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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설턴트라는 직업 특성상 고객사 직원들로부터 직무조사서를 취합 받는 경우가 종종 있다. 수거된 직무조사서를 기초로 직무기술서(Job Desc.)를 작성하기 위해서다. 작은 회사라면 모르지만, 직원 규모가 500명이 넘어가기 시작하면 이 작업에 드는 품이 만만찮다.
그런데 대부분의 노력과 시간은 직원들이 작성한 문장을 가필하고 재작성하는 데 소요된다. 고칠것 없이 정갈하게 작성됐더라면 간단하게 수정만 하면 끝이지만, 아쉽게도 컨설턴트가 처음부터 죄다 뜯어 고쳐야 할 문장이 제법 많다. 주어와 서술어가 호응하지 않는다든지, 지나치게 명사형을 남발한다든지, 구어와 문어가 섞였다든지 그 이유도 여러 가지다.
그래서 여기에 직원들이 2~3줄 밖에 안 되는 짧은 문장을 쓰면서도 자주 범하는 오류나 잘못된 글쓰기 습관 몇가지를 제시하고 바람직한 글쓰기 방향을 생각해 보자. 말 잘하는 능력보다 글 잘 쓰는 능력이 더 인정받기 때문에(개인적으로 나는, 말은 잘 하는데 보고서는 엉망인 친구를 높이 평가하지 않는다) 글쓰기 습관을 가다듬으면 업무(혹은 승진)에 도움이 될지 모른다.
나의 문장력이 그리 훌륭하지 않거니와 글쓰기를 강론할 수준은 절대로 아니기 때문에 주제 넘은 소리일지 모르겠다. 고백하자면 나도 아래에 적힌 사항을 어길 때가 많다. 자신의 문장 쓰기 습관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아울러, 덕분에 직무기술서를 작성하는 시간을 절약하길 기대한다(^^ 농담이다).
1. 지긋지긋한 접속사, '및'
문장을 고치면서 가장 많이 접하는 단어 중 단연 1등은 '및'이라는 접속사다. 이를테면 다음과 같다.
(나쁜 예) 타부서 및 타기관의 요청에 대하여 신속 및 정확한 대응 및 방안을 제시한다.
무슨 말인지 대략 알겠는데, 여러 번 읽어봐야 정확한 뜻이 들어오는 문장이다. '및'을 남발했기 때문이다. '~와(과)'나 '~하고'라고 하면 될 문장에 '및'을 여러 개 중첩해서 써서 난독증을 유발한다. 소리 내어 읽으면 '및'이란 단어에 액센트가 들어가기 때문에 술술 읽히지 않는다. 깔끔하고 잘 읽히는 문장을 쓰려면 절대로 '및'이란 접속사를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및'을 쓰지 않고도 충분히 기술이 가능하다.
(좋은 예) 타부서와 타기관의 요청에 신속하고 정확하게 대응하고 방안을 제시한다.
절대 '및'을 쓰지 마라. 다 잊어도 이것 하나만 기억해 두자.
2. '~하도록 한다'식 서술어
국민 MC 유재석의 진행 멘트를 잘 들어보면 '본격적으로 무엇무엇을 시작해 보도록 하겠습니다'라는 식의 말이 귀에 걸릴 때가 많다. 이러한 오류는 너무 많아서 일일이 고치기 어려울 정도다.
(나쁜 예) 마케팅 계획 및 전략 수립시 OOO부서의 입장을 반영하도록 한다.
'~하도록 한다'라는 서술어는 누군가(타인)에게 무언가를 하도록 만들겠다는 뜻이다. 자기 자신을 그렇게 하도록 만들겠다고? 사역동사(make 등)를 쓰는 영어에서는 가능한 표현이지만 국어에서는 거북한 표현이다. 그냥 '본격적으로 무엇무엇을 시작하겠습니다'라고 해도 충분하다.
(좋은 예) 마케팅 계획과 전략을 수립할 때 OOO부서의 입장을 반영한다.
덧붙여서, 위의 '전략 수립시'라는 표현도 어색하긴 마찬가지다. 아마 일본식 표현에서 유래된 습관 같은데, 간단하게 '~할 때'라고 써야 깔끔하다.
3. '~대하여' 혹은 '~관하여'의 남발
이 문구는 쓸데없이 문장 길이를 늘여서 가독성을 급격히 떨어뜨리는 주범 중 하나다. 다음의 문장을 보라.
(나쁜 예) OO분석 결과에 대하여 문제점을 발견하고 신규제품 지식에 관하여 숙지할 수 있다.
'~대하여'라는 문구가 들어가면 뭔가 대단한 내용을 이야기하듯 느껴지는 효과가 있기 때문에 공식적인 문서에서 많이 발견된다. 하지만 지나치게 남발하면 촌부가 화려한 장신구를 주렁주렁 건 모습처럼 어색하다. '~대하여' 혹은 '~관하여'라는 말을 쓰지 않고도 얼마든지 간결하게 기술이 가능하다.
(좋은 예) OO분석 결과에서 문제점을 발견하고 신규제품 지식을 숙지한다.
4. '~할 수 있다'라는 서술어
위의 예에서 '숙지할 수 있다'를 '숙지한다'라고 고쳐 썼다. 영어 번역 문장에 길들여져 'can'이나 'may'에 해당하는 '~할 수 있다'라는 서술어를 지나치게 많이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
(나쁜 예) 적절한 담당자의 도움을 받아 연구 및 프로젝트 수행을 할 수 있다.
소설가이자 번역가인 안정효는 그의 책 '글쓰기 만보'에서 '~할 수 있다'식의 서술어를 문장쓰기에서 척결해야 할 습관 중 하나로 지적한다. 물론 '~할 수 있다'를 빼기가 곤란한 문장도 간혹 있지만, 그게 아니라면 '~한다'라고만 해도 충분하다. 안정효는 문장 전체를 뜯어 고쳐서라도 '~할 수 있다'를 없애라고 조언한다. 명심해 두자.
(좋은 예) 적절한 담당자의 도움을 받아 연구와 프로젝트를 수행한다.
'~할 수 있다'식 문장을 보면 글쓴이의 소심함이 느껴진다. 자신 있게 '~할 수 있다'라는 말을 없애고 '~한다'라 고쳐 쓰자
5. '~하고 있다'라는 서술어
동작이 계속되는 상황을 표현하는 '~하고 있다'라는 서술어가 많이 쓰인다. 이것 또한 불필요한 장식이다. 안정효는 문장에 자신이 없기 때문에 '~하고 있다'가 남발된다고 꼬집는다. 직원들이 쓴 문장에서는 '이해하고 있다', '보유하고 있다', '알고 있다' 등의 표현이 많다.
(나쁜 예) OO산업 및 XX시스템에 대해 이해하고 있다.
그저 아래의 예처럼 '이해한다', '보유한다', '안다'라고 해도 뜻을 전달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 안정효가 말했듯이, '~하고 있다'라는 표현은 문장력의 밑천이 드러날까 두려워하기 때문에 나온다. 진정한 문장력은 짧게 쓰는 용기에서 나옴을 기억하자.
(좋은 예) OO산업과 XX시스템을 이해한다.
6 '~시킨다'라는 서술어
이 서술어는 위에서 언급한 '~하도록 한다'와 유사하다. '시킨다'는 다른 이가 하게 만든다는 뜻이므로 자신에게 쓰기엔 어색한 말투이다. 보통 아래의 예처럼 자신의 의지를 강조하려고 '~시킨다'라는 붙인다.
(나쁜 예) OO을 제안하여 XX시스템을 변경시킨다.
그저 '~한다'라고 해도 충분하다. '~시킨다'라는 군더더기를 붙일 까닭이 없다.
(좋은 예) OO을 제안하여 XX시스템을 변경한다.
7. 명사형의 나열
가독성을 떨어뜨는 주범은 명사형 단어들을 지나치게 주렁주렁 이은 문장이다. 아래의 예를 보라.
(나쁜 예) 프로젝트 진행 과정 판단 미숙으로 문제 발생 확률 예측 실패 야기 가능성을 점검한다.
설마 이런 문장을 누가 썼을까 싶지만, 실제로 직원에게서 받은 문장이다. 읽어보면 숨이 턱턱 막혀서 괴롭기까지 한 문장이다. 문장을 짧게 쓰는 것도 좋지만 이 경우는 심했다. 명사형을 지양하고 서술어를 적절하게 사용하라. 주렁주렁 달린 명사 몇 개를 빼내어 간결하게 하라. 그래야 문장이 한껏 정갈해지고 우아해진다.
(좋은 예) 프로젝트 진행을 잘못 판단하여 문제가 발생할 확률을 예측하지 못하는지 점검한다.
8. '~성(性)'이란 명사
직원들이 쓴 문장에서 '방향성, '효율성', '효과성', '중요성', '연관성'처럼 '~성'으로 끝나는 단어를 자주 접한다.
(나쁜 예) 회사 방향성과 관련하여 전문성 있는 아이디어를 제안한다.
하나의 명사로 굳어진 단어라면 모를까, 아무 명사에나 '~성'을 붙이면 꽤 어색하다. '~성'으로 끝나는 명사는 대개 젠체하려는 수단이다. '방향성'이 대표적인데, 그냥 '방향'이라고 하면 충분하다. 효율성, 효과성도 효율, 효과라고 하면 그만이다.
(좋은 예) 회사의 방향에 전문가로서 아이디어를 제안한다.
9. 기타
위의 8가지 사항 이외에도 많은 사항들이 있다. '~것', '~통해', '~등'이라는 문구도 자주 남발되는데, '글쓰기 만보'를 통해 많은 분들이 이미 알고 있으니 여기서는 생략한다. 100% 없애기 어렵겠지만 최대한 쓰지 않아야 깔끔하고 맛있는 문장이 된다. 특히 '~것'은 매우 자주 쓰이는데, 그걸 쓰지 않고도 문장을 만드는 방법을 매번 고심하기 바란다(이는 안정효 선생의 충고다).
지금까지 하나의 문장을 어떻게 하면 깔끔하게 쓰는지 나름의 방법을 서술해 봤다. 문장보다 큰 문단과 글 전체의 구성 문제는 나의 능력을 넘어서는 일이니 시도조차 하지 않겠다. 지금까지 주제 넘는 자의 문장 쓰기(글쓰기가 아님) 이야기였다. ^^
(* 이 글에도 9가지 사항을 위반한 문장이 있을지 모른다. 찾아서 지적해 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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