 관찰을 통해 파악된 원인과 해결책은 확정적이지 않습니다. 어디까지나 잠정적이고 실마리에 불과합니다. 왜냐하면 문제의 원인이 실제로 그러한지, 그 해결책은 문제를 해결하기에 적절한지 검증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 검증의 과정을 '실증(Proof)'라고 합니다. 기억하겠지만, 관찰을 통해 습득한 현상(Situation)은 실증의 관문을 통과해야 '사실(Fact)'로 인정받습니다. 실증의 체에 걸리면 현상은 사실이 아니라 거짓이 되는거죠.

문제 발생의 잠정적 원인과 해결의 실마리를 찾고자 관찰을 실행할 때 '그냥 들여다 보면 알겠지'란 자세는 그다지 권할 만한 방법은 아닙니다. 물론 생전 처음 접하는 종류의 문제이거나 아무런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을 경우엔 무작정 관찰하는 방법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낫습니다. 

가설이란 색안경을 끼고 폼나게 문제를 해결합시다!


하지만 능력 있는 문제해결사라면 관찰에 앞서 '가설(Hypothesis)'을 반드시 마련해야 합니다. 이는 필수적인 전제조건입니다. 가설이란, 이러이러할 것이라고 답을 미리 내리는 것을 말합니다. '월급이 적어서 직원들이 태만할 거야', '매출이 오르지 않는 건 제품에 하자가 많아서야'라고 원인의 답을 단정적으로 선언하는 것이 바로 가설이죠. 

문제의 원인을 단정적으로 선언한다? 아마도 이 말이 불편한 느낌으로 다가올 겁니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선입견과 편견을 배제해야 하는데, 이렇게 색안경을 끼고 문제를 관찰한다면 잘못된 방향으로 해결책을 내놓는 것이 아니냐 우려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가설 설정은 선입견이나 편견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오히려 그런 편향으로부터 영향을 차단하기 위한 방법이 가설 설정입니다. '월급이 적어서 직원들이 태만할 거야'라는 가설을 가지고 관찰에 임했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직원들과 CEO를 인터뷰하고 데이터를 분석해 보니 이 가설이 성립되지 않는다(틀렸다)면 미련 없이 가설을 버리고 새로운 가설을 세우면 됩니다. 

비록 문제해결사 본인이 일반적으로 직원의 태만은 월급이 적기 때문이라는 고정관념을 평소 지녔다 해도 그 가설을 실증적으로 검증하지 못한다면 자신의 편견을 채택하지 못합니다. 가설 설정이 없으면 관찰의 초점이 흐릿하기 때문에 슬그머니 자신의 편견을 반영할 위험이 오히려 큽니다.

이렇게 해서 계속 가설을 선언하고 검증하는 과정을 거치면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에 바짝 다가갈 수 있습니다. 만일 가설을 세우지 않는다면 문제해결의 과정이 무척 더디게 진행됩니다. '직원들이 태만한' 원인과 잠정적 해결책의 풀(pool) 전체를 다 따져봐야 하는데, 그럴려면 시간이 무한정 소요될 수밖에 없습니다.

해결책의 효과 뿐만 아니라 해결의 신속성도 문제해결의 품질에 굉장히 중요한 요소입니다. 일단 가설을 세운 다음 검증해서 '살리거나 버리는' 과정을 몇 번 반복하면 문제해결의 시간을 상당 부분 단축할 수 있습니다. 문제해결사가 베테랑이냐 애송이냐의 차이는 가설을 얼마나 잘 활용하느냐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가설을 설정하면 왜 문제해결의 시간이 단축될까요? 예를 들어 설명하겠습니다. 어떤 선생님이 1부터 100 사이의 숫자 하나를 혼자서만 생각해 둔 다음, 학생들에게 그 숫자를 맞혀 보라고 합니다. 가설 설정에 능한 학생이라면 이렇게 묻겠죠. "50보다 큽니까?" 선생님이 아니라고 대답하면 또 이렇게 묻습니다. "25보다 큽니까?" 그렇다는 선생님의 대답에 "37보다 큽니까?"

이런 식으로 가설을 설정해서 묻고 선생님으로부터 검증을 받아나가면 숫자를 빠르게 찾을 수 있습니다. 만약 그 숫자가 27이라면 6번만 질문하면 답을 말할 수 있지요. 가설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운이 나쁠 경우 100번이나 질문과 대답을 반복해야 하므로 선생님이나 학생 모두 지쳐 버릴 겁니다.

관찰을 진행하는 동안 가설의 진위 여부가 금새 드러납니다. 관찰의 절차가 모두 끝나고 나서야 검증이 완료되는 가설은 거의 없습니다. 경험 많은 문제해결사들이 하나 같이 말하듯, 관찰하는 동안 가설의 기각과 새로운 가설 수립이 활발하게 일어나기 때문에 관찰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문제의 근본원이에 도달합니다. '월급이 적어 직원들이 태만하다'는 가설을 가지고 인터뷰를 진행해보니 5명 중 아무도 그런 원인을 언급하지 않고 다른 이유를 더 성토한다면 그 가설을 곧바로 폐기하거나 제쳐두고 다른 가설을 세우면 됩니다. 굳이 50명의 인터뷰를 다 끝낼 때까지 기존의 가설을 붙들고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편견을 배제하고 문제해결 과정을 신속히 진행할 수 있다는 장점을 알아도 가설의 설정이 어렵다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이는 훈련이 제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원래 '가설 사고'는 과학자들이 현상을 탐구할 때 사용하는 방법으로서 아주 오래 전부터 유용성이 증명돼 있습니다. 그러나 지식과 문제풀이만을 주입식으로 교육하던 중고등학교 과학 시간 덕택(?)에 정작 사회생활에 더 유용하게 쓰이는 가설 지향의 사고방식을 제대로 습득할 기회가 없었지요.

가설 설정에 익숙해지려면 견문과 경험을 넓힐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직면하는 대부분의 문제들은 처한 상황만 조금씩 다를 뿐 이미 많은 사람들이 겪은 문제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습니다. 완전히 새로운 문제란 하늘 아래 별로 없습니다. 직원들이 게으르고 생산성이 낮아서 고민했거나, 매출이 급락해서 위험을 겪은 조직들이 과거에도 지금도 존재합니다.

그런 조직들의 문제가 구체적으로 어떤 원인 때문이었는지 또 어떻게 해결했는지를 살펴보면 '직원들이 이런이런 이유 때문에 태만할 것 같다'는 가설을 세울 수 있습니다. 또한 문제해결사가 경험이 많으면 자신의 데이터베이스에서 해당 문제에 연관된 잠정적 원인들을 가설로 뽑아낼 수 있지요. 

만일 전혀 배경지식이 없는 특이한 문제에 봉착했다해도 일단 가설을 세워보는 습관을 들이십시오. 억지스럽더라도 가설을 세우는 편이 그렇지 않는 것보다 문제해결을 신속히 진행할 수 있음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관찰이란 현상을 파악하는 행위입니다. 그리고 실증의 관문을 거쳐야 현상이 사실로 격상됩니다. 이렇게 말하면, 관찰과 실증이 시간적으로 선후관계에 있다고 느낄지 모르겠습니다. 관찰을 먼저 행하고 실증이 그 다음이라는 생각 말입니다. 그러나 관찰과 실증은 종종 동시에 일어납니다. 관찰할 때 행하는 가설 검증이 곧 실증인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또한 실증을 행할 때 다시 관찰의 과정을 거치기도 합니다. 관찰과 실증은 선후관계를 따질 수 없는 유기적인 관계입니다.

관찰에 의해 일단 검증된 가설일지라도 뭔가 미심쩍거나 추가적인 검증이 필요한 것들이 있습니다. '월급이 적어서 직원들이 태만하다'는 가설이 인터뷰에 의해서 '거의 그렇다'라고 나왔다면 좀더 확실한 검증의 과정이 필요합니다. 직원들이 인터뷰할 때 실제를 왜곡해서 대답하거나 질문자의 편견 때문에 그런 답변이 나오도록 유도질문을 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그것들은 아직 확정된 사실이라 보기 어려우므로 심도 깊은 실증의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실증은 다음에 다루겠습니다.

관찰은 '주관적으로 결정되는 객관적 사실'이라는 말의 의미는 관찰을 행할 때 가설을 가지고 임해야 함을 뜻합니다. 가설이라는 색안경을 끼십시오. 맨눈으로 관찰한다면 쓸모없는 데이터 더미에 깔려 문제해결이 매우 더디다는 점을 기억해두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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