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출이 두려우세요?   

2011. 4. 6. 09:00



이라크 아부 그레이브 감옥에서 간수 역할을 담당한 미국 병사들이 이라크 포로들을 상대로 저지른 가혹행위는 전세계를 경악하게 했습니다. 알다시피 이반 프레드릭 상사를 비롯한 여러 병사들은 그 때문에 군사재판에 회부되었고 불명예스럽게 군대를 떠나야 했습니다. 그들은 왜 나약한 포로들을 대상으로 그렇게 잔인한 행위를 저질렀던 걸까요? 무엇이 그들을 '악인'으로 만들었을까요?

심리학자 필립 짐바르도는 '나약함에 대한 불안' 때문이라고 지적합니다. 그는 '스탠포드 감옥 실험'이라는 유명한 연구를 수행한 학자입니다. 그는 이 실험을 통해 평범한 인간들이 악인의 모습을 나타내는 이유는 그사람이 원래 악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에게 주어지는 역할과 상황이라는 점을 우리에게 보여주었죠. 그는 '루시퍼 이펙트'라는 책을 통해 이에 대한 이야기를 아주 상세하게 기록했습니다.



짐바르도는  미국 병사들이 극도로 열악하고 초조한 상황에서 근무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합니다. 유일한 이유는 아니지만 매우 중요한 이유 중 하나였다고 말합니다. 아부 그레이브 교도소에서 병사들은 쥐들이 들끓고 변기가 흘러넘치는 더러운 환경에서 근무해야 했습니다. 게다가 교도소 바깥에는 적대적인 이라크인들이 호시탐탐 자기들을 노리고 있었고 폭탄 공격을 당하기까지 했습니다. 제대로 된 식사와 편안한 잠자리는 엄두도 내지 못했고 늘 수면 부족에 시달렸죠.

여러분이 미국 병사들과 같은 처지에 놓였다면 포로(혹은 죄수)들에게 어떻게 행동했을까요? 우리는 포로들을 발가벗기고 맹견으로 위협하면서 웃음을 터뜨리는 간수들의 사진을 보면서 어떻게 인간이 저럴 수 있을까 경악하면서 한편으로는 '나라면 저렇게 하지 않을거야' 라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그들의 행동은 분명히 정당하지 않을뿐더러 비난 받아 마땅하지만, 인간의 심리에 내재된 '노출 불안'을 떠올린다면 이해가 되지 않은 것도 아닙니다.

'노출 불안'이란 자신의 나약함이 다른 사람에게 드러날까 염려하는 심리를 말합니다. 자신이 지배적인 위치에 있을 때 지배를 받거나 통솔을 받는 사람들로부터 약한 사람이라고 인식될까 두려운 마음이 더욱 커집니다. 나약함을 드러내면 그들이 자신을 업신여기거나 나아가 공격까지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나약하게 보이면 저들이 우리를 우습게 여기고 폭동을 일으킬거야' 라는 경직된 사고방식을 갖게 되죠. 특히 돌아가는 환경이 우호적이지 않을 때 노출 불안은 극에 달합니다. 아부 그레이브 교도소에서 간수들이 처한 상황처럼 말입니다.

기업에서도 노출 불안의 현상이 가끔씩 나타납니다. 내외부 환경이 회사의 성과에 악영향을 미칠 때, 직원들이 경영자들을 상대로 극도의 불만을 표출하거나 회사의 정책에 강력하게 반발할 때 노출 불안을 보이는 리더들이 간혹 있습니다. 그들은 '직원들에게 현 상황을 상세하고 친절하게 설명하고 이해를 구해서는 안돼. 그렇게 하면 분명히 나를 우습게 볼거야. 강하게 나가야만 해' 라고 결심하고 소위 '강경책'이라는 카드를 직원들에게 내보입니다.

상황이 우호적이지 않을 때 유화책보다는 강경책이 더 자주 등장하는 까닭은 겉으로는 리더들의 주장대로 문제해결의 신속함과 효과인 듯하지만 속을 파고 들어가면 리더 자신의 위신과 신뢰감을 보호하려는 심리에서 기인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위신과 신뢰감이 한번 무너지면 권위가 무너지고 회사 성과가 파탄에 이른다는 사고의 악순환이 머리 속에서 끝없이 순환하면서 커뮤니케이션 단절, 협상 불가, 무리한 억제 등 강경 일변도의 정책에 매달리게 되죠.

노출 불안은 비단 리더나 경영자에게만 일어나는 현상이 아닙니다. 노동조합도 마찬가지입니다. 임금 협상이 난항을 겪고 종종 물리적인 충돌로 악화되는 이유 중 하나는 사측과 노측 모두 노출 불안에 휩싸여 협상의 여지를 스스로 제거해 버리기 때문은 아닐까요? 차갑고 강인하게 보여야만 협상을 유리하게 끌고갈 수 있다는 믿음이 협상 자체를 거부하는 교착상태에 이르게 만듭니다.

피지배적인 계층을 강경하게 억압하거나 협상의 기회를 차단하는 것 말고 노출 불안의 심리가 일으키는 악효과는 한번 결정한 사항은 절대로 수정하지 않고 밀고 가는 독단에 빠진다는 것입니다. 의사결정이 잘못됐다라는 신호가 곳곳에서 들어와도 이미 실행 중인 계획을 수정하거나 중단하려 들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반대 의견을 제시하는 사람들을 조직 성과에 반하는 내부의 적으로 규정짓기도 합니다.

노출 불안으로 인한 과잉 대응, 강압적인 조치, 의사결정의 독단은 상대방의 '과잉 보복'을 야기하기 때문에 더 큰 문제가 됩니다. 복수가 복수를 낳는 것이죠. 노출 불안은 지난 포스팅에서 언급했듯이 회사측의 배려 없는 조치에 직원들의 물품 절도율이 크게 느는 현상과 같은 '작은 복수'부터 시작해서 총파업에 이르는 과잉 반응을 부추기는 요인으로 작용합니다.

노출이 두려운가요? 노출 불안이 이러한 잘못된 행동과 의사결정을 야기한다는 것을 스스로 인지할 수만 있다면 어려운 상황이나 난국에서 현명한 판단을 할 수 있을 겁니다. 판단을 흐리게 만드는 노출 불안 심리를 걷어낸다면 강경책이 아니라 유화책이, 억압보다는 화합이, 일방통보보다는 협상과 설명이 조직의 안정과 미래를 위해 필요하다는 점을 이해할테니까요.

존 F. 케네디는 "정중함은 나약하기 때문이 아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남들에게 자신의 능력과 존재를 인정 받고자 나약함을 감추지는 않는지, 그로 인해 잘못된 행동을 하지 않는지 매순간 스스로를 성찰하는 것, 이것도 중용의 마인드일 겁니다.

(*참고도서 : '루시퍼 이펙트', '생각의 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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