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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다시피 영화 '아바타'에는 캡슐 속에 들어간 주인의 의지대로 움직이는 아바타가 나옵니다. 주인이 캡슐 속을 빠져나오면 의식을 잃어버리고 쓰러지기 때문에 아바타는 주인 없이는 스스로 움직이지 못하는 '유기체 덩어리'라고 불러도 될 존재죠. 오직 주인만이 아바타를 통제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바타는 주인의 행동에 지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연구자들은 세컨드 라이프와 같은 가상세계를 사용하여 이러한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그들은 실험 참가자들에게 평범하게 생긴 것부터 매력적인 것까지 아바타를 하나씩 배정했습니다. 참가자의 실제 매력과는 상관없이 무작위로 아바타를 나눠준 것이죠.
그랬더니 매력적인 아바타를 가진 참가자는 평범한 아바타를 받은 참가자보다 가상세계에서 다른 사람(가상의)들과 친근한 관계를 형성했습니다. 비록 가상세계지만 좀더 자신있게 말하고 스스럼 없이 행동하는 모습을 보였죠. 실제로 그 참가자 자신이 얼마나 매력적인지는 상관이 없었습니다. 가상세계에서 자신이 부여 받은 아바타의 매력도에 상응하는 행동을 나타낸 겁니다. 바로 주인이 아바타로부터 거꾸로 통제 받을 수 있다는 증거인 셈이죠.
그러한 증거가 또 하나 있습니다. '최후통첩 게임'이라고 부르는 유명한 게임이 있습니다. 이 게임에 대해 모르는 분들을 위해 게임의 룰을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이 게임에는 두 사람이 참가합니다. 게임을 통제하는 실험자는 첫번째 사람에게 100 달러를 줍니다. 그리고 그에게 이렇게 말하죠. "저 사람에게 100 달러 중 얼마를 줄지를 제안하라. 만약 그사람이 제안을 거절하면, 그 사람은 물론 당신은 한푼도 벌지 못한다"
예를 들어, 첫번째 사람이 100 달러 중에 자신은 70 달러를 갖고 나머지 30 달러를 두번째 사람에게 제안한 후에 두번째 사람이 그걸 수용하면 각각 70 달러, 30 달러의 돈을 벌게 됩니다. 만약 두번째 사람이 거절하면 둘다 한푼도 벌지 못하는 것이죠. 첫번째 사람은 자신이 100 달러를 몽땅 갖겠다고 말할 수 있지만, 0 달러를 제안(?) 받는 두번째 사람이 그걸 거절하면 100 달러는커녕 한푼도 얻지 못합니다. 그래서 두번째 사람에게 0 달러보다는 큰 금액을 주겠다고 제안해야 거절 당할 위험이 적겠죠.
첫번째 사람이 두번째 사람에게 1 달러를 주겠다(자신은 99 달러를 갖고)고 하면 어떻게 될까요? 경제학적으로 보면, 두번째 사람은 첫번째 사람의 제안을 무조건 수용해야 합니다. 1 달러라도 버는 게 이득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현실은 다릅니다. 1 달러를 제안 받으면 감히 자신에게 그런 푼돈을 제안한 첫번째 사람을 응징(?)하기 위해서 '거절'을 선택합니다. 그래서 첫번째 사람은 두번째 사람에게 얼마를 제안해야 자신이 최대의 돈을 벌게 되는지 고민에 빠지죠. 이것이 최후통첩 게임의 내용입니다.
다시 아바타 이야기로 돌아오겠습니다. 이번엔 아바타의 키를 달리 해서 참가자들에게 무작위로 배정했습니다. 그런 다음, 키가 큰 아바타를 소유한 자에게 최후통첩 게임의 첫번째 사람의 역할을 맡도록 하면, 평균적으로 자신은 61달러를 갖고 두번째 사람에겐 39 달러를 제안했다고 합니다. 반면에 키가 작은 아바타를 가진 자는 자신이 52달러, 두번째 사람에겐 48 달러를 제안했습니다.
이번엔 반대로, 두번째 사람의 역할(첫번째 사람에게 제안을 받는 역할)을 참가자들에게 맡겨 보았습니다. 그리고 100 달러를 75 대 25로 나누자는 제안을 주었습니다. 그랬더니 키가 큰 아바타 소유자들의 38%만 이 제안을 수용했고, 키가 작은 아바타 소유자들은 72%나 제안을 받아들였습니다. 차이가 확연하게 나타나죠? 키가 큰 아바타를 가졌다는 사실이 좀더 이기적으로 변모를 시킨 걸까요, 아니면 자신감을 높여준 걸까요? 혹은 자신에게 돈을 적게 주는 사람을 응징해야 한다는 정의감이 커진 걸까요? 아마 해석하기 나름일 겁니다.
지금까지는 아바타의 매력이 가상세계의 행동에 미치는 영향을 이야기했는데, 놀랍게도 이러한 영향을 현실세계에까지 이어집니다. 가상세계에서 매력적인 아바타를 받았던 사람에게 예쁘고 멋진 이성의 사진을 보여주는 실험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사진 속의 인물이 자신과 데이트를 할 거라고 믿는 비율이 상대적으로(평범한 아바타를 받았던 사람들에 비해) 높았다고 합니다. 가상세계에서의 매력을 현실세계에 투영시킨 셈이죠.
이와 같은 실험 결과는 우리에게 무엇을 시사할까요? 1차적으로 이 실험들은 사람들에게 어떤 아바타가 부여되냐에 따라 자신감이나 이기심의 차이를 가져온다는 사실을 일깨웁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큰 의미는 현실세계에서 실험하기 어려운 주제가 가상세계에서는 아주 자유롭게 수행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가상세계를 통한 실험 결과를 통해 현실세계에서 벌어질 현상을 예상할 수 있다는 것이죠.
외모의 변화가 행동과 자존감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현실세계에서 실험을 하려면 성형수술을 해야 하는데 돈이 많이 들 뿐만 아니라 완전히 다른 외모나 체격으로 변모시키기 어렵습니다. 가상세계는 이를 가능케 하죠. 아바타 실험 이외에, 질병이 사람들 사이에 어떤 패턴으로 퍼져 나가는지, 기업과 같은 조직이 어떻게 만들어졌다가 사라지는지, 개인들의 약한 유대감이 네트워크(인맥)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등의 주제도 가상세계에서 컴퓨터를 활용하여 얼마든지 시뮬레이션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분야의 연구를 사회물리학(sociophysics)라고 말합니다. 간단히 말해 사회학과 물리학을 결합시킨 학문이죠. 사회를 구성하는 개인들을 물질을 구성하는 원자나 분자로 간주하고 간단한 몇 개의 로직을 부여한 후에 어떤 일들이 펼쳐지는지 살펴보는 방법으로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지난 번에 포스팅한 '무임승차자, 그들을 어떻게 할까요?'와 '팀의 강한 결속을 깨뜨려라'라는 글은 사회물리학의 연구 결과를 소개한 글이죠(이 글에서 소개한 아바타 실험은 엄밀히 말해 사회물리학이라고 볼 수 없을지 모르겠네요).
요즘 경영학은 답보 상태입니다. 새로운 발견이나 제안이 거의 없습니다. 혹자는 성공한 경영자가 왜 성공했는지를 알려면 경영학자에게 물어보라고 합니다. 경영자 자신은 모른다는 소리죠. 이처럼 경영학이란 앞에서 기업들을 끌고가는 학문이 아니라 기업들의 뒤를 따라가며 정리만 해주는 학문이라고 폄하됩니다.
경영학이 새로운 지평을 열어가기 위해 사회물리학적 연구 방법을 채용하면 어떨까 제안해 봅니다. 기업 내에서 벌어지는 여러 가지 현상들을 사회물리학적인 방법으로 연구하면 지금까지 가설이나 철학을 근거로 도입된 제도들이 과연 조직의 발전과 안정을 위해 적절한지를 검토할 수 있을 겁니다. 또한 조직관리나 성과관리 등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할지 모릅니다.
학문의 새로운 세계는 학문 스스로 벽을 깨고 밖으로 나갈 때에야 발견됩니다. 이제는 벽 안에서 깊게 파고드는 시기는 지났습니다. 다른 학문의 세계를 받아들이는 일이 때로는 '자기부정'의 과정을 요구하지만 그러한 고통 속에서 뛰어난 통찰이 얻어집니다. '아바타'가 주인을 조종한다는 것, 껍질을 깨지 않았으면 발견되지 않을 통찰입니다. 껍질을 깨고 밖으로 나가는 것, 이것이 바로 경영학이 시급히 채용해야 할 통찰의 기술입니다.
(*참고도서 : '행복은 전염된다', '사회적 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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