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생각없이 던졌지만 상대에게 무안을 줄 수 있는 어투 중 가장 흔한 건 “난 괜찮은데.”라는 말입니다. ‘괜찮다’는 말이 무슨 문제라고요? 이 말이 어떤 상황에서 튀어나오냐가 문제죠. 예를 들어, A라는 사람이 더운 여름날 땡볕 아래를 걷다가 친구의 방에 들어갔는데, 친구가 에어컨도 켜지 않고 책을 읽는 중이라고 해보세요. 그 상황에서 시원하고 쾌적한 실내를 기대했던 A가 친구에게 “에어컨도 안 켜고 뭐해? 안 더워?”라고 불평 섞인 말을 합니다. 그러자 친구는 빙긋 웃으며 A에게 말합니다. “난 괜찮은데.” 그러고는 다시 시선을 책으로 향하죠. 자, 문제 해결 끝!
여러분이 A라면 어떤 감정이 생길까요? 친구는 “난 괜찮은데.”란 한마디를 내뱉으며 문제 해결이 끝났음을 가볍게 선언해 버렸습니다. 비록 말로 표현하지는 않지만 친구가 ‘네가 더운 건 더운 거고 나는 괜찮으니 나 보고 어쩌라고. 네가 더운 건 내 문제가 아니야.’라는 뜻을 전하는 것 같아 기분이 나빠지지 않을까요?
서로 가까운 친구 사이라면 윽박을 지르거나 리모콘을 빼앗아 직접 스위치를 누르면 됩니다. 하지만 그저 알고 지내는 정도라서 내 마음대로 에어컨을 만질 수 없는 상황이라면, 무안함을 느끼면서도 땀이 삐질삐질 나는 방에서 그와 시간을 보내야 합니다. 왜냐하면 '에어컨을 틀지 않아도 그는 괜찮기' 때문입니다.
너무 어둡지 않아요?, 난 괜찮은데. / 볼륨이 좀 작아요. 난 괜찮은데. / 배고파요. 난 괜찮은데. / 그 일은 어려워요. 난 괜찮은데. / 멀미가 나요. 난 괜찮은데. / 재미없지 않나요? 난 괜찮은데. / 맛 없어요. 난 괜찮은데… 이런 대화를 오늘도 한번쯤 하지 않았나요?
‘난 괜찮은데’의 직장 버전도 여럿 있습니다.
우리 회사에 회식이 너무 많습니다. 난 괜찮은데. / 김대리는 요즘 이러저러해서 타인에게 불편을 주고 있습니다. 난 괜찮은데. / 이 보고서를 이렇게 바꿔야 하지 않을까요? 난 괜찮은데. / 우리팀의 분위기가 요즘 좋지 않습니다. 난 괜찮은데. / 이런 회의는 무의미합니다. 난 괜찮은데….
이와 같이, 직원의 문제 제기를 ‘난 괜찮다’는 말 한마디로 단번에 해결해 버리는 상사의 신공을 경험하지 않았나요?
‘난 괜찮은데.’가 어떤 이유로 입밖으로 튀어나오든 간에, 버려야 할 말버릇인 건 확실합니다. 제기된 문제가 크건 작건, 상대방의 관점으로 문제를 바라보지 않기 때문이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 있기 때문이죠. 더운데도 에어컨 안 틀어준 친구에게 빈정이 상해서 수십년의 우정이 와르르 무너질 수 있고, 맛없는 음식을 혼자만 맛있게 먹어치우는 남자친구를 보고나서 있는 정 없는 정이 다 떨어질 수도 있습니다.
“방이 너무 덥지 않아?”라는 말은 “너무 덥다. 좀 시원하게 좀 해줘.”란 뜻이기에 “그래? 집에 있어서 더운지 몰랐어. 에어컨 틀어줄게.”라고 하면 됩니다. 여친이 음식이 맛없다고 말하면 “그래? 어떤데?”라고 물은 다음 “다음에 맛있는 걸 먹도록 하자.”라고 하면 됩니다.
동료간, 상하간 소통을 막는 수많은 이유 중에는 이렇듯 사소한 말버릇(“난 괜찮은데.”)이 있습니다. 직원들은 어떤 문제를 제기하든 ‘난 괜찮은데’라고 대꾸하는 상사와 무슨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요? “회식이 너무 많아요.”란 소리를 들으면 “난 괜찮은데.”라고 자동적으로 튀어나오는 자신의 입을 막고서 “왜 그렇게 생각하지?”라고 물으면 됩니다.
물론 무조건 직원의 요구를 들어주라는 뜻은 아닙니다. 그 이유를 충분히 들은 다음 가타부타 본인 생각을 말해야 한다는 뜻이죠. ‘난 괜찮은데’가 판단의 기준이 되어서는 절대 안 된다는 점을 명심하는 오늘이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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