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의 회사에서 진행하는 회의는 얼마나 효율적입니까? 짐작컨대 이 질문에 긍정적으로 대답할 사람은 별로 없을 듯한데요, 제 컨설팅 경험상 '회의 시간이 과도하다'라고 불만을 토로한 직원들을 매번 만나기 때문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조직은 여러 조치를 취하는데요, 그 중 가장 대표적인 곳이 회의 전에 자료를 배포하여 참석자들 필히 그 자료를 읽고 들어오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알지 못한 상태에서 회의실에 들어와 그제서야 허겁지겁 자료를 훑어보면 그만큼 소중한 회의 시간을 까먹게 될 뿐만 아니라 아젠다와 관련하여 좋은 아이디어를 제시하기도 불가능에 가깝다는 게 이유일 겁니다. 언뜻 보면 좋은 방법 같지만, 저는 이것이 지나치게 이상적인 상황을 가정한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습니다.
참석자들이 회의 시간 전에 아젠다와 관련 자료를 숙지하고 읽는 시간은 어디에서 뚝 떨어지는 공짜 시간이 아닙니다. 그걸 읽느라 자기가 맡은 업무를 옆으로 제쳐 놔야 하고 그 시간은 고스란히 ‘일하지 않는 시간’이 되죠. 겉으로 보이는 회의 시간 자체는 줄어들더라도 어디에선가 그만큼의 시간이 소요돼야 합니다. 그러니 회의 시간이 줄어들었다고(즉 효율이 좋아졌다고) 마냥 좋아할 일은 아닙니다. 세상사가 모두 그렇듯,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게 있는 법이죠.
게다가 회의 주최자가 마음대로 참석자를 지정해 놓고서 ‘회의 참석 전에 자료를 숙지하고 들어오라’고 하는 것은 참석자 입장에서 볼 때는 ‘내 업무와 내 재량에 대한 침범’일 수 있습니다.
제가 그간 회의를 주최해 본 경험을 떠올려 봐도 자료를 다 숙지하고 회의실에 입실한, 정말로 ‘고마운’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위해 자료를 브리핑하는 것으로 매번 회의를 시작하곤 했죠.
회의 전에 자료를 읽고 들어 올 사람이 거의 없을 거라면, 회의실에 들어오고 나서 자료를 읽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요? 사실 이것은 아마존이 채택하는 회의 방식이기도 합니다. 아마존의 회의는 침묵으로 시작된다. 참석자들은 발표자로부터 ‘6페이지로 된 내러티브(narrative) 문서’를 받아 그때부터 읽습니다. 발표자가 앞에 나와 파워포인트 슬라이드를 브리핑하는 일반적인 모습과는 전혀 다른 방식이죠.
‘문서 읽기 시간’으로 부여된 20분 동안 회의실엔 종이 넘기는 소리만 나는, 약간은 괴이하기까지 한 적막이 이어진다고 해요. 참석자들은 꼼꼼히 문서를 읽으며 궁금한 것을 표시하고 메모합니다. 20분이 지나가면, 그때부터 열띤 토론이 벌어지죠. 참석자들은 발표자(문서 작성자)에게 질문을 던지거나 아이디어를 제시하고 발표자는 쏟아지는 질문을 ‘디펜스’하거나 아이디어를 수용합니다. 아마존의 숱한 히트 상품들은 이런 회의를 통해 탄생했습니다.
의 주최자는 회의 전에 자료를 만들어 배포하려고 애쓰지 마세요. 회의가 열리기 2~3일 전에는 보내줘야 한다는 압박을 받지 마세요. 참석자들은 “자료 숙지하고 회의에 들어오라고 요구하려면 자료를 일찍 보내줘야 하지 않겠소?”라고 핑계를 대겠지만, 장담컨대 대부분은 아무리 자료를 일찍 보내준들 읽지 않습니다!
미리 보내줄 시간에 자료(혹은 보고서)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활용하는 게 각자의 생산성 측면에서 현명합니다. 그리고 아마존이 그리 하듯이, 회의 시작과 함께 참석자들에게 브리핑하지 말고 그들이 직접 자료를 꼼꼼히 읽게 만드세요. 어때요? 한번 시도해 보지 않으시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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