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8월 16일(수) 유정식의 경영일기 


외국계 컨설팅사를 다니다가 ‘독립 컨설턴트’로 일한 지 이제 만으로 16년, 햇수로 17년이 되었다. 지난 날을 반추해 보면 소위 다사다난했다는 말이 제대로 실감이 난다. 나와 컨설팅 혹은 워크숍으로 관계를 맺은 고객사들은 세월이 흐른 만큼 일일이 기억하기가 어렵다. 처음으로 고객과 계약을 체결하면서 약간은 흥분된 마음으로 첫 세금계산서를 끊던 순간을 나는 아직 생생하게 기억한다. 그때는 전자세금계산서가 아니라서 손으로 일일이 내용을 쓰고 도장을 찍어서 발급해야 했기에 그 ‘손맛’의 짜릿함을 아직 내 손은 기억하고 있다. 또한 (그리 자주는 아니었지만) 최종 보고회 때 박수를 받으며 컨설팅 결과를 치하 받았던, 그 감격 역시 가슴 저편에서 아직 울리고 있다. 한때는 하룻밤 만에 (파워포인트 기준으로) 100페이지 가까운 보고서를 단숨에 작성해서 나조차도 놀랄 정도로 집중력과 체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물론 좋았던 기억만 있는 건 아니다. 컨설팅 수수료를 제때 주지 않고 질질 끌며 강짜를 부리던 고객사 때문에 속앓이를 했던 시간, 하루 종일 진행되는 교육에서 자기네끼리 동기회를 하는지 떠들어 대며 강의하는 나를 무시하기까지 했던 무례한 신입 2년차 직원들, 어쩌다가 누군가를 ‘쳐내기 위한’ 논리 만들기에 내가 동원되는 바람에 그 당사자로부터 대신 욕을 먹어야 했던 기억, 고객 담당자와 컨설팅 결과물을 놓고 거의 싸우다시피 하다가 감정적으로 틀어졌던 아픔 등이 빠르게 돌아가는 영화처럼 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지난 일이라 그런지 그때의 신산함도 이제는 재미난 추억으로 남았다.




갑자기 회상 모드로 이야기가 시작되어 조금은 의아하게 생각할지 모르겠다. 지난날을 회상한다는 것은 정리를 의미한다. 이제 나는 컨설턴트로서의 나의 경력을 어느 정도 마무리지어야 할 것 같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컨설팅 의뢰가 날이 갈수록 급감하기 때문이다. 또 가뭄에 콩나듯 들어오는 의뢰라 해도 책정된 컨설팅 수수료는 역시나 갈수록 내려가고 있기 때문이다. 17년 전에 동일한 컨설팅 서비스를 100에 했다면 지금은 30~40에 해달라는 식이다. 이 정도의 금액으로도 수주하겠다고 여러 업체들이 나선다. 최근에 어느 고객사는 일주일 동안 컨설팅을 해달라는 요청을 해 왔다. 헌데 그 작은 컨설팅도 3개 업체나 불러 비딩을 하겠다고 해서 나 혼자 실소를 금치 못했다. 컨설팅과 컨설턴트의 가치가 이렇게 떨어진 것이다. 격세지감이다. 물론 컨설팅 의뢰 건의 감소와 수수료 급감이 나만의 문제일지도 모른다. ‘잘나가는’ 컨설팅 회사가 그래도 있을 테니까 말이다(그렇다면 축하와 존경의 박수를 보낸다).


컨설턴트로서의 경력을 마무리진다면 그 대안은 무엇일지 오래 전부터 생각해 왔다. 이런 생각은 2007년에 <컨설팅 절대 받지 마라>란 당돌한 책을 낼 때부터 가져왔던 것이니 10년이나 된 오래된 질문이다. 고백하자면, 아직 모르겠다. 어느 순간부터 컨설팅 매출 비중보다 강의나 워크숍 매출 비중이 높아지더니 이제는 80% 정도에 육박하고 있다. 20% 정도의 매출 역시 ‘의뢰 받아 문제를 해결하고 보고서를 제출하는’ 전통적 의미의 컨설팅은 아니다. 고객사 내부적으로 자체 프로젝트를 진행하면 내가 ‘자문역’으로 투입되어 매월 소정의 수수료(투입시간을 정산하여)를 받는 식이니까. 그리고 경영상의 문제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 고객사에게 컨설팅이 아니라 이런 식의 ‘자문’을 해주겠노라고 내가 먼저 제안하니까. 이러니 내가 컨설턴트라고 명함을 내밀 수 있겠는가? 




강의 및 워크숍의 비중이 훨씬 높다고 해서 ‘강사’로 내 직업이 포지셔닝되는 것도 사실은 마땅치 않다. 내게 유명 강사에 버금가는 강의 실력이 없기도 하거니와 내가 강사라는 생각을 한번도 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동안 8권 정도(번역서 제외) 책을 쓰면서 나는 남들이 그냥 지나치거나 사실이라고 믿는 것에 의문을 제기하고 심리학이나 과학 등의 시각으로 경영을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는 주장을 줄곧 해왔다. 그 시작은 <경영유감>이었고 그 클라이막스는 <전략가의 시나리오>와 <착각하는 CEO>였다. 능력은 일천하지만 나름대로는 주류에 반하는 새로운 경영의 시각을 ‘제안’하고자 했다. 혹자는 나에게 강사나 컨설턴트가 아니라 ‘경영철학가’라고 부르기도 했다. 낯간지러운 칭호이긴 하지만 그간 저돌적일 정도로 주류 경영방식에 도전해 온 내 노력을 한 마디로 치하하는 칭호라고 받아들이기로 했다(그렇다고 경영철학가로 불리고 싶지는 않다. 너무 면구스럽다). 그렇기 때문에 강사라고 불리면 이런 나름의 노력들이 그저 묻힐까 염려되는 마음이 있다. 솔직히 그렇다. (교육시에 나를 '강사님'이라고 부를 때 그게 나를 부르는 소리인지 0.5초쯤 느리게 싱크된다.)


지금 당장은 내가 앞으로 어떤 포지션으로 어떻게 일할지 확실히는 알지 못한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사실은 거의 모든 사람들이 앞날의 불확실성 때문에 오늘도 ‘불안한 행복’에 지쳐간다. 답을 구하려 할수록 그 답은 점점 멀리 달아나버린다. 중요한 것은 지금의 직업은 언젠가는 변한다는 사실이다. 내적인 요구로 아니면 외적인 상황 변화로 인해 지금의 직업은 어떤 방향으로든 변화의 기로에 설 것이다. 제2의 경력을 요구받게 될(또는 스스로 요구할) 때가 반드시 온다.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겠으나, 나는 지금 ‘이때’를 지나는 중이다. 이때를 보내는 가장 현명한 태도는 목표를 설정하는 것이 아니다. 혹은 자신만의 ‘이유’를 찾는 것이 아니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깜깜한 어둠 속에서 목표를 잡는다는 게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까? 과거부터 지금까지의 삶을 되돌아 보면 목표를 잘 정해서 여기까지 온 게 아니라 그때그때 상황에 맞게 재빨리 변화하고 적응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나 역시 그렇다. 나는 컨설턴트가 될 생각이 그다지 없었다. 어쩌다 처음 들어간 회사가 ‘망했고’ 그후에 그 망한 회사 출신의 선배가 컨설팅 회사에 입사하여 나를 끌어준 것이 컨설턴트에 입문하게 된 계기였다. 책을 쓴 것도 목표가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우연히 어느 모임에서 출판사 대표를 만나 책을 내보라는 제안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삶은 정한 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 ‘되는 대로’ 된다.


제2의 경력을 요구받는 때에 ‘되는 대로 되려면’, 자신에게 주어지는 크고 작은 기회를 무시하지 말고 적극 받아들이는 태도가 필요하다. ‘이것은 이것 때문에 안돼’, ‘이건 내가 할일이 아냐. 난 잘 알지 못하니까’라고 관심을 끊어서는 안 된다. 자기가 ‘그럴만한 사람’이기 때문에 그런 기회들이 노크를 한 것이다. 노크 소리를 들으면 문을 열어 주듯이 그 기회가 무엇인지 확인하고 ‘일단 해보는 것’이 중요하다. 해보고 아니다 싶으면 안 하면 된다. 해보고 재미있으면 계속 하면 된다. 이렇게 저렇게 해보면 제2의 경력으로 삼을 만한 직업이 서서히 명함 타이틀로 자리잡을 것이다. 나 또한 이런 마음으로 이 어두운 ‘제2의 경력 탐색’ 터널을 지나는 중이다. 빛 하나 없이 어둠 속을 걸어가려면 더듬는 수밖에 없듯이 무엇이든 ‘만져보고’ 판단해야 한다. 만질까 말까 망설이다가는 영원히 터널 안에 갇힌다.


연일 비가 내리고 8월의 날씨 치고는 꽤나 선선해져서 이미 가을이 온 듯하다. 그래서인지 생각이 많아지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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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새해가 밝았다. 신년 태양이 떠오르는 것을 보며 으레 사람들은 1년 간 달성하고픈 목표를 세운다. 금연하기, 다이어트하기와 같은 단골 목표뿐만 아니라 개인의 발전과 가족의 행복을 위해 필요한 목표들로 신년 다이어리의 첫 페이지가 채워질 것이다. 목표는 삶의 동력이고 목표를 달성함으로써 얻는 보상은 분명 유익하다. 하지만 목표를 수립하는 ‘현재의 나’가 목표를 달성해 갈 ‘미래의 나’에게 너무 큰 기대를 걸어서는 곤란하다.


프린스턴 대학교의 에밀리 프로닌은 학생들에게 간장과 케첩이 섞인 역겨운 액체를 마시도록 했다. 지금 당장 마셔야 한다면 혹은 다음 학기에 마셔야 한다면 얼마나 마실 수 있을지를 각각 물었더니, 학생들은 지금보다 다음 학기에 훨씬 많이 마실 수 있다고 답했다. 현재의 나보다 미래의 나가 역겨움을 더 잘 참을 거라 가정한다는 뜻이다. 간장-케첩 음료는 지금도 역겹고 나중에도 똑같이 역겹다. 시간이 흐른다 해서 역겨움에 대한 내성이 생길 리 없고 목표 달성의 고통이 적어질 리 없지만, 미래의 나는 현재의 나보다 무엇이든 잘 극복한다고 생각하는 오류를 범한다. 





이렇게 미래의 나에게 목표 달성의 의무를 떠넘기는 오류 때문에 신년에 세운 목표는 연말이 되도록 실천되기는커녕 다시 내년 다이어리에 또다시 올라가 버린다. 그러니 현재의 나가 하기 힘든 일이라면 미래의 나도 하기 힘든 일이라 간주해야 한다. 그러니 10Kg을 감량하겠다는 식으로 원대한 목표치를 잡고 그런 목표를 여러 개 잡는 것은 절대 금물이다.


신년 목표가 과하거나 많으면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고 생산적으로 써야 한다는 압박감이 가중된다. 사람들은 휴일에도 자신이 어떤 영화를 보았고 어디를 구경했으며 누구와 어떤 식사를 했다는 내용을 페이스북에 올리면서 본인이 얼마나 시간을 알차게 썼는지를 자랑한다. 휴가를 떠나면서도 열심히 산 자신에 대한 선물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보면 바쁘게 살거나 적어도 바쁘게 사는 것처럼 보여야 한다는 의무감에 사로잡혀 있는 것 같다. 친구들이 만나면 서로 얼마나 바쁜지 ‘배틀’을 벌이는 광경은 얼마나 우스운가?


시간을 허투로 보내지 말아야 한다는 강박은 당연히 스트레스를 야기한다. 더욱 큰 문제는 이런 스트레스가 뇌를 쪼그라뜨린다는 데 있다. 의학자인 브루스 매키언은 스트레스 때문에 뇌 구조가 변형될 수 있음을 밝혀냈다. 그는 쥐들을 3주 동안 하루 3~4시간씩 묶어놓고서 뇌를 관찰했는데, 뇌에서 가장 복잡한 부위인 전전두엽과 학습과 기억을 담당하는 해마의 뉴런이 쭈글쭈글하게 수축되었다. 쥐들을 풀어놓은 후에 뇌는 정상으로 돌아갔지만, 늙은 쥐들은 아예 회복하지 못했다. 매키언은 이런 스트레스가 사회경제적 자원이 적은 사람, 자존감이 낮은 사람, 운동을 적게 하는 사람에게 특히 큰 타격을 준다고 말한다. 그러니 현재의 상황을 개선시키기 위해 애쓰는 사람일수록 본인의 스트레스가 원대한 신년 목표가 아닌지 살펴 볼 일이다.





원대한 목표를 잡아야 조금이나마 목표에 가깝게 다가가지 않겠냐고 반문할지 모른다. 사자를 그리려고 해야 고양이라도 그릴 수 있다며 말이다. 일리가 없는 소리는 아니다. 하지만 원대한 목표를 세우자마자 스스로를 실패자로 낙인 찍는다는 것에 주의하라. 하루가 지나고 몇 개월이 흘러도 10Kg이란 목표는 너무 멀어보인다. 체중계에 올라설 때마다 한숨을 내쉬는 것도 지겹고 먹고 싶은 것들을 마음껏 못 먹는 스트레스도 힘들다. 매일 매일이 실패의 연속이니 체중 감량이란 목표에서 달아나고픈 마음이 든다. 결국 ‘치맥’의 유혹에 빠지는 바람에 실패를 확인하고 만다.


방법은 다이어리를 장식한 당신의 신년 목표에 빨간줄을 긋는 것이다. 그리고 매일 하고 싶은 일을 1~2개만 써넣어라. 10Kg 감량 목표 대신 하루 30분씩 걷기라든지, 책 1권 쓰기 대신에 하루 1페이지씩 쓰기를 목표로 설정하는 것이다. 그러면 매일 성공을 경험할 수 있다. 작은 성공이 차곡차곡 쌓이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매일 힘을 얻을 수 있고 결국 큰 성공을 이룰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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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책을 쓰는가?   

2015. 11. 25. 09:10



“왜 책을 쓰세요?”

어느 날, 누가 나에게 이렇게 물었다. 조금 갑작스런 질문이었다. “책을 왜 쓰냐니?”라는 반문이 자동적으로 나갔지만, 책 쓰는 이유가 단박에 떠오르지 않았다. 나는 “그냥 쓰는 거지.”라고 대충 얼버무리고 말았다. 정말 흐리멍텅한 대답이 아닐 수 없었다. 이제껏 자기 책 8권과 번역서 6권을 쓴, 스스로를 ‘작가’라 칭하는 자가 왜 책을 쓰냐는 질문에 겨우 이렇게 답하다니! 나는 대화를 끝내고 조금 우울해졌다.

 

대체 나는 책을 왜 쓰는가? 지금까지 이 질문이 머리에서 계속 무한궤도를 돈다. 돌고 도는 질문을 멈춰 세우고 ‘사람들에게 뭔가를 알리고 싶어서?’라는 이유를 대니 질문은 내게 냉랭한 미소를 띠며 다시 궤도를 탄다. 몇 번이고 이런 저런 이유를 갖다 대어도 질문은 쓴웃음만 내던진다. 오늘 새벽에 이 질문은 나를 흔들어 깨웠다. “이봐! 그냥 블로그에 아무 생각이나 지껄여보면 어때?” 나는 말 잘듣는 착한 짐승인 듯하다. 이렇게 오랜만에 컴퓨터 앞에 앉아 맥락 없고 주제 불분명한 글을 쓸 참이니까 말이다.


그렇다. 나는 저서 8권의 저자다. 난 ‘저서’라는 말이 주는 뉘앙스가 좀 낯부끄럽다. 그 어감이 ‘저택’에 사는 잘난 체 하는 부잣집 도련님 같아서다. 그래서 남 앞에서는 ‘저서’란 말 대신에 ‘책’이라고 간단히 말한다. 같은 이유로 ‘저자’라는 단어도 그렇다. 담백하게 ‘지은이’라고 불리기를 바란다. ‘저술하다’ 역시 ‘쓰다’라는 건조한 말로 대체하길 원한다. 적어도 나를 가리킬 때는 말이다. 이야기가 좀 딴 데로 센 듯하겠지만, 이 글은 아무 생각이나 뇌까리기 위한 용도라는 점을 양해 바란다. 허나 이유가 있다.  내가 이렇게 ‘저(著)’로 시작하는 단어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까닭은 그렇게 고급스럽고 진지한 단어로 불리기엔 지금껏 써낸 8권 각각에 대한 나의 출판 의도들이 하나 같이 저급해 보여서다. 



내가 낸 책과 번역서들



내 첫 책은 <경영유감>이다. 2006년에 나왔으니 나온 지 10년이 돼 간다. 지은이로 첫 발을 내딛게 해 준, 나에게는 의미가 있는 책이다. 이 책을 쓴 목적은 무엇이었을까? 나는 당시 독립 컨설턴트로서 내 이름을 알리고 싶은 의도가 컸고 책은 그 의도에 가장 부합되는 수단이었다. 몇몇 인터넷 사이트에 정기적으로 칼럼을 기고하던 터라 그것들을 잘 편집하면 한 권의 책이 나올 법 했다. 운 좋게 출판사를 만났고 양장본(이건 첫 책으로서 대단한 영광이다)으로 책이 나왔다. 불행히도 판매는 망했다. 출판사엔 미안했지만, 저서(아~ 난 이 단어가 부담스럽다)가 있는 컨설턴트가 드디어 됐다는 데 나는 만족했다.


<컨설팅 절대 받지 마라>는 거의 2개월만에 후다닥 쓴 책이었다. 내게 들려오는 컨설팅 업체들의 작태가 심히 부끄러운 수준이었다. 같은 업계(그들이 날 동종업계 사람으로 보는지는 모르겠으나)에 있는 내가 그들을 고발해야겠다는 치기에서 책 쓰기가 시작됐다. 아마도 컨설턴트들은 내 책을 보면서 ‘컨설팅 업계에 있으면서 컨설팅을 절대 받지 마라니? 이 무슨 꼬장인가?’ 싶었을 것이다. 차별화하는 방법은 ‘다른 물에서 노는 것’이라 했던가? 나는 그들과 다르고 싶었고 그들이 가는 길과 다른 길을 가고 싶었다. “그러면 너는 깨끗하냐?”라는 질문엔 “확실히 나는 너희들과는 다르다”라고 당당히 대답하기에는 나 역시 모자른 컨설턴트였지만 이 책을 계기로 다른 길을 가고자 했다. 이 책으로 나는 호불호가 갈리는 컨설턴트가 되었는데, 난 호불호를 차별화를 다르게 표현한 단어라고 여긴다. 책 판매는 어땠냐고? 전작 <경영유감>과 같은 출판사에서 이 책까지 내주었는데, 컨설팅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 생각보다 적었던 모양이다. 조금씩 팔리다가 이제는 절판되고 말았다.


2007년 11월에 나온 세 번째 책 <경영, 과학에게 길을 묻다>는 내게 각별한 책 중 하나다. 그 해 나는 경제적으로 굉장한 압박을 받았다. 무리하게 집을 구입한 게 화근이었다. 나는 뭐라도 해서 경제적 압박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베스트셀러를 만들면 되지 않을까? 책 머리말에 경영과 과학의 통섭 어쩌구 저쩌구하는 이야기는 겉포장일 뿐, 이런 속물적인 의도로 이 책을 썼노라 이제와 나는 고백한다. 잔뜩 기대를 품고 책 판매를 지켜봤으나 결과는 초라했다. 독자들에게 ‘경영’도 어려운데 거기에 ‘과학’이라니. 안 팔리는 게 당연했다. 하지만 과학에서 경영의 시사점을 끌어오는, 남들이 별로 하지 않은 시도를 했다는 것에 약간의 자부심을 느끼는 책이다. 다시 이런 책을 쓸 수 있을까? 쓴다 해도 내 줄 출판사가 있을까?


네 번째 책은 <시나리오 플래닝>이다. 이 책은 팔기로 작정한 책은 아니었다. 시나리오 플래닝 강의나 워크숍 용도로 쓴 책이었으니까. 당시에 나는 예전 컨설팅사를 다녔을 때의 경험을 팔며 시나리오 플래닝 강의를 간혹 해오고 있었는데, 관련된 책이 있으면 확실하게 시나리오 플래닝 분야를 선점할 수 있겠다 싶었다. 선점하겠다는 욕심이 컸을까? 집중력을 최대로 발휘해서 3개월 안에 책을 탈고했으니 말이다. 이 책은 2009년 1월에 나왔는데, 나오자마자 1쇄를 전량 폐기하는 아픔을 겪었다. 책에 소개된 어느 사례에 대해 모 업체가 문제 삼았기 때문이었다. 억울한 면도 있었지만 나는 1쇄분에 대한 인세를 받지 않기로 하고 다시 책을 고쳐 써냈다.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여파였을까? 연초부터 불길한 사건이 터지더니 컨설팅 요청도 별로 없어서 컨설팅 매출이 반토막이 나버렸다. 하지만 지금 내가 먹고 사는 데 가장 큰 덕을 보는 책은 바로 이 책 <시나리오 플래닝>이다. 시나리오 플래닝 분야를 선점하겠다는 출간의 목적은 충분히 달성하고도 넘친다.


<문제해결사> 역시 <시나리오 플래닝>과 마찬가지로 강의와 워크숍 용도로 펴낸 책이다. 나의 매출 구조가 컨설팅보다는 강의/워크숍의 비중이 커가던 시기였기에 강의/워크숍 주제를 확장하고픈 욕구가 있었다. 물론 주제가 문제해결력이라서 시나리오 플래닝보다는 덜 ‘섹시’한 탓에 판매는 빛을 보지 못했다. 게다가 강의나 워크숍 요청도 1년에 한 두 번 들어올까 말까였다. 의도가 제대로 발휘되지 못한 책이지만, 문제해결력에 관한 ‘교과서적인’ 책을 냈다는 주변 사람들의 평에 만족한다. 컨설턴트를 꿈꾸거나 조직 내에서 컨설턴트처럼 활동하고 싶다면 이 책을 부끄럽지만 추천한다.





여섯 번째 책 <착각하는 CEO>는 지금껏 낸 책들의 총판매량을 상회한, 개인적으로 ‘기념비적인’ 책이었다. <경영, 과학에게 길을 묻다>는 경영과 과학을 접목시켰고 이 책은 경영과 심리를 연결시켰다. 2차, 3차 자료를 인용하는 일부 국내 저자들과 차별화하기 위해 학술논문이라는 1차 자료를 매일 1편씩 읽고 경영의 시사점을 정리해 블로그에 올렸다. 몇 해 지나니 600페이지에 가까운 책으로 펴낼 분량이 됐다. 이 책으로 인해 ‘유정식’은 학문적 근거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펼치는 저자라는 소리를 듣게 됐다. 한마디로, 근거없이 뻥치는 컨설턴트는 아니라는 뜻일 게다. 저자 이름을 모른 채 책을 읽다가 번역서인 줄 알았다는 말을 간혹 들었다. 책의 퀄리티가 좋다라는 칭찬으로 들렸다. 외국 저자들의 저술 스타일을 흉내내고 싶었고 그들처럼 학문적 근거가 풍부한 책을 내고 싶었는데, 그 의도가 충분히 달성된 듯 싶었다. 책 나온 지 2년 반이 넘어가는데 스테디하게 팔리고 있다(그래 봤자 한달에 10권 안팎이겠지만).


<전략가의 시나리오>는 새로운 책이라고 보기 어렵다. 출판사를 옮겨 전작 <시나리오 플래닝>을 개정해서 냈기 때문이다. 약간의 수정을 가하고 새로운 내용을 몇몇 첨해서 2014년 9월에 냈다. 판매는 별로 기대치 않았다. 시나리오 플래닝 분야는 어차피 읽을 사람만 읽으니까. 개인적으로 개정판의 저자가 됐다는 것에 의의를 둔다.


마지막으로 금년 11월에 <당신들은 늘 착각 속에 산다>를 냈다. <착각하는 CEO>가 CEO와 고위경영자를 대상으로 한 책이었다면, 이 책은 일반 직원들(관리자 포함)이 지닌 착각을 짚어보는 책이다. <착각하는 CEO>와 동일하게 심리학 논문을 기초로 경영의 시사점을 서술하는 방식을 사용했다. <착각하는 직원들>이란 제목으로 내고 싶었지만 어쩌다가 자기계발 분야의 책으로 올라가 있다. 책의 판매는 아직 모르겠다. 솔직히 책이 잘 안 나가서 나는 풀이 좀 죽었다. 이 책의 출판 의도는 무엇일까? 이 책을 내고 나서 ‘나는 왜 책을 쓰는가?’라는 질문에 시달리고 있다(책이 생각보다 안 나가서 그렇기도 하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 책의 출판 의도는 명예를 얻기 위함이 아니었나 싶다(비웃어도 좋다). 그동안 책을 여러 권 냈으니 이제는 나를 경영 분야의 저자로 좀 알아주길 바라는, 유아적인 발상이 없었던 게 아님을 고백한다. 자만해서는 안 된다는, 지극히 당연한 충고를 새삼 깨닫는다.





‘나는 왜 책을 쓰는가?’ 나는 아직 이 질문에 적확하면서도 간명한 대답을 하기가 어렵다. 각각의 책을 쓰면서 가졌던 의도를 다시 되짚어 보면 답이 나올 것 같았는데, 여전히 모호하고 복잡하기만 하다. 책 한권 내면 그때문에 쓰러지는 나무들이 대체 몇 그루나 될까? 나는 쓰러진 나무들의 희생을 밟고 무엇을 얻으려 하는가, 당췌 모르겠다. 독자들을 ‘계몽’시킬 의도는 추호도 없다. ‘인류의 지식 발전을 위해서’란 이유는 낯뜨겁고 나 스스로 구역질이 난다. 돈을 벌고 싶어서(책으로 돈 벌 생각을 하다니!), 명성을 얻고 싶어서, 독자들에게 새로운 아이디어를 전달하고 싶어서, 강의나 워크숍의 도구로 사용하고 싶어서 등등의 이유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뭐, 그냥 쓰는 거지.’라는 나의 대답엔 이런 복합적인 이유가 한데 헝크러져 있다. 그냥 그렇다.


나를 미워하는 사람이라면 나를 괴롭히는 방법이 하나 있다. ’왜 책을 쓰세요?’라고 내게 질문하는 것이다(앞으로 이런 질문을 내게 던지면 나를 미워한다는 뜻으로 간주하겠다! 농담이다). 질문에 이렇게 초라한 대답을 할 수밖에 없다니, 자괴감이 돋아난다. 이 글을 쓴 지 2시간이 지났다. 흐린 아침 하늘 위로 여전히 물음표가 떠다닌다. 출근이나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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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신간 <당신들은 늘 착각 속에 산다>가 드디어 출간되었습니다. 전작 <착각하는 CEO>에 이어 조직과 구성원들이 인간의 심리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심리학 연구 결과를 근거로 조목조목 따져보는 책입니다. 개인적으로는 2006년에 첫 책을 낸 이후로 벌써 8번째 책입니다. 어떤 분들은 신간을 낼 때 자식을 출산하는 느낌이라고들 말씀하시는데, 저는 그렇지는 않고 단지 조금 뿌듯한 마음이 듭니다. 독자들과 제 생각을 공유할 수 있는 새로운 매개체를 만들었다는 뿌듯함이죠. 많이 응원해 주시기 바랍니다. ^^





아래는 책에 대한 간략한 소개입니다. 책 구매와 읽기에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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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욕구한 것을 계획하지, 계획한 것을 욕구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계획이 잘 지켜지지 않는 이유는 계획이 잘못됐기 때문이 아니라 무엇을 욕구하는지 모르기 때문이라는 뜻이다. 이 말을 직장생활에 적용한다면, ‘직장인들은 심리에 따라 행동하지, 행동에 따라 심리를 형성하지 않는다’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잘못된 판단을 내리거나, 크고 작은 착각을 하거나, 엉뚱한 미신에 사로잡히거나 혹은 동료들과 갈등을 일으키는 이유는 이미 벌어진 행동이 아니라 인간의 심리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심리를 잘 아는 것이 항상 좋은 해결책을 보장하지는 않지만 문제 해결의 훌륭한 출발점임은 분명하다.


가장 바람직한 처세는 조직과 인간의 심리를 간파하는 데 있다

앞서 경영 현장에서 리더들이 빠지기 쉬운 조직관리, 인사, 전략 오류들을 고발한 경영 심리서로 호평을 얻은 저자가 이번엔 고발의 범위를 보다 확장했다. 성과주의 한계, 도덕성과 생산성의 관계, 보상과 평가의 역학 등과 관련해 대다수 직장인들이 빠지기 쉬운 심리적 함정과 그 이유를 혁신적인 심리 실험과 기업 사례를 바탕으로 설득력 있게 풀어낸다. 여러 권의 경영서를 집필하고 해외 석학들의 저서를 번역하면서 경영 현장과 심리 연구 사이에 다리를 놓는 역할을 해온 저자는 인지심리학, 행동경제학, 조직심리학을 접목해 직장인들이 저지르기 쉬운 심리적 오류와 관련해 무엇이 잘못된 판단을 불러일으키는지 그 요인을 탐구하고 인간 본성의 한 측면인 잘못된 판단을 통제할 방안을 제시한다.


저자는 조직 내에서 벌어지는 갈등의 원인은 대부분 심리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고 해결책 역시 인간의 심리에서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일례로 교육 몇 번 받고는 그것을 잘 안다고 믿고 자신의 실제 능력을 과신하는 경향, 여러 사람 앞에서 혼내야 직원의 잘못된 행동이 교정될 수 있다는 믿음 그리고 엄하게 혼내는 것이 카리스마 있는 리더라는 생각 등은 대다수 직장인들이 빠지기 쉬운 착각이고 오류다. 이외에도 외향적인 사람일수록 성과가 좋다, 높은 보상이 성과를 높인다, 피드백은 능력이 뒤처지는 직원에게만 필요하다 등도 직장생활과 관련한 대표적인 착각이고 오류다.





더 이상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일할 의지를 잃어버린 직장인을 위한 조직의 심리학

그런데 왜 이런 지식들을 대다수의 직장인들이 알지 못하는 걸까? 저자는 거기에는 세 가지 이유가 있다고 말한다. 첫째, 기업 경영을 ‘경영자의 예술’로 여기기 때문이다. 경영자들은 자기 원칙대로 밀고 나가는 것이 위대한 경영자의 참모습이라 생각한다. 그런 탓에 직장인들은 올바른 경영의 방향을 알려주는 학문적 증거와 자료의 존재조차 알지 못한다. 


둘째, 구태의연한 경영의 담론들이 경영 현장에서 동어반복되면서 직장인들이 현실을 보지 못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경쟁을 미화하고, 평가와 금전적 보상의 효과를 과신하며, 직원들에게 가능한 한 정보를 공개하지 않는 등 여전히 직원들을 ‘어린아이’로 간주하는 경영 기법들이 엄청난 텃세를 부리고 있는 것이다. 


셋째, 인간의 심리에 대한 관심, 특히 조직의 심리에 대한 관심이 적기 때문이다. 성과주의에 휘둘리고 승진과 보상에 얽매이다 보니 당장 성과로 이어질 만한 교육에만 집중하느라 직원들의 심리 따위는 나 몰라라 한다. 조직은 사람으로 구성됨에도 심리를 다루는 교육 프로그램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소위 ‘직장생활 심리학’의 A부터 Z를 총망라한 이 책은 보다 바람직한 방향으로 직장생활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힌트를 제시한다. 이 책을 통해 직장생활과 관련한 인간의 심리를 이해하고 크고 작은 심리적 미신과 착각과 오해에서 벗어나 보다 큰 가치에 집중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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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내심 강한 직원이 성과도 좋다   

2015. 8. 28. 09:00




다른 직원들보다 유독 끈기와 인내심이 강한 직원이 팀내에 한 두 명 정도는 있을 겁니다. 그들이 평소 달성하는 성과는 다른 직원들에 비해 어느 정도인가요? 또 그들이 비윤리적이고 비생산적인 행동(Counterproductive Work Behaviors, CWB)을 가능성은 어느 정도라고 판단합니까? 이스라엘 아리엘 대학교의 하다샤 리트만-오바디아(Hadassah Littman-Ovadia)는 인간의 여러 가지 성격적 특성 중에 ‘인내심’이 업무 성과와, 그리고 CWB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가설을 수립하고 설문조사를 통해 이 가설을 증명하고자 했습니다.


인터넷을 통해 모두 686명의 응답자를 확보한 리트만-오바디아는 ‘VIA-IS’라 불리는 ‘성격적 강점’ 측정방법을 변형하여 120개의 항목으로 구성된 ‘VIA-120’이란 설문을 구성했습니다. 여러 가지 성격적 특성 중 ’창의력’을 측정하는 설문을 예로 들면, “새롭고 차별적인 아이디어를 제시하는 능력이 내 강점 중 하나다.”라는 항목에 5점 척도로 응답해야 했죠. 또한 리트만-오바디아는 “나는 나에게 주어진 임무를 적절하게 수행한다.”라는 식의 문항에 응답하게 해서 응답자 스스로 자신의 업무 성과를 드러내도록 했고, “아프지 않은데도 아프다고 전화해서 집에서 논 적이 있다.”라는 식의 문항을 통해 얼마나 자주 CWB를 범하는지를 측정했습니다.





피어슨 상관분석을 해보니, 인내심이 높은 사람일수록 업무 성과가 좋고 CWB를 덜 범했는데, 이런 상관관계는 정직성, 열정, 호기심, 팀워크 등과 같은 성격적 강점보다 더 강했습니다. 인내심이 업무 성과와 CWB와 가장 밀접하게 연결된 성격적 특성임을 알 수 있죠. 응답자들 중에는 자신의 일을 그저 직업으로 보는 사람이 있었지만, 경력으로 인식하는 사람과 ‘소명’으로 바라보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리트만-오바디아는 통계분석을 통해 자신의 일을 경력이나 소명으로 볼 때 인내심과 업무 성과 사이에 정(+)의 상관관계가 뚜렷하게 나타남을 규명했습니다. 일을 그저 직업으로 볼 경우에는 이런 효과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정리하면, 여러 가지 성격적 강점 중에서 인내심이 업무 성과와 가장 큰 관련이 있고, 일을 경력이나 소명으로 느낄 때 이런 연관성이 큽니다. 물론 리트만-오바디아의 연구가 자가진단을 통한 설문 방식을 취했기 때문에 거짓으로 답할 가능성이 있다는 취약점이 있습니다. 실제로 조직에서 이루어진 평가 결과를 가지고 인내심과 업무 성과 간의 관계를 분석하면 좀더 확실한 결과를 알 수 있겠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연구가 주는 시사점은 학습의욕, 통찰, 리더십, 희망적인 태도, 용기, 열정 등과 같이 업무 성과와 직접적인 관계가 있을 것으로 짐작되는 성격적 특성들을 제치고 의외로 인내심이 상대적으로 중요한 성격적 강점임이 드러났다는 것입니다.


리더는 화려하고 열정적으로 보이는 직원들에게 지나친 관심을 두기보다는 화려하진 않지만 인내심을 가지고 조용히 자신의 업무를 수행하는 직원들에게도 비슷한 수준의 격려와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이 연구가 주는 교훈입니다. ‘열정을 가져라’는 독려도 좋지만, 일의 의미, 일의 목적과 소명을 일깨우도록 돕는 것도 직원들의 인내심이 업무 성과로 이어지도록 하기 위한 리더의 임무라는 점도 알 수 있습니다. 


스티브 잡스는 인내심과 관련하여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성공적인 기업가와 그렇지 않은 기업가를 나누는 기준이 있다면 나는 그것이 '순수한 인내심'이라고 확신한다."





오늘은 과묵하게 자신의 업무를 끈기 있게 수행하는 직원의 어깨를 두드려주는 것은 어떨까요? 조직 성과의 많은 부분을 책임지는 그들의 노고를 고마워하면서 말입니다.



(*참고논문)

Littman-Ovadia, H., & Lavy, S. (2015). Going the Extra Mile Perseverance as a Key Character Strength at Work. Journal of Career Assessment, 106907271558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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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묵자흑, 근주자적(近墨者黑, 近朱者赤)’이란 말이 있습니다. 먹을 가까이 하는 사람은 검어지고, 주사를 가까이 하는 사람은 붉게 된다는 뜻인데, 나의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고 남의 행동이 나의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는 의미로 의역할 수 있습니다. 쉽게 말해 ‘행동은 전염된다’는 뜻이죠. 직장 내에서 많은 직원들이 상사나 동료의 무례한 언행(폭언, 경멸, 비웃음, 심한 장난, 왕따 등)을 경험한다고 합니다. 98%의 직원이 무례함을 경험하고, 50%의 직원들은 매주 한번꼴로 그런 일을 당한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서로의 행동이 영향을 미친다고 간주한다면 이토록 무례함이 조직 내에서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이유는 무례한 행동을 당했을 때 거기에서 멈추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다시 무례한 행동을 하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누군가에게 감기가 걸리면 다른 사람에게 감기를 옮기는 것처럼, 무례함을 전염시키는 ‘숙주’가 되는 것은 아닐까요?





플로리다 대학교의 트레보 폴크(Trevor Foulk)와 동료 연구자들은 부정적인 행동이 사람들이 알고 있는 수준보다 훨씬 전염성이 높고, 감기처럼 쉽게 퍼진다는 점을 실험을 통해 주장합니다. 누군가에게 당한 무례함을 엉뚱한 타인에게 고스란히 전달한다는 것이죠. 심하지 않은 부정적 행동 역시 그러하다고 폴크는 말합니다. 그는 90명의 학생들을 무작위로 짝을 지어 11회의 협상 세션을 7주 동안 수행하게 하고, 매회마다 협상 파트너의 무례함 정도와 본인이 느끼는 부정적인 감정(분노, 불안, 혼돈스러움)의 정도를 측정했습니다. 


또한 그는 세 번째 협상 세션부터는 ‘협상 파트너에게 얼마의 자원을 배분할 것인지’를 학생들이 선택하도록 했습니다. 파트너와 40씩 동일하게 나누는 옵션, 본인이 50을 갖고 파트너에겐 20을 주는 옵션, 본인이 30을 갖고 파트너는 아무것도 못 갖게 만드는 옵션 중 하나를 택하게 한 것이죠. 여기에서 마지막 옵션을 선택하는 것은 본인이 30밖에 못 갖기 때문에 가장 불리하지만 파트너에게 아무것도 주지 않음으로써 앙갚음할 수 있는, 가장 적대적인 옵션입니다. 


분석 결과, ‘이전 파트너’에게서 무례함을 경험한 사람은 ‘다음 파트너’로부터 무례하다고 평가 받는 경향이 발견되었습니다. 또한 ‘다음 협상 파트너’는 그 사람에게 적대적인 옵션을 행사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이전 파트너’와 ‘다음 파트너’ 사이에 상호작용이 없었음에도 말입니다. 7주 동안 이 실험이 이어졌기에 협상 세션들 사이의 공백기가 1주일인 경우도 있었지만, 이런 효과는 여전히 나타났습니다.


폴크는 후속실험에서 누군가에게 무례하게 행동을 하는 모습을 경험하면 ‘무례함’에 대해 민감해진다는 것을 밝혔습니다. 그는 실험 참가자들에게 실험실에 늦게 도착한 공모자를 인격적으로 모독하면서 혼을 내는 상황을 지켜보게 했습니다. 그런 다음, 옳은 단어와 틀린 단어(존재하지 않는 단어)를 빠르게 판단하는 과제를 수행하게 했죠. 그랬더니, 무례한 상황을 본 참가자들은 무례함에 관련된 단어들(bluntly, boorish, brutish, infringe, obscene, surly, tactless, disturb, pushy, intrude)들을 특별히 빨리 알아차리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무례함을 경험하면 다른 사람의 행동을 해석하는 데 영향을 받고 결국 자기 자신의 행동에도 영향을 받는다는 결과로 볼 수 있습니다. 폴크가 수행한 세 번째 실험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습니다.





이 연구는 앞서 언급했듯이 직장 내에서 벌어지는 무례한 언행들이 상대방 뿐만 아니라 그걸 지켜보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전염을 시키고, 한번 전염이 되면 타인에게 무례하게 행동할 가능성이 아주 높다는 점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나에게 무례하게 구는 사람을 경멸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그 사람과 똑같이 타인에게 무례하게 행동하게 된다는 것을 꼬집고 있죠. 흔히 같은 회사에 다니면 ‘한솥밥을 먹는다’라고 표현하는데(저는 이 표현이 마음에 들지 않지만), 이 말은 그만큼 나의 행동이 남을 전염시키기 쉽고 남에게 전염되기 쉬운 조건에 있다는 뜻으로 비틀어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요? 상사로부터 심한 말을 들으면 자신도 모르게 동료에게 무례하게 행동할지 모릅니다.



(*참고논문)

Foulk, T., Woolum, A., & Erez, A. (2015). Catching Rudeness Is Like Catching a Cold: The Contagion Effects of Low-Intensity Negative Behaviors. Journal of Applied Psychology DOI: 10.1037/apl0000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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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 해결을 위해 컨설팅을 받아야겠다는 결정을 내렸다면, 컨설턴트의 힘을 빌리지 않고 내부직원들끼리 자체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지의 여부를 먼저 판단해 보길 바랍니다. 즉 내부컨설팅팀을 운영해 보라는 말입니다. 제가 <컨설팅 절대 받지 마라>란 책에서 밝혔듯이, 컨설팅사의 보이지 않는 전횡에 희생되지 않으려면, 그리고 고객들보다 실력이 못한 컨설턴트들에게 회사의 존망을 맡기는 오류를 범하지 않으려면, 일단 자체적으로 문제 해결에 도전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일 수 있습니다.


과거에 컨설팅사로부터 이미 여러 건의 컨설팅을 받아 본 회사라면, 그 동안 옆에서 컨설팅사의 일하는 방식과 보고서 형식들을 보고 들었을 것이므로 시행착오를 별로 거치지 않고 비교적 수월하게 내부컨설팅팀을 운영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컨설팅을 받아 본 경험이 전혀 없을뿐더러 내부컨설팅팀에 투입시킬 만한 인력도 없는 회사(보통은 중소기업)라면, 스스로 자기네 조직을 컨설팅 한다는 것 자체가 용기를 필요로 하는 모험일 수 있습니다. 만일 이런 상황이라면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내부컨설팅팀을 구성할 것을 조언합니다.





내부컨설팅 팀원의 계층은 크게 프로젝트매니저, 시니어 컨설턴트, 주니어 컨설턴트로 나눌 수 있습니다. 먼저, 프로젝트의 주제에 가장 적합한 인력들로 팀을 조직하십시오. 프로젝트매니저는 프로젝트의 목적과 기대효과를 명확히 이해하고 진행과정을 철저히 관리하며 경영진과 원활히 의사소통할 수 있는 자로 임명하면 됩니다. 시니어는 컨설팅 실무를 담당할 자인데, 문제의 근본원인을 꿰뚫을 수 있을 만큼의 경력과 지식을 가진 자로 선정합니다. 주니어는 프로젝트매니저와 시니어를 보조하는 역할로서, 기본적으로 ‘생각할 줄 알고’ 잠재력이 있는 2~4년차 사원 및 대리급으로 구성하면 됩니다.


매니저 1명, 시니어 1명, 주니어 1명은 내부컨설팅팀의 최소 규모라 할 수 있습니다. 사안의 중요성과 파급효과의 크기에 따라 시니어와 주니어 인력을 증가시키면 되는데, 주니어가 시니어보다 많아지는 상황은 되도록 피해야 합니다. 인력의 보강은 컨설팅 실무를 주로 담당할 시니어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프로젝트 추진 속도를 높이는 데 좋습니다. 


그런데  내부컨설팅팀을 구성한다고 해도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지 갈피를 못 잡으면 공전에 공전을 거듭하는 지루한 회의만 열게 될 위험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들을 도와 한 발자국씩 발을 떼도록 도와 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그가 누구겠습니까? 바로 컨설턴트입니다. 미우나 고우나 컨설팅을 진행해 봤던 컨설턴트의 노하우와 경험을 전략적으로 빌릴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방식은 문제 해결의 주체가 컨설팅사가 돼 버리도록 그들에게 100% 위임하는 예전의 방식(즉 프로젝트 방식)도 아닙니다. 이 방식은 문제 해결은 어디까지나 내부컨설팅팀이 맡도록 하고 프로젝트 진행에 필요한 방법론, 도구, 노하우 등은 전문 컨설턴트로부터 도움을 받자는 것입니다.


해당 분야에서 나름대로 이름을 떨치고 있는 컨설턴트를 섭외하여 어드바이저(Advisor)로 프로젝트에 참여시키십시오. 그들에게 프로젝트 절차, 방법론, 돌발상황 대처 등에 관하여 폭넓은 자문을 구하십시오.


이렇게 하면, 컨설팅사에게 100% 위임했을 때보다 여러 가지 효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첫째, 내부구성원들의 학습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학생들에게 지식을 전달할 때 강의보다는 체험학습이 더욱 효과적인 것처럼,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배우는 효과가 매우 크기 때문입니다. 특히 프로젝트를 하다 보면 여러 제약조건에 부딪히게 되는데, 그것들을 ‘맨 땅에 헤딩하듯’ 섭렵하면 어느새 실력이 향상된 걸 경험할 수 있을 겁니다.


한 번 내부컨설팅팀을 성공적으로 운영했다면 나중에 다른 문제 해결시에 적지 않은 도움이 됩니다. 훈련이 된 만큼 기간을 대폭 단축시킬 수 있기 때문이죠. 비슷한 중요도를 갖는 문제라면, 처음에는 6개월 걸렸던 일을 경험 축적 후에는 3~4개월로 크게 줄일 수 있습니다. 프로젝트 기간이 길어지는 이유는 해결코자 하는 문제가 어렵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대개는 갈피를 제대로 못 잡아 허송세월 하는 시간이 많기 때문입니다.





둘째,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누릴 수 있습니다. 어드바이저 역할을 할 컨설턴트는 몇 명이면 될까요? 컨설팅사에게 모든 걸 맡겨 버리는 소위 ‘빅뱅(Big Bang)’ 프로젝트에서는 적어도 3~6명의 컨설턴트가 투입됩니다. 그러나 어드바이저는 1명이면 족합니다. 자문하는 사람이 그보다 많을 이유가 없지요. 게다가 어드바이저가 매일 고객사로 출근할 필요가 없습니다. 프로젝트 경중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일정계획을 잘 세운다면 일주일에 1 ~ 2회 정도 만나서 진행상황을 설명하고 그에 필요한 자문을 얻으면 충분하리라 생각됩니다.


셋째, 문제 해결을 위한 실행방안에 좀더 다가갈 수 있습니다. 어디까지나 외부인인 컨설턴트들은 고객사의 미묘한 상황이나 처지를 모두 알지 못합니다. 현실보다는 이론에 치우쳐 컨설팅을 하는 경우가 매우 잦고 바로 실행 가능한 결과물을 내놓는 경우가 흔하지 않습니다. 그리고는 실행방안을 만들어내는 건 고객에게 미루고 말죠. 그러나 내부컨설팅팀이 문제 해결을 맡게 되면, 뜬구름 잡는 이야기는 절대 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컨설팅 결과물을 낸 내부컨설팅팀이 그대로 실행에 옮길 책임을 갖게 되기 때문입니다.


물론, 보다 혁신적이고 파격적인 해결책이 나오지 못할 단점은 있습니다. 실행을 염두에 두다 보니까 여기저기 제약조건(특히 회사 내에서 정치적으로 민감한 상황들)을 깨지 못한 채 두루뭉실한 결론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이럴 때에는 프로젝트의 원래 목적과 기대효과가 무엇인지를 다시 돌아보고, 그것과 배치되거나 미흡한 결과물이 나오면 아무리 즉시 실행 가능한 해결책이라 할지라도 기각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중요한 것은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는 것이지, 빨리만 해결하는 것이 아닙니다. (컨설팅사는 문제를 빨리 해결하고자 합니다. 왜냐하면 프로젝트 기간이 정해져 있고, 끝나고 나서 바로 다른 회사 프로젝트를 해야 하기 때문이죠.)


넷째, 어드바이저를 활용할 때의 장점이 되겠는데, 내부의 다른 세력으로부터의 공격을 무마시키고 결과물의 설득력을 높일 수 있습니다. 이상하게도 사람들은 내부사람이 하는 말을 신뢰하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분명 맞는 말인데도 불구하고, 뭔가 알지 못하는 의도나 속임수가 숨겨져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지 일단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봅니다. 부모 말은 잘 듣지 않으면서 친구 말은 철썩 같이 믿어버리는 철없는 아이처럼 말입니다.


내부컨설팅팀에 공식적으로 어드바이저로 컨설턴트를 참여시킨다면, 결과물의 객관성과 공신력을 대외적으로 내세울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외부 전문가인 컨설턴트가 결과물을 검증했다고 여기기 때문에 구성원들을 설득시키기가 용이해지는 효과가 있는 것이지요. 


컨설팅사의 저급한 컨설팅 서비스 질에 질려버린 회사이거나, 터무니 없이 비싼 수수료 때문에 컨설팅을 엄두도 못 내는 고객이라면, 내부직원을 최대한 활용할 것을 조언합니다. 만일 어렵다면, 위에서 말씀 드렸듯이 자문 역할을 할 컨설턴트의 도움을 받으면 수월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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