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히 '객관적인 관찰'은 없습니다   

2009. 6. 29. 10:43
반응형

지난 포스트에서 논증의 구조와 문제해결의 구조에 대해 논했습니다.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논증의 절차에서 가장 먼저 오는 단계가 '관찰'입니다. 오늘은 문제해결 과정의 첫단추이자 핵심이기도 한 '관찰'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언급했듯이, 관찰(observation)이란 현상(situation)을 파악하기 위한 활동입니다. 대부분의 문제해결사들은 의뢰인의 제시한 문제를 둘러싼 상황과 정황(context)를 되도록 빠르고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효과적인 문제 해결의 열쇠임을 압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현 상황을 모르고 어떻게 바람직한 해결책을 낼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능숙한 문제해결사라면 문제가 야기하는 상황을 단순히 스케치하는 것에서 관찰을 멈추지 않습니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활동만을 관찰이라고 생각하지 않죠. 문제해결 과정의 초기일지라도 그들은 문제해결을 염두에 두고 관찰을 행합니다. 문제가 벌어지는 상황을 기록하고, 그것으로부터 문제의 원인을 가늠하며, 나아가 문제에 대한 잠정적인 해결책을 미리 구상해보면서 문제의 해답에 다가가려 합니다. 나중에 다시 언급하겠지만, 그래야 문제해결이 신속하게 이뤄지기 때문입니다. 

다음과 같이 관찰은 상당히 적극적이고 주관적인 과정입니다. 

1) 문제가 벌어지는 상황을 기록하기 위한 관찰
2) 문제의 원인을 가늠하기 위한 관찰
3) 문제 속에 내재된 잠정적인 해결책을 미리 구상하기 위한 관찰

위에서 관찰은 현상을 파악하기 위한 활동이라고 말했습니다. 따라서 '현상'을 보다 자세히 정의 내리면 '문제가 벌어지는 상황', '문제의 원인', '문제 속에 내재된 해결책의 실마리' 모두를 일컫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과 귀로 들리는 것만이 현상이 아닙니다. 이를 주의하십시오.

현상이란, 
1) 문제가 벌어지고 야기하는 상황
2) 문제 발생의 잠정적 원인
3) 문제 속에 내재된 해결책의 실마리


"저기 좀 보세요!"


이 3가지 종류의 현상 중에서 첫번째(문제가 벌어지고 야기하는 상황)에 대해 설명하겠습니다.

어떤 회사의 직원들이 매우 태만하고 불평불만도 심하다고 가정해 봅시다. 의뢰인(아마도 CEO)이 여러분에게 이런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요청을 내렸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먼저 '누구의 문제인지' 문제의 주인을 명확히 해야 한다고 지난 포스트에서 말씀 드린 바 있습니다. 이 경우엔 CEO의 문제라고 가정하겠습니다. 그렇다면 CEO의 입장에서 '직원들이 매우 태만하고 불평불만이 심하다'라는 문장이 이 회사의 문제로 정의되겠죠.

이제 문제해결사인 여러분은 CEO의 요청에 따라 관찰을 진행합니다. 직원들이 진짜 태만하고 불만이 많은지 옆에서 지켜보거나, 문서로 된 데이터와 자료를 검색하거나, 설문지를 돌리는 등 여러 가지 방법을 관찰에 동원합니다. 그 중에서 인터뷰는 가장 널리 쓰이면서 문제해결 때마다 필수적으로 적용되는 방법입니다. 의뢰인의 이야기를 좀더 자세히 듣는 것부터 시작하여 직원들의 일부 혹은 전부를 만나 CEO가 제시한 문제를 어떻게 인식하고 원인이 무엇이며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에 관해 심층적으로 묻습니다. 인터뷰는 문제해결사가 갖춰야 할 매우 중요한 스킬이므로 나중에 따로 정리해 보겠습니다.

직접 관찰이든, 인터뷰든 여러분이 관찰을 행할 때는 항상 '측정(measurement)'의 문제에 직면합니다. 직원들이 CEO의 생각처럼 진짜 태만하고 불만이 많은지 측정할 수 있는 방법이 있어야 합니다. 또한, 측정 방법이 정해진 후에는 어느 정도를 태만하다고 볼지, 어느 수준을 불평불만이 많다고 여길지를 정해 놓아야 합니다. 

이는 결코 녹록한 일이 아닙니다. '태만하다'를 측정하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요? 직원들이 잦은 지각을 일삼는다면 태만하다고 봐야 할까요? 아니면 지시한 일을 마감시간이 넘도록 완료짓지 않는 걸 태만하다고 측정해야 할까요? 또한 지각을 1주일에 몇 회 범한 걸 태만하다 봐야할지, 마감시간을 몇 시간 넘긴 걸 태만하다고 봐야할지 어렵습니다. 짧은 단어지만 '근무태만'이라는 문제를 측정하는 방법은 무수히 많고 측정의 척도(scale)도 다양하기 때문에 관찰은 단순히 지켜보기만 해서 끝날 일은 아닙니다.

우리는 보통 '관찰은 객관적이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관찰의 행위에 주관이 개입되면 결과가 왜곡된다고 생각하면서 '주관적인 관찰'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냅니다. 그러나, 관찰과 측정은 필연적으로 매우 주관적인 활동입니다. 흔히 드는 예로서, 물이 1/2이 든 컵을 생각해 보십시오. 눈에 비치는 컵의 모습은 하나이지만, '컵에 물이 반이나 차 있다', '컵에 물이 반 밖에 남지 않았다' 등처럼 다르게 해석됩니다. 이처럼 단순한 문제는 객관적인 측정이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조직의 정성적인 문제로 들어가면 순수히 객관적인 관찰과 측정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선 측정방법을 택할 때부터 주관이 개입될 수밖에 없습니다. 근무태만을 측정하는 수많은 방법들을 모두 채용하지 못하므로 문제해결사 자신의 논리와 신념에 따라 그 중 몇 개를 선택하기 때문입니다. 측정의 척도를 정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정도의 지각 횟수는 근무태만이라 보기 어려워'라고 판단을 내리는 것도 주관이 강하게 개입된 결과입니다.

따라서 문제해결사들은 '근무태만'이란 상황은 '이런이런' 관점으로 '이런 정도'의 척도로 측정하겠노라고 미리 선언해야 합니다. 자신의 주관을 공개함으로써 객관성을 확보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순수한 객관성에 목을 맨다면 측정 방법과 척도를 정하지 못해서 결국 문제해결에 한 발자국도 다가서지 못합니다. 객관적 학문의 총아라고 여겨지는 과학에서도 얼마나 많은 주관적 관점이 개입돼 있는지 아십니까? 관찰의 주관성은 학문의 발달 뿐만 아니라 문제해결에도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관찰 결과를 청취하는 입장에서도 문제해결사가 어떤 관점으로 관찰을 행했는지 인식할 의무가 있습니다. 계량적이지 않다, 주관적인 판단 이다, 라며 무조건 '객관성'을 외치고 문제해결사를 비판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런 사람은 문제해결의 본질을 모르는 헛똑똑이입니다. 비판을 위한 비판만을 일삼는 문제해결의 적입니다.

'관찰은 객관적이어야 한다'는 말의 정확한 의미는 '관찰에 사용되는 주관을 최대한 객관화해야 한다'는 말로 이해해야 합니다. 관찰은 주관적으로 결정되는 객관적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문제해결사는 자신이 어떤 관점으로 문제를 바라보는가, 어떤 색안경을 끼고 문제에 접근하는가를 먼저 깨닫고 이를 다른 사람에게 알려야 합니다. 이것이 관찰하는 자가 준수해야 할 제1의 덕목입니다.

다음에는 관찰의 나머지 목적인 두번째와 세번째에 대해 논의해 보겠습니다.

【한RSS로 편하게 제 블로그를 구독하세요】  

반응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