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실하지도 불확실하지도 않을 때의 의사결정은?   

2009. 8. 31.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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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포스팅에서 '완전히 불확실한 상황에서의 의사결정'에 대해 알아봤는데요, 오늘은 '완전히 확실하지도, 완전히 불확실하지도 않은 상황' 하에서 어떻게 의사결정해야 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우선 '완전히 확실하지도, 완전히 불확실하지도 않은 상황'이 무엇인지 알아봐야겠군요. 이런 상황이란 향후에 펼쳐질 외부환경의 모습이 어느 정도 알려져 있어서 각 시나리오(즉, 외부환경의 유형을 말합니다. 앞으로 시나리오라는 말을 쓰겠습니다)의 발생확률을 대략적으로 예측할 수 있는 상황을 말합니다. 지난 번에 언급한 '완전히 불확실한 상황'은 어떤 시나리오가 발생할지 전혀 예측할 수 없어서 모두 동일한 발생확률을 갖는다고 가정한 걸 기억할 겁니다.

디저트를 먹을까요, 말까요?


완전히 확실하지도, 완전히 불확실하지도 않은 상황은 다음과 같이 각 시나리오의 발생확률을 추정할 수 있는 경우를 일컫습니다.

 가치 매트릭스
부동산이 오른다
(확률 = 0.7)
유지된다
(확률 = 0.2)
내린다
(확률 = 0.1)
 집을 구매한다  10 3
 전세로 거주  -5 0 0
 월세로 거주  -5 0 2

여기서 각 시나리오의 발생확률을 어떻게 해서 추정했는지는 설명하지 않겠습니다. 나름의 근거와 직감을 바탕으로 구한 값이라고만 언급하겠습니다. 

사실 정성적인 상황을 위와 같이 확률이라는 정량적인 값으로 얻어내는 확실한 방법은 없습니다. 부동산 가격이 오를 거라는 신호가 시장에서 '많이' 그리고 '자주' 감지된다고 해서 '부동산이 오른다'는 시나리오의 발생확률을 높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즉, 근거의 수(양)가 많다 해서 발생확률을 높게 간주하기 어렵다는 말입니다. 단 하나의 사건만으로 그와 다른 시나리오가 펼쳐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죠.

따라서 '근거의 질' 또한 발생확률을 가늠하는 데 중요한 고려 사항입니다. 근거의 질이란, 그 근거가 해당 시나리오의 발생을 강하게 지지한다는 의미입니다. 예를 들어, 정부가 부동산 시장의 활성화를 위해 재건축과 관련한 규제를 해제할 거란 소식이 나온다면 다른 시나리오를 지지하는 근거들이 제아무리 많아도 '부동산이 오른다'는 시나리오를 강력하게 지지하기 때문에 근거의 질이 매우 높습니다.

완벽하지 않지만 발생확률을 판단할 때 다음의 가이드를 참조하기 바랍니다. 근거의 질을 더 우선함을 유의하십시오.

근거의 수가 많고, 근거의 질이 높다 → 발생확률 0.8 ~ 1.0 정도
근거의 수가 적고, 근거의 질이 높다 → 발생확률 0.6 ~ 0.8 정도
근거의 수가 많고, 근거의 질이 적다 → 발생확률 0.4 ~ 0.6 정도
근거의 수가 적고, 근거의 질이 낮다 → 발생확률 0.0 ~ 0.4 정도

발생확률의 위의 매트릭스처럼 추정됐다고 가정하면, 여러분은 어떻게 해결책을 선택해야 할까요? 의사결정 시 여러분이 취할 수 있는 첫 번째 전략은 '발생확률이 가장 높은 시나리오에서 가장 높은 가치를 보이는 해결책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위의 매트릭스에서 '부동산이 오른다'는 시나리오의 발생확률이 0.7로 가장 큰데요, 이때 가장 높은 가치를 보이는 '집을 구매한다'는 해결책을 취하면 됩니다.

너무나 간단한 의사결정이지만 주의할 점이 있습니다. '발생확률이 가장 높은 시나리오'라는 말은 다른 시나리오에 비해 '독보적으로' 발생확률이 높아야 함을 의미합니다. 단순하게 상대적으로 가장 큰  발생확률을 갖는 시나리오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예를 들어 3개의 시나리오가 각각 다음과 같이 발생확률을 갖는다고 가정해보죠.

시나리오 1 : 발생확률 0.5
시나리오 2 : 발생확률 0.4
시나리오 3 : 발생확률 0.1

시나리오 1의 발생확률이 다른 것보다 높지만 독보적이지는 않습니다. 0.5 라는 발생확률은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확률이 반반이라는 말이므로 발생할 거라는 믿음을 갖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시나리오 2의 발생확률(0.4)와 별 차이도 없습니다.

독보적이란 말은 정의하기 나름이겠지만,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어떤 시나리오가 독보적인 발생확률을 가진다는 말은 다른 시나리오들의 발생확률을 모두 합한 값에 2를 곱한 수보다 커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if 
        시나리오 N의 발생확률 > (나머지 시나리오들의 확률을 모두 더한 값) * 2
then
        시나리오 N은 '독보적 시나리오'

위의 가치 매트릭스에서 '부동산이 오른다'는 시나리오는 이 조건을 만족하므로 독보적인 시나리오입니다. 따라서 이 시나리오에서 가장 가치가 큰 '집을 구매한다'는 해결책을 선택하면 되겠죠.

만약 독보적인 시나리오가 발견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럴 땐 '최고의 기대값을 보이는 해결책'을 선택하는 전략을 취할 수 있습니다. 기대값이란 시나리오의 발생확률과 가치를 곱한 값을 합산한 수치를 말합니다. 가치 매트릭스가 다음과 같다면 기대값은 각각 맨오른쪽 열과 같이 계산됩니다.

 
부동산 오른다
0.5
유지된다 
0.4
내린다
0.1
기대값 
 집을 구매한다  10 0  -5 0.5*10+0.1*(-5)
= 4.5
 전세로 거주  -10 5 0  0.5*(-10)+0.4*5
= -3.0
 월세로 거주  -5 0 5  0.5*(-5)+0.1*5
= -2.0

기대값이 가장 높은 해결책이 '집을 구매한다'이므로 그것을 최종 해결책으로 선택하면 됩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조심해야 합니다. 기대값이 가장 높은 전략을 취하는 것이 높은 가치(혹은 작은 손실)을 항상 보장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위의 매트릭스에서 집을 구매하는 해결책의 기대값이 가장 높다 해도 부동산 가격이 유지되거나 내린다면 전세로 거주하는 방법보다 나쁜 해결책이 돼버리고 맙니다. 게다가 부동산이 오르는 시나리오와 유지되는 시나리오는 발생확률 차이가 겨우 0.1 밖에 안 됩니다. 부동산이 오를 경우에만 집을 구매한다는 해결책이 좋은 해결책이지, 나머지 시나리오에서는 전세나 월세로 거주하는 방법이 최고의 해결책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동전이나 주사위를 수십 번 던지는 것처럼 집을 구매할지를 수십 번 할 수 있는 기회나 능력이 있다면 위의 기대값이 충분한 의미가 있습니다. 하지만 대개 의사결정의 기회는 한번이나 기껏해야 두세 번밖에 주어지지 않기 때문에 기대값만 가지고 최고의 해결책을 구하려는 시도는 상당히 무모합니다. 기대값이 높은 해결책을 취하는 방법은 여러 번 시행이 가능한 의사결정 사안일 때만 적용해야 한다는 점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집을 구매할지 말지, 다른 회사로 이직할지 말지와 같이 오직 한 두 차례의 시행한 가능한 경우에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이때는 다음의 절차를 따르기 바랍니다.

1) 0.2 미만의 발생확률을 갖는 시나리오를 삭제한다
2) 남겨진 시나리오들의 발생확률을 모두 동일하다고 간주한다
3) '완전히 불확실한 상황' 하에서의 의사결정 방법을 따른다

위의 매트릭스에서 '부동산이 내린다'는 시나리오의 발생확률이 0.1 이므로, 그것에 해당하는 열을 모두 삭제합니다. 그런 다음, '부동산이 오른다'와 '부동산이 유지된다'는 시나리오의 발생확률을 똑같다고 가정합니다. 이렇게 되면 '완전히 불확실한 상황'과 같아지는데요, 지난 포스팅에서 설명한 절차 대로 '최선의 해결책', '만족스러운 해결책', '안전한 혹은 모험적인 해결책'을 찾아나가면 됩니다.

오늘의 논의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완전히 확실하지도, 완전히 불확실하지도 않는 상황에서 최고의 해결책을 찾는 방법

1) 독보적인 시나리오에 가장 높은 가치를 갖는 해결책을 택한다

독보적 시나리오가 없다면,
2) 기대값이 가장 높은 해결책을 택한다

여러 번 시행 가능하지 않다면,
3) 발생확률이 아주 낮은 시나리오를 삭제하고 '완전히 불확실한 상황' 하에서의
   의사결정 방법을 따른다

지금까지 외부환경(즉 시나리오)를 고려하여 최고의 해결책을 의사결정하는 방법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보다시피 좋은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려면 가치 매트릭스가 매우 중요합니다. 여러 시나리오에 처했을 때 각각의 해결책이 얼마 만큼의 가치를 보일 것인지를 근거를 바탕으로 '잘' 추정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근거가 미약한 상태에서 문제해결사 본인의 취향이나 경험에 따라 가치를 rating하면 의사결정은 무의미할 뿐더러 위험합니다.

물론 이렇게 절차에 따라 꼼꼼하게 내린 의사결정 결과가 직감에 의한 것보다 항상 좋다고 장담할 수는 없습니다. 한번 쓱 보고 '이게 제일 낫다'고 해서 실행한 결과가 엄청나게 성공할 수 있고 또 그런 사례도 많습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귀찮은데 이렇게 하나씩 체크할 필요가 있겠냐? 직감으로 판단해도 되는 걸!'이라고 항의 섞인 말을 하곤 합니다.

그러나 오직 성공한 것들만 알려지기 때문에 그와 같이 편향적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직감으로 내린 의사결정이 실패한 사례가 훨씬 더 많지만 성공하지 못했기에 외부로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죠. 또한 직감에 의해 성공한 사례가 더 극적이므로 대대적으로 알려질 가능성이 더 큽니다. 게다가 여러분이 직감으로 내린 결정이 성공한 경험이 있다면 꼼꼼한 절차를 그다지 신뢰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문제해결사 여러분은 합리적이고 과학적으로 의사결정을 진행할 의무와 권리가 있습니다. 시간이 없어서, 근거가 부족해서 못하겠다는 말은 핑계에 지나지 않습니다. 1~2시간만 공을 들이면 직감의 위험을 방지하거나 직감을 보완하는 해결책을 찾을 수 있습니다. 시도하지 않고서 거부만 한다면 문제해결사로서의 역량을 스스로 의심해야 합니다.

오늘 날씨처럼 언제나 쾌청한 의사결정과 함께 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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