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인류가 해결하지 못한 불치병 중 3위에 랭크된 병은 놀랍게도 '천식'이다(1위=감기, 2위=암). 천식이란 폐 속에 있는 기관지가 아주 예민해진 상태로, 때때로 기관지가 좁아져서 숨이 차고 가랑가랑하는 숨소리가 들리면서 기침을 심하게 하는 증상을 나타내는 병을 말하는데, 기관지의 알레르기 염증 반응 때문에 발생하는 알레르기 질환이다(출처 : 서울대병원).
천식을 일으키는 물질을 '알레그렌'이라 부르는데, 집안의 먼지, 곰팡이, 진드기, 꽃가루, 짐승의 털 등이 알레그렌에 해당된다. 천식을 예방하고 잠재우려면 알레그렌에 노출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의사들은 조언한다. 하지만 천식이 발병하는 메커니즘은 아직 불분명해서 뾰족한 치료방법은 없다.
천식 환자의 수는 1970년 이후로 10년마다 약 50%씩 증가해왔다. 1980년 이후로는 더 급증하기 시작해서 매일 14명의 환자가 천식으로 목숨을 잃는다. 이런 속도로 천식이 확산된다면 2020년에는 10명 중 1명이 천식에 걸릴 거라는 전망이 나온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천식 환자의 급증 현상은 후진국이 아니라 뉴질랜드, 영국, 네덜란드, 일본, 호주, 핀란드와 같은 선진국에서 나타난다. 생활환경이 후진국에 비해 훨씬 청결해서 알레그렌에 노출되는 정도가 적을 텐데도 천식은 선진국에 사는 사람들(특히 어린이)을 괴롭힌다.
선진국에서 천식이 발호하는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여러 가지 가설이 제기됐다. 첫번째는 환기가 잘 되지 않는 주택 구조와 과도한 난방이 천식 급증의 원인이라는 설이다. 하지만 '들이마시는 먼지'의 절대량으로 볼 때 옛날과 그리 다를 바 없기 때문에(그때는 온갖 더러운 것들과 어울려(?) 살았다) 이 가설은 힘을 얻지 못한다.
두번째 가설은 '위생 가설'이라 불리는 것으로, 사람들이 폐를 너무나 '곱게' 사용하기 때문에 천식이 쉽게 발생한다는 주장이다. 상대적으로 옛날보다 깨끗한 환경을 영위한 나머지 조금의 불결함에도 쉽사리 천식이 발병한다고 위생 가설은 지적한다. 다시 말해, 먼지가 '부족해서' 천식의 위험이 더 커졌다는 소리다. 위생 가설은 천식이 주로 선진국을 중심으로 급증한다는 점에서 현재로서는 가장 유력한 가설이다.
위생 가설이 맞다고 가정하면, 집안과 공기 중의 먼지와 곰팡이 등을 없애준다는 진공청소기와 공기청정기가 오히려 천식의 발병을 조장하는 물건일지도 모른다. 예전엔 퀘퀘한 먼지 구덩이에서도 견딜 수 있었지만 진공청소기로 말끔히 청소된 집에서 온실 속의 화초처럼 지내다보니 폐가 작은 먼지에도 쉽게 천식에 걸리는 건 아닐까? 깨끗한 집안 공기를 유지함으로서 천식과 아토피 등을 예방해 준다고 광고하는 공기청정기가 과연 효과가 있을지 의심해 볼 일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진공청소기와 공기청정기를 쉽게 포기하기 어렵다. 진공청소기가 없으면 빗자루로 먼지를 쓸어 담아야 하는데, 사실 그게 더 많은 먼지를 들이마시도록 하기 때문에 '약해진 폐'는 천식에 걸리기 더 쉽다. 밀폐식 창문이 많아지는 주거시설에서 공기청정기가 없으면 발생한 먼지를 죄다 마셔야 하므로 역시 천식에 노출된다.
천식과 먼지. 그리고 먼지와 공기청정기(혹은 진공청소기). 이 불편한 3각관계를 들여다보면 '붉은 여왕'의 이야기가 자연스레 떠오른다.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에서 붉은 여왕은 엘리스에게 "제자리에 있고 싶으면 계속 뛰라"고 명령한다. 왜냐하면 붉은 여왕의 나라에는 자신이 움직이면 주변의 물건들도 함께 따라서 움직였기 때문이다. 죽을 듯 달려야 주변 물건들보다 한걸음 더 나아갈 수 있었다.
천식을 막으려고 진공청소기와 공기청정기가 윙윙 돌아가지만 그 덕에 폐가 예방력을 잃는다. 약해진 폐가 천식에 걸리지 않도록 진공청소기와 공기청정기가 더욱 맹렬히 움직여야 한다. 가히 붉은 여왕의 '저주'라 할 만하다. (물론 위생 가설이 옳다는 가정 하에서...)
자동차, 컴퓨터, 정보통신, 미디어, 정밀화학제품, 의약품 등 인간이 탄생시킨 수많은 문명의 이기들이 이 저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인간이 현재에 봉착한 건강 문제와 환경 문제를 해결하려면 적어도 '죽을 듯 달리는 것'이 해결책은 아닌 듯하다. 언젠가 벽에 부딪히기 때문이다.
위생 가설은 문명의 이기로부터 서서히 탈피하여 자주적인 삶을 영위하려는 자세가 궁극의 해결책임을 시사한다. 인간 스스로의 '근력'을 키우는 방향으로 삶의 조건들을 개선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원하든, 원치 않든 드디어 '자연으로 돌아갈' (루소는 이 말을 전혀 다른 의미로 썼지만) 시기가 도래한 건 아닐까?
반응형
'[경영] 컨텐츠 > 리더십 및 자기계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뻔뻔하게 삽시다 (12) | 2009.06.15 |
---|---|
모든 권력과 권위에 도전하라 (10) | 2009.06.01 |
'예, 아니오'에서 발견하는 동서양의 차이 (6) | 2009.05.18 |
'학교 우등생'은 '사회 우등생'이 못된다고? (5) | 2009.04.27 |
문장을 깔끔하게 쓰기 위한 9가지 팁 (65) | 2009.04.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