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꼼짝 마'라고 외치는 '결정적 분석'이란?   

2009. 7. 20.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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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번 포스트에서 의견이 상충되는 현상인 '모순', '반대', '소반대'에 대한 논리적 해석을 알아보았습니다. 그 중 '모순'되는 상황에 대한 해결책을 마련하려면, 두 개의 명제(혹은 주장) 중에서 참인 것과 거짓인 것을 명확하게 가르는 분석이 필요하다고 언급했습니다. 이 때 필요한 분석이 바로 '결정적 분석(Crucial Analysis)'입니다.

결정적 분석이란 말은 과학에서 말하는 '결정적 실험(Crucial Experiment)'라는 용어에서 제가 따온 것입니다. 문제해결 과정에서 행하는 실증이 분석이고 과학에서 행하는 실증은 실험이므로, 결정적 실험이 어떤 의미인지를 안다면 결정적 분석의 방법을 깨달을 수 있을 뿐더러 나아가 모순되는 상황을 일시에 해결할 수 있습니다.

결정적 분석? 도대체 무슨 말인가?


결정적 실험이란 말은 17세기의 과학자이자 철학자였던 프랜시스 베이컨(Francis Bacon)이 처음 사용한 용어입니다. 상당히 강력한 뉘앙스를 지닌 말인 듯 하지만 그 의미는 생각 외로 단순합니다. 결정적 실험이란 한마디로 이야기해서 "꼼짝 마!" 실험을 일컫습니다. 실험 결과가 나오면 더 이상 왈가왈부하지 못하도록 일시에 정리해버리는 실험이죠. 아리스토텔레스적인 세계관에 물든 당시 대중의 사고를 깨뜨리기 위해 갈릴레이가 행했던 물체낙하실험을 가지고 결정적 실험이 뭔지 개념을 잡아보겠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가설(대중의 고정관념)과 갈릴레이의 주장(즉 가설)은 각각 다음과 같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 : 무거운 물체가 가벼운 물체보다 빨리 떨어진다
갈릴레이          : 무거운 물체와 가벼운 물체는 동시에 떨어진다

        * '무거운 물체보다 가벼운 물체가 빨리 떨어진다'는 제3의 주장이 나올 수 있지만
            이 주장은 명백히 거짓임이 이미 증명됐다고 가정함

만일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이 참이라면, 갈릴레이의 가설은 거짓입니다. 반대로, 갈릴레이가 맞다면 아리스트텔레스는 틀립니다. 그러므로 이 두 개의 가설은 서로 모순입니다. 이 모순을 깨려면 결정적 실험이 행해져야 합니다. 그 실험이 바로 지난 포스트에서 설명했던 갈릴레이의 물체낙하실험입니다. 직접 100파운드 짜리와 1파운드 짜리 금속공을 피사의 사탑에서 떨어뜨리면 두 개의 명제 중 어느 것이 참인지(반대로 어떤 것이 거짓인지) 가려내고 논란을 잠재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결정적 실험은 다음과 같은 구조를 갖습니다.

1단계 :  첫번째 가설(H1)이 맞으면 → A라는 결과가 나오리라 예상 
            두번째 가설(H2)가 맞으면 → B라는 결과가 나오리라 예상

2단계 : 측정

3단계 : 측정 결과가 A와 B 중 어느 것에 해당하는지 판단

4단계 : 만일 A라면, H1이 참이고 H2는 거짓
           만일 B라면, H2가 참이고 H1은 거짓

4단계에 걸쳐 결정적 실험의 구조를 기술했지만 그 내용은 상당히 심플합니다. 이 구조에 갈릴레이의 낙하실험을 대입해 보겠습니다.

1단계 :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이 맞으면
                  → 무거운 물체가 땅에 부딪히는 순간에 가벼운 물체는 낙하 중이다
            갈릴레이의 주장이 맞으면
                  → 두 물체는 땅에 동시에 부딪힌다

2단계 : 측정

3단계 : 측정해보니 무게가 다른 두 물체는 땅에 동시에 부딪혔다

4단계 : 그러므로, 갈릴레이의 주장은 참이고,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은 거짓

혹여 '결정적 실험은 뭐 별것 아니네'라는 반응이 나올지 모르겠군요. 사실 갈릴레이의 실험은 현대인들의 시각으로 보면 매우 간단하고 자명합니다. 그 이유는 1단계 때문입니다. 각 가설로부터 결과가 쉽게 예상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가설이 옳다고 가정하고 거기서 나올 만한 결과를 논리적으로(그리고 머리 속으로) 예상하는 일이 생각보다 녹록치 않습니다. 

가령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 이론 중에 '중력에 의해 빛이 휘어진다'라는 가설을 떠올려 보십시오. 이 가설이 맞다고 가정할 때 나올 수 있는 결과는 무엇일까요? '강력한 중력을 지나면 빛이 휘어진다'가 예상되는 결과라고 말하면 가설을 한번 더 반복한 것에 불과합니다. 이것으로 빛이 중력 때문에 휜다는 걸 실험할 수 있습니까? 

가설로부터 예상되는 결과는 '실험가능성(experimentability)'이 커야 의미가 있습니다. '강력한 중력을 지나면 빛이 휘어진다'라는 결과 예상은 실험가능성이 아주 낮습니다. '도대체 어떤 방식으로 실험해야 하는가?'란 의문만 더 가중시킬 뿐입니다. 반면에 갈릴레이의 가설에서 '두 물체는 땅에 동시에 부딪힌다'는 결과 예상은 육안으로 관측할 수 있기 때문에 실험가능성이 아주 크죠. 

아인슈타인은 자신의 가설이 맞다면 '일식일 때 태양 뒤 편에 있는 별은 실제 위치에서 잘못된 곳에 놓인 것처럼 보인다'라는 결과를 예상했습니다. 이 예상 결과는 실험가능성이 높습니다. 아서 에딩턴(Arthur Eddington)이란 영국의 실험물리학자는 실제로 일식이 일어난 1919년에 서아프리카의 프린시페 섬에서 일식이 일어나는 동안 별의 위치가 달라짐을 관측함으로써 아인슈타인의 가설이 옳음을 증명했습니다. 

(* 이 증명은 과학철학자 칼 포퍼에 의해 '반증가능하지 않기 때문에 옳지 않다'라고 공격 받았습니다. 이 글은 과학철학을 논하는 글이 아니므로 자세한 이야기는 생략하겠습니다.)

우리는 지금 과학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고 문제해결을 논하는 중임을 잊지 마십시오. 모순되는 상황을 일시에 정리하기 위해 필요한 '결정적 분석'을 과학에서 말하는 '결정적 실험'의 개념으로 이해하고자 조금은 장황하게 배경을 설명했습니다.

자, 문제해결사가 인터뷰를 해보니 다음과 같이 상충되는 두 개의 의견을 청취했다고 가정해보죠. 혼동을 피하기 위해 다른 의견은 없다고 하겠습니다.

첫번째 의견 : 직원들의 업무량은 아주 많다
두번째 의견 : 직원들의 업무량은 많지 않다

예상컨데 첫번째 의견은 부하직원들이, 두번째 의견은 팀장이나 임원들이 제기한 주장인데요, 일일이 따져보지 않아도 두 의견은 서로 모순임을 알 수 있습니다. 어느 하나가 명백히 참임을 증명하면 다른 하나는 자동으로 거짓이 됩니다. 이런 "꼼짝마" 판단을 얻으려면 결정적 분석을 시행해야 합니다. 

결정적 분석의 단계도 결정적 실험과 거의 동일합니다. 1단계가 가장 중요하고 어렵다는 것도 동일합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결정적 분석을 설계하겠습니까? 아마 아래와 같지 않을까요?

1단계 :  업무량이 많으면
                  → 직원들이 퇴근시간을 넘겨 일한다
            업무량이 적으면
                  → 직원들이 정상시간에 퇴근한다

2단계 : 측정

3단계 : 한달 간 측정해보니 평균적으로 밤 9시에 퇴근한다

4단계 : 그러므로, 첫번째 의견은 참이고, 두번째 의견은 거짓.

이 실험은 결정적 실험인가요, 아니면 비결정적 실험인가요? 실험 결과를 누군가에게 제시하면 아마도 "인터넷이나 하면서 빈둥거리면서 밤 9시까지 퇴근하지 않는 직원들이 많은 것 같은데 무슨 소리냐? 직원들의 업무량은 얼마 안된다구!" 라는 핀잔을 들을지도 모릅니다. 분석 결과에 왈가왈부할 여지를 주었으니 결정적 분석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하면 어떨까요?

1단계 :  업무량이 많으면
                  → 직원들이 1시간 미만의 여유시간을 가진 채 하루 8시간 이상을 일한다
            업무량이 적으면
                  → 직원들이 1시간 이상의 여유시간을 가지며 하루  8시간 이상을 일한다

2단계 : 측정

3단계 : 한달 간 측정해보니 여유시간이 평균적으로 40분이다

4단계 : 그러므로, 첫번째 의견은 참이고, 두번째 의견은 거짓.

이것은 결정적입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여유시간이 1시간 이상이냐 아니냐가 '업무량의 많음' 여부를 가리는 기준이 되느냐의 문제가 있지만, 분석하기 전에 서로 합의가 됐다고 가정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이 분석은 결정적 분석이 됩니다. 측정된 여유시간은 1시간 이상이거나 1시간 미만, 둘 중 하나이므로 참과 거짓이 분명하게 갈립니다.

그런데, 결정적 실험에서 실험가능성이 높아야 하듯이, 결정적 분석에서는 '분석가능성(Analyzability)'이 역시 높아야 합니다. 여러분 중 누군가가 "여유시간 측정은 분석가능성이 높습니까?" 라는 의문이 제기할지 모르겠군요. 직원들의 동태를 일일이 살피면서 그들이 노는지 일하는지를 판단할 때 오류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여유시간이 40분 나왔다해도 '직원들의 업무량이 아주 많다'는 주장이 명백히 옳다고 선언하기 어렵습니다. 이 예시 역시 분석 결과에 왈가왈부가 여지가 있으므로 결정적 분석이 아닙니다.

어딘가에서 "도대체 결정적 분석을 어떻게 설계하란 말인가요?" 라는 볼멘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습니다. 과학과 달리 문제해결 과정이 목표로 하는 문제는 사회 현상이므로 '완벽한 결정적 분석'을 설계하고 실
시하는 일은 이론적으로 불가능합니다. 항상 논란의 여지가 숨어있지요.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최대한 결정적 분석의 조건을 갖추는 일입니다. "이런이런 행동들은 업무가 아니라 사적 용뮤라고 보겠다"고 미리 선언하고 사전에 합의를 해두면 측정의 오류를 상당 부분 줄여서 분석가능성을 높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분석 결과가 나왔을 때 반론을 차단함으로써 해결책 마련에 힘을 집중할 수 있지요. 반론을 막는 데에 힘을 소진하면 문제해결은 이미 실패한 것이나 진배 없습니다.

지금까지의 논의를 정리해 보겠습니다. 모순되는 상황에 처했을 때 문제해결사는 다음과 같은 행동강령에 따라 분석을 실시하기 바랍니다.

1. '결정적 분석'의 구조를 구상한다
2. 가설별로 예상되는 결과의 '분석가능성'을 살핀다
3. 분석가능성이 높은 예상 결과를 취한다
4. 완성된 '결정적 분석'의 구조를 사전적으로 혹은 사후적으로 이해관계자에게 이해시킨다

문제해결기법을 논하면서 과학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되는데요, 수천 년 동안 축적된 과학의 방법론을 살피고 차용하면 상당한 이점을 얻을 수 있습니다. 과학 역시 문제해결의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계속해서 과학 이야기를 언급할 텐데요, 그때마다 무조건 어렵다고 생각하지 말고 "이 참에 문제해결기법을 과학적인 기반으로 탄탄하게 익히자"는 긍정적인 마인드로 읽어주길 바랍니다.

오늘도 즐겁게 문제해결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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