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올린 글 '성공의 착각에 빠져 있습니까'에서 '계획 오류(Planning Fallacy)'에 대해 언급한 바 있습니다. 그 글에서 전문가들이 커리큘럼 설계를 최대 30개월 안에 끝내겠다고 했지만 결국 8년이나 지나고 나서야 겨우 끝나버렸다는 사례를 들며 풍부한 지식과 경험이 전략이나 프로젝트의 앞날을 예측하는 데에 별로 도움이 안 될뿐더러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미래를 전망할 위험이 있음을 지적했지요. 계획 오류란 프로젝트나 전략의 성공 가능성과 성공으로 인한 이득을 과장하는 반면 실패 가능성과 실패에 따른 비용을 실제보다 낮게 책정하려는 경향을 말합니다. 실제보다 좋은 쪽으로 예상하려는 편향인 '낙관적 편향(optimistic bias)'과 통하는 말이죠.
그렇다면 이런 계획 오류(혹은 낙관적 편향)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뉴올리언스 대학의 민경삼(Kyeong Sam Min)은 이러한 문제 의식을 가지고 일련의 실험을 통해 방법을 구하고자 했습니다. 그는 어떤 일의 완료일을 예상할 때 일부러 '어려운 과정'을 거치면 계획 오류가 줄어들 거란 가설을 세우고 결혼을 준비하는 사람들을 실험 참가자로 모집했습니다. 민경삼은 결혼 계획에 관해 어떻게 의사결정하는지 알아보기 위함이 연구의 목적이라고 참가자들에게 설명하고서는 피로연 장소 선택, 손님 목록 작성, 음악 선택 등 결혼하기 전에 결정해야 할 활동 한 가지를 고르라고 말했습니다.
그런 다음, 첫 번째 그룹의 참가자들에겐 자신이 정한 활동을 두 단계의 세부 활동으로 구체화시키라고 하고, 두 번째 그룹의 참가자들에겐 다섯 단계로 좀더 세분하라고 요청했습니다. 이러한 조치는 계획을 수립하는 과정을 '쉽게' 혹은 '어렵게' 만들기 위한 것이었죠. 마지막으로 참가자들은 자신이 정한 활동을 언제 끝마칠지를 구체적인 날짜로 적어냈습니다. 민경삼은 참가자 각자가 적어낸 예상 완료일이 지난 후에 그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실제로 그 활동을 시작한 날과 완료한 날을 알려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실제 완료일에서 예상 완료일을 빼본 결과, 참가자들은 전반적으로 계획 오류를 범했습니다. 105명의 참가자 중 27.6퍼센트만이 예상일보다 먼저에 각자가 정한 활동을 완료했죠. 이보다 흥미로운 결과는 두 단계로 계획을 세분하라는 지시를 받은 참가자들이 다섯 단계로 계획을 세분하라고 지시 받은 참가자들보다 낙관적 편향이 심했다는 것입니다. 전자가 후자보다 거의 다섯 배나 심한 편향을 보였죠. 이는 계획을 좀더 '어렵게' 수립한 참가자들이 계획 오류를 덜 범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예상의 정확도를 따져봐도 다섯 단계로 계획을 세분한(계획을 어렵게 수립한) 참가자들이 더 좋았습니다. 이 결과는 계획 오류나 낙관적 편향을 최소화하려면 계획을 수립할 때 가능한 한 신중하게 생각하고 까다롭게 검토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는 점을 일러줍니다.
이 실험은 사람들이 낙관적인 미래를 그리기 쉬운 '결혼'이라는 이벤트를 대상으로 했기에 계획이 실행되는 과정을 비관적으로 인식하는 활동에 대해서는 다른 결과가 나올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에 민경삼은 미래를 낙관적으로 볼 때와 비관적으로 볼 때, 각각의 상황에서 계획을 쉽게 수립하거나 어렵게 수립하는 것이 계획 오류를 줄이는 데 있어 어떤 효과를 발휘하는지를 알아보려고 후속실험을 진행했습니다.
그는 학생들에게 앞으로 제출해야 할 숙제를 떠올리게 하고는 두 그룹으로 나눠 각각 두 단계 혹은 여덟 단계로 숙제 수행 계획을 수립하게 했습니다. 그런 다음, 학생들을 다시 둘로 나눠 한 쪽 그룹에게는 숙제를 마감일보다 며칠 일찍 끝낼 수 있을 거라는 낙관적인 생각을 갖게 만들고 ,다른 쪽 그룹에게는 마감일이 되어서야 숙제를 끝마칠 수 있을 거라는 비관적인 감정을 갖도록 했습니다.
이후에 이메일을 통해 실제로 숙제를 완료한 날짜를 확인해 보니, 흥미롭게도 숙제 완수에 대해 낙관적인 생각을 가졌던 학생들의 경우는 계획 수립을 여덟 단계로 '어렵게' 세분할 때 계획 오류가 적었고, 숙제 완수를 비관적으로 느끼던 학생들의 경우에는 두 단계로 계획을 '쉽게' 구체화할 때 계획 오류가 적게 나타났습니다. 이 결과는 어떤 활동이나 프로젝트를 낙관적으로 기대할 경우에만 계획 수립을 신중하고 꼼꼼하게 진행하는 것이 도움이 되고, 그 활동이나 프로젝트를 비관적으로 여길 때는 신중하고 꼼꼼한 계획 수립이 오히려 계획 오류를 낳는다는 점을 알려줍니다. 신중한 계획 수립이 항상 좋은 건 아니라는 것이죠.
그러므로 기질상 미래를 항상 낙천적으로 보는 전략가는 계획을 좀더 세분함으로써 '어렵게' 계획을 수립하는 것이 낙관적 편향을 줄이는 데 좋고, 미래를 신중하게 접근하고 대비하려는 전략가는 계획을 꼼꼼하게 세우려는 욕구를 억제하는 게 계획 오류를 덜 범하는 방법입니다. 신중한 사람은 계획을 본인이 생각하기에 엉성하게 세우는 게 더 도움이 됩니다.
여러분이 지금 계획하고 있는 프로젝트가 낙관적으로 보입니까, 아니면 비관적으로 느껴집니까? 여러분은 성격상 낙천적입니까, 아니면 신중하고 대체적으로 비관적인 편입니까? 계획 오류와 낙관적 편향을 줄여야겠다면 이 두 질문에 먼저 대답하고 난 후에 계획의 깊이를 정하기 바랍니다.
(*참고논문)
Kyeong Sam Min, Hal R. Arkes(2010), When is Difficult Planning Good Planning? The Effects of Scenario-Based Planning on Optimistic Prediction Bias, Journal of Applied Social Psychology, Forthcom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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