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PI에 대한 맹신을 버려라   

2014.04.14 09:00




알다시피 KPI는 Key Performance Indicator의 약자입니다. 우리말로 핵심성과지표라고 하죠. 매년 말이나 매년 초에 조직이 달성해야 할 성과를 KPI로 구체화하고, 얼마나 달성해야 하는지 타겟을 설정합니다. 회사의 KPI가 설정되면 팀KPI가 결정되고 그에 따라서 개인KPI까지 설정되는데, 이를 ‘캐스캐이딩한다’고 말합니다. 


캐스캐이딩은 굉장히 정교하고 논리적이고 과학적인 과정이라고 여겨지곤 합니다. 조직KPI와 개인KPI까지 한 눈에 보면 기업이 잘 돌아가도록 조정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죠. 마치 조종사가 비행기 계기판을 들여다보면서 비행기를 조종하는 것처럼(KPI를 설명하는 책에서 항상 등장하는 비유) 말입니다. 하지만 KPI는 절대 과학적이고 정교한 경영관리 도구가 아닙니다. 오늘은 구체적으로 KPI가 어떤 문제가 있는지, 왜 KPI를 맹목적으로 믿으면 안 되는지, 정리하는 차원에서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첫 번째 문제는 진정한 성과를 외면한다는 것입니다. 보통 KPI는 계량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것으로만 설정되곤 합니다. 그래야 평가를 해서 보상을 할 수 있기 때문인데, 그래서 우스꽝스러운 KPI가 등장하는 게 한 두 가지가 아닙니다. 전략수립 부서에서 정해진 KPI 중에는 ‘보고서 작성 개수’ 같은 것이 설정되고, 인사부서에서는 직원들과 커뮤니케이션을 더 많이 하겠다면서 ‘간담회 성사 건수’ 같은 것이 KPI로 떡 하니 올라갑니다.


많은 기업들의  진정한 성과의 대부분은 측정할 수 없는 비계량적인 부분에서 나온다는 것을 망각합니다. 개인이나 조직이 KPI는 다 달성했는데, 조직 전체로 보면 회사가 더 나아지지 않았는데도 성과급이 직원들에게 나가는 경우가 많은데, 그 이유는 바로 측정할 수 있는 계량지표만 KPI로 설정되기 때문입니다. 


이를 보완하려고 비계량지표를 KPI로 설정하는 조직도 있지만, 문제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인사부서에서 ‘직원들의 커뮤니케이션 만족도’를 설정하지만, 조사 주체가 인사부서로 되어 있어서 얼마든지 만족도 값을 조작할 수 있죠. 교육부서에서는 직원들을 교육시키고 나서 ‘교육만족도’를 측정케 하지만, 교육의 장기적인 효과는 측정하는 데에는 실패하죠. 보통은 강사가 얼마나 교육생들을 재밌게 해줬는가만 측정되곤 합니다.



출처: johnbostock.me



KPI의  두 번째 문제는 도전 의욕을 떨어뜨린다는 것입니다. KPI의 원래 취지는 직원들의 도전의지를 높이자는 것인데 오히려 의욕을 떨어뜨리고 게으르게 만드는 경우를 너무나 자주 접합니다. 도전적으로 목표치를 설정했다가 만약 달성하지 못하면 성과급을 못 받고 비난을 받죠. 그러니 팀장이 도전적인 목표를 세우라고 해도 팀원들이 움직이지 않습니다.


또한, 목표치를 달성하고 나면 더 이상 성과를 내려고 할 동기가 사라져 버립니다. 이미 성과급을 받을 수 있는 목표치를 달성했기 때문이죠. 충분히 초과 달성할 수 있는데도 지금 달성하려고 하지 않고 내년에 달성하기 위해 쌓아두는 경향을 보입니다. 만일 초과 달성하면 금년에 목표치를 낮게 잡은 것은 아니냐고 오히려 의심을 받게 되겠죠. 또, 초과 달성하면 내년 목표치가 훨씬 높아질 가능성이 큽니다. 그래서 연말이 되어서 KPI 목표치를 거의 달성하면 직원들은 더 이상 노력하지 않습니다.


세 번째 문제는 KPI가 책임 회피를 조장한다는 것입니다. 모 회사에서 핵심인재에 해당되는 사람이 회사를 퇴사하게 됐는데, 그 회사는 ‘핵심인재 유지율’을 KPI로 설정해 놓고 있었습니다. 여럿이 모인 자리에서 ‘그 사람이 퇴사하면 핵심인재 유지율이 낮아진다’는 한탄이 나온 모양인데, 알고 보니 그 직원이 다행스럽게 얼마 전에 핵심인재 풀에서 제외됐다는 것을 알고 모두가 ‘해피’해졌다는 이야기가 있더군요.


KPI를 잘 조작하면 부서가 궁극적으로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으면서도 KPI점수를 높게 받을 수가 있습니다. KPI가 성과의 전부를 커버하지 못한다는 것이 책임을 회피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KPI가 관리자들의 책임을 회피하게 만든다는 것도 큰 문제입니다. 팀장들은 팀원들의 KPI를 설정해주고 나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다 했다고 간주하곤 하죠. 연말에 가서 평가만 잘 하면 된다고 생각하고 KPI 달성 과정에서의 피드백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망각하고 말죠. 


KPI의 네 번째 문제는 직원들의 편법을 조장한다는 것입니다. 성과가 아직 발생하지 않았는데 미리 당겨서 적용하는 사례는 이미 많은 업계에서 관행이 된 것 같습니다. 특히 연말이 되면 더 심해지는 경향을 보이는데요, 남양유업 사태에서처럼 KPI 달성하기 위해서 납품단가 후려치기, 물품 밀어내기 등 협력업체나 대리점을 괴롭히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어느 병원에서 수술 도중 사망하는 환자 비율을 KPI로 설정한 사례가 있었습니다. 그 값이 일정 수준을 넘어가면 담당의사에게 벌점을 주기로 한 것이죠. 그랬더니, 환자들은 수술실이 아니라 입원실에 죽어나가는 경우가 급증했습니다. 이유가 뭘까요? 의사들은 본인이 벌점을 덜 받으려고 상태가 심각한 환자를 수술하려고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다섯 번째 문제는 KPI가 단기적인 성과만 추구하게 만든다는 것이죠. 대개 KPI 측정은 1년 단위로 이뤄집니다. 그래서 1년 안에 달성할 수 있는 것만 KPI로 설정되고 또 그 목표치가 정해지는 바람에, 장기적인 전략을 간과하는 ‘근본적인’ 약점이 있습니다. 사업 포트폴리오를 재설정한다든지 해외진출을 모색한다든지의 장기전략은 특성상 KPI로 구체화하기가 매우 어렵죠. 비계량적이라서 더욱 그렇습니다.



출처: www.hackcollege.com



KPI의 여섯 번째 문제는 유연한 경영을 해친다는 것입니다. 연초에 KPI가 설정되어도 경영환경이 변하면 전략이 변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기존 KPI는 폐기되고 다시 만들어져서 경영해야 합리적이겠죠. 하지만 이미 설정됐다고 해서 연말까지 바꾸지 않고 끌고 가는 경우가 일반적입니다. 왜 그럴까요? KPI를 변경하면 성과급 결정 방식이 ‘꼬여 버리고’ 지금껏 애써온 노력을 저버리는 것이라서 KPI는 원래것으로 고수되고 맙니다. 


일곱 번째 문제는 우리 부서의 KPI가 다른 부서의 성과를 방해한다는 것입니다. KPI가 부분최적화를 방조한다는 말로 짧게 정리할 수 있습니다. 부분최적화란, 부서들이 한쪽 방향이 아니라 각자 다른 방향으로 뛰는 것을 말합니다. 회사 전체의 KPI와 부서들의 KPI가 캐스캐이딩되기 때문에 한쪽의 전략 방향으로 정렬시킬 수 있다고 믿지만, 현실에서는 그렇게 하기가 상당히 어렵습니다.


회사가 고객만족을 최우선 목표로 설정했다고 해보죠. 고객만족 부서는 고객만족 활동을 하기 위해 돈을 지출해야 합니다. 그런데 경영관리부서가 ‘비용통제’와 관련한 지표를 KPI로 설정했다면, 서로 이해가 충돌하고 맙니다. 실제로 이와 같은 일들이 매우 자주 발생합니다. 부서 이기주의란 말이 별 게 아닙니다. 자기네 KPI를 높여서 자기네 성과급만 받으면 된다는 생각, 이런 것도 부서 이기주의라고 말할 수 있죠.


마지막으로 KPI의 여덟 번째 문제는 성과를 올리기 위해 도입한 KPI가 성과를 더 떨어뜨린다는 것입니다. 개인의 성과는 혼자 잘 나서 이루어지는 게 아닙니다. 시스템의 도움을 받고 다른 직원의 도움을 받는 것이죠. 피아노를 운반하려면, 최소 두 명의 인부가 필요합니다. 두 인부가 피아노를 안전하게 빨리 운반했다면 두 사람 모두에게 성과를 인정해줘야 하겠죠. 하지만 기업의 KPI제도는 두 사람의 성과를 각자의 성과로 쪼개서 평가하려고 합니다. 누가 피아노 운반에 기여를 많이 했는지 측정하려고 하는 것이죠. 이것이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어느 한 사람이 더 잘했다고 그에게 돈을 더 준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 두 사람은 피아노 운반을 잘 할 수 있을까요? 돈은 더 지출됐음에도 불구하고 성과는 나아지지 않고 더 나빠질 게 뻔합니다. 


지금까지 모두 8가지로 KPI의 문제를 정리해 봤습니다. 이밖에도 여러 가지 문제가 있지만, 대략 이 정도로 모두 갈무리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문제가 많으면 없애면 됩니다. 그렇다면 대안은? KPI라는 ‘나름 과학적인’ 장치를 도입하는 바람에 신경 쓰지 않고 놔뒀던 ‘성과 커뮤니케이션’을 활성화하는 것이 유일한 대안입니다. KPI를 더 정교하게 만든다든지, 직원들에게 KPI 목표 달성에 매진하도록 독려하는 방법은 아무런 효과가 없을 겁니다. ‘수시 피드백’과 ‘수시 검토’가 성과를 만들어 가는 것이지, KPI가 저절로 성과 창출의 동력을 제공하지는 못합니다.



(*참고도서)

‘존중하라’, 폴 마르시아노 지음, 이세현 옮김, 처음북스, 2013년

‘인센티브와 무임승차’, 마야 보발레 지음, 권지현 옮김, 중앙북스, 201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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