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할 때 '장담하면' 위험합니다   

2023. 10. 25. 08:00
반응형

바로셀로나의 상징인 ‘사그라다 파밀리아’를 설계한 안토니오 가우디는 1886년에 이 성당을 착공하면서 10년 안에 완공할 수 있다고 장담했지만 아직까지도 완공되지 않았습니다(2026년에 완공 예정). 이처럼 처음의 예상에서 한참 빗나간 사례들은 셀 수 없이 많습니다. 이러한 유형의 오류를 ‘계획 오류’라고 부릅니다. 프로젝트나 전략의 성공 가능성과 이득을 과장하고, 실패 가능성과 비용을 실제보다 낮게 예상하는 바람에 낭패를 겪게 되는 것이죠. 계획 오류는 기업에서 크고 작은 사업계획을 수립하거나 결정할 때도 동일한 양상으로 나타납니다. 

새로운 제품을 시장에 출시할 때 ‘시장 수요의 10퍼센트를 점유한다면 매출이 이 정도가 되고, 이익도 이 정도가 되겠지’라며 시뮬레이션하곤 하는데요, 문제는 이런 시뮬레이션을 할 때, 자신도 모르게 실패 확률을 적게 추산하고, 소요 비용을 적게 예측한다는 것입니다. 

왜 계획 오류가 발생하는 걸까요? 행동경제학자 대니얼 카너먼은 초심자가 아니라 전문가들에게서 계획 오류가 주로 나타난다고 지적합니다. 많이 안다는 것’이 오히려 계획 오류를 야기하는 주범이이라는 것이죠.

 



스탠포드 대학교의 파멜라 힌즈는 이를 증명하고자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힌즈는 실험 도구로 휴대폰을 사용했는데요, 당시는 1990년대 중반이라 휴대폰이 널리 보급되지 않았기 때문에 참가자들 중에는 휴대폰을 한번도 사용해 보지 않은 사람이 많았습니다. 힌즈는 휴대폰을 능숙하게 사용하는 휴대폰 영업   사원들, 어느 정도 써본 사용자들, 그리고 이용 경험이 전혀 없는 초심자들, 이렇게 세 그룹의 참가자를 모집했습니다.

힌즈는 초심자라면 최신형 휴대폰에 딸려오는 설명서만 보고 음성 메시지함에 인사말 저장하기, 음성메시지 발송하기, 도착한 음성메시지 확인하기 등을 얼마나 빠른 시간 내에 완료할지 참가자들에게 예측해보라고 했습니다. 실제로 초심자들은 평균 31.5분 내에 과제를 완료했는데요, 휴대폰 사용에 익숙한 영업사원들은 초심자들이 휴대폰 음성 메시지함 사용법을 익히는 데 13분 밖에 걸리지 않을 거라 예측했습니다. 예측의 오차가 거의 20분이나 됐던 것이죠. 초심자의 학습 능력을 가장 근사하게 예측한 그룹은 휴대폰을 사용한 경험이 어느 정도 있는 사용자들이었습니다.

오랫동안 휴대폰을 사용해 온 영업사원의 예측력이 떨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어떤 기술이나 방식을 처음 배울 때는 그것을 의식적인 기억 속에 저장하지만, 익숙해지고 활용능력이 발달할수록 그 기술은 무의식의 영역으로 자연스레 자리를 옮깁니다. 

그렇게 되면 한 가지 부작용이 발생하는데요. 그 기술을 배울 때 어떤 어려움에 봉착했는지, 그 어려움을 해결하는 데 얼마나 시간이 소요됐는지 등을 망각하는 것입니다. 간단히 말해 “남들이 모를 수 있다는 것을 모른다”는 뜻이죠.

상사가 지시한 업무를 마감일이 지나도록 끝내지 못해서 야단 맞은 경험이 한번 이상 있을 겁니다. 상사는 ‘왜 그렇게 간단한 일을 아직까지 못하느냐?’고 야단치면서 ‘나는 예전에 그런 일을 금방 끝냈어!’라고 덧붙이는 경우가 있습니다. 따지고 보면 상사가 마감일을 너무 빠듯하게 설정했을지 모르는데 말이죠. 역설적이지만 그 이유는 상사의 경험과 노하우가 풍부하기 때문일지 모릅니다. 한 분야에 오래 근무한 사람들은 자신의 전문성 때문에 계획 오류에 빠지지 않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기업들이 크고 작은 프로젝트 계획을 수립할 때 혹은 중장기 전략을 세울 때 ‘미래의 조직’을 이상화하고 낙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미래의 조직이 ‘현재의 조직’보다 더 나은 상태라고 보장할 수 없는데도, ‘그때가 되면 수월하게 해낼 수 있겠지. 지금의 어려움이 어떻게든 해결되겠지’라고 막연한 기대를 겁니다. 바로 이것 때문에 근거 없는 낙관주의로 인한 계획 오류가 발생합니다. 일정을 빠듯하게 잡고, 비용을 과소 산정하고, 기대효과를 한껏 부풀리게 되죠.

리더가 본인의 전문성을 과신하거나, 미래의 조직은 현재의 조직에 비해 더 체계적이고 더 효율적이며 더 경쟁력 있고 더 일사불란한 조직일 거라 믿으면, 오늘 수립하는 크고 작은 계획들은 태생적인 리스크를 잉태하고 맙니다. 계획을 실행할 조직이 어떤 상황인지 냉철하게 판단할 때 계획은 현실성과 실현가능성을 담보할 수 있습니다.

[함께 읽으면 좋은 글]
과도한 판단인지 늘 의심하고 의심하라     https://infuture.kr/1355

반응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