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실험을 해보면 어떨까요? Gemini(제미나이)에게 "우리 회사의 향후 5년 동안 추진해야 할 중점 전략이 뭔지 알려줘"라고 질문해 보세요. 그리고 똑같은 질문을 ChatGPT나 클로드에게 해보세요. 아마도 '디지털 전환 가속화', '고객 경험 최적화', '지속 가능한 ESG 경영' 같은 말들이 '공통'으로 등장할 겁니다. 어디서 많이 보던 말 아닌가요? 여러분의 회사뿐만 아니라 경쟁사 혹은 다른 업계에서도 생존전략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나오는 것들 아닌가요?
AI가 우리 인간보다 더 창의적이고 객관적인 전략을 줄 것이라 기대한다면 적어도 아직은 그런 기대를 가져서는 안 된다는 걸 유념하세요. 최근 연구에 따르면 AI는 오히려 우리를 '트렌드의 늪'에 빠뜨리는 주범이 될 수 있으니까요.
연구자들은 제미나이나 ChatGPT 같은 언어 모델(LLM)들에게 기업의 전략적 조언을 구하는 실험을 했는데요, 소위 '트렌드 슬롭(Trendslop)'이라 불릴 만한 일반적이고 뻔한 유행어들이 나열되는 결과물을 얻었습니다. AI는 방대한 데이터를 학습하면서 가장 확률적으로 높은 답변, 그러니까 '가장 대중적인 답변'을 선택하도록 설계됐기 때문이죠. 각각의 기업이 가진 독특한 상황이나 조건, 혁신적인 아이디어들은 AI 입장에서는 '노이즈'로 취급되고 맙니다.
전략은 '적을 이기기 위한 방법'이고, 적을 이기려면 '적이 알지 못하도록 행동'해야 합니다. AI가 제시하는 전략은 이런 측면에서 볼 때 '말만 전략이지, 전혀 전략적이지 않은 전략'입니다. 남들과 비슷해지도록 추천하는 걸 전략이라고 부를 수는 없지 않습니까? 차별화된 경쟁 우위를 잃고 시장의 평균치로 수렴한다면 경쟁 환경에서 결국 퇴고할 테니까요.

여러분의 기업이 드라마 같은 TV콘텐츠 제작업체라고 해보죠. AI에게 "어떤 콘텐츠를 제작해야 할까?"라고 물으면, AI는 현재 가장 유행하는 장르, 흥행이 보증된 배우 리스트를 조합해 주겠죠. 만약 이 제안을 따른다면 '케이팝 데몬 헌터스'나 '오징어 게임' 같은 파격적인 대박 콘텐츠에 투자하지 못할 겁니다. 막장 드라마 같은 양산형 콘텐츠 생산에 머무를 테니까요.
개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계발을 위해서 AI에게 "10년 후 살아남을 커리어 전략은 뭐야?"라고 묻는 직장인들이 요즘 많을 텐데요, 아마도 AI는 십중팔구 AI 리터러시, 관계 중심의 리더십 함양, 해결책보다 질문에 집중 등의 조언을 할 겁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문제는 모든 이에게 이런 답을 제안한다는 데 있습니다. 남들이 다 하는 것을 똑같이 따라한다면 여러분의 역량은 대체 가능한 것이 되겠죠. AI의 조언은 어디까지만 조언일 뿐, 여러분의 고유한 강점과 연결시키지 못하면 '평균의 감옥'에 갇힐 겁니다.
AI를 전략의 초안을 이끌어내는 도구로 활용하되, 그 결과물을 결론으로 받아들이지 말고 오히려 그것을 '피해야 할 레드오션'이라고 가정해 보세요. 통찰은 AI가 준 답변의 반대편을 질문할 때 비로소 시작됩니다. "AI는 이렇게 말하는데, 우리가 가진 자원 중 이 논리와 정반대로 작동하는 것은 무엇인가?" 혹은 "AI가 간과하고 있는 우리 조직만의 특수한 문화적 맥락은 무엇인가?"를 집요하게 파고드는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오늘은 AI의 답을 천천히 읽어보고 이렇게 말하는 연습을 해 보세요. "방금 네가 준 답변은 너무 일반적이야. 업계의 상식을 깨뜨리면서도 실행 가능한 독특한 대안 3가지만 다시 제시해." AI를 '현자'로 보지 말고 여러분과 치열하게 논쟁하는 '토론 상대'로 설정하기 바랍니다. (끝)
*참고기사
https://hbr.org/2026/03/researchers-asked-llms-for-strategic-advice-they-got-trendslop-in-retur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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