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아니 우리나라 사람)들은 3월 14일을 화이트 데이로 알고 있다. 발렌타인 데이도 국적불명인데, 화이트 데이는 그것보다 한술 더 뜨는 괴상한 기념일이다. 눈 내리는 겨울도 아닌데, 웬 화이트 데이?
3월 14일은 수학에서(우리 생활에서도) 없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숫자인 파이(π)데이다. 알다시피 π는 순환하지 않는 무한소수, 즉 무리수라서 영원히 끝나지 않는 수다. 소숫점 아래 200번째 자리까지 나타내면 다음과 같다.
π= 3.
14159 26535 89793 23846 26433 83279 50288 41971 69399 37510
58209 74944 59230 78164 06286 20899 86280 34825 34211 70679
82148 08651 32823 06647 09384 46095 50582 23172 53594 08128
48111 74502 84102 70193 85211 05559 64462 29489 54930 38196 ....
우리 늘 보고 사용하는 바퀴, 컵, 연필, 이어폰 등에는 무한히 뻗어가는 무리수 π 가 숨어 있다. 유한함 속에 무한함이 잠재되어 있다니, 생각해 보면 정말 놀랍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π를 발견하지 못했다면, 과연 지금과 같은 문화와 문명을 일궈낼 수 있었을까? π는 고마운 수다.
지금은 컴퓨터의 도움으로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π를 소숫점 수천 수만 자리까지 알아낼 수 있지만, 오직 펜과 종이 밖에 없던 시절에는 π값을 구하는 게 수학자들에게 큰 도전과제였다. 위대한 과학자 뉴턴은 친구에게 이렇게 편지를 썼다고 한다. "별로 할 일이 없어서 π의 소숫점 아래 열여섯 자리까지 계산해 봤다네."
소숫점 아래 100자리 까지 구한 사람은 존 마신이었고, 200자리까지 구해낸 건 1844년이 되어서였다. 수학자들은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더 큰 자릿수까지 π값을 구하려고 경쟁적으로 매달렸다. 마침내 1874년에 윌리엄 생스가 소숫점 아래 707자리까지 구해내기 이르렀다. 생스는 20년 간이나 하루도 빼먹지 않고 오직 π값 구하기에 매달렸다고 한다.
생스의 기록은 그 후 71년 동안 깨지지 않았지만, 생스가 구한 π값에는 오류가 있었다. 1947년에 퍼거슨이란 수학자가 소숫점 아래 528자리의 수가 틀렸음을 증명했기 때문이다. 생스의 20년 노력이 물거품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 후 'π값 구하기 열풍'은 전자계산기(컴퓨터)의 등장으로 무의미해졌다. 1958년에 소숫점 아래 1만자리까지 알아내고 1989년에 소숫점 아래 10억 자리까지 컴퓨터가 척척 계산해 냈기 때문이다. 현재의 가장 성능 좋은 컴퓨터로 사용한다면 이보다 더 큰 자릿수까지 계산할 수 있을 것이다.
정치가들은 π의 중요성을 과연 얼마나 알고 있을까? 1940년에 미국 인디애나 주 고속도로 관리국의 엔지니어들은 전자계산기의 설치를 주의회 의원들에게 요청했다. 고속도로의 굽은 구간 등을 정확히 설계하려면 π를 계산해야 하는데, 그게 3.14159...로 끝없이 반복되는 무한소수라서 손으로 계산하기 복잡했기 때문이다.
의원들은 회의 끝에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전자계산기를 지원할 만한 자금이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해결책을 생각했는데, 이제부터 π를 4로 고쳐서 쓰기 바랍니다."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조치였다.
사람들이 골치 아프다며 수학을 멀리하는 경향이 있는데,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신(만일 존재한다면)이 창조한 우주의 비밀이 수(數)에 함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인문학자들은 인문학을 몰라 준다며 푸념하지 말고, 수학과 과학의 세계를 자신의 체계 안으로 흡수해야 한다. 그게 인문학의 살길이다.
우리가 마시는 공기 중에도, 바람에 흩날리는 나뭇잎에도 π가 존재한다. 3월 14일에는 연인에게 사탕을 선사하는 것도 좋지만, 우주의 근원수 중에 하나인 π의 존재를, 그리고 그것의 발견에 공헌한 수많은 수학자들에게 한번쯤 감사의 인사를 전해야 하지 않을까? 찬사를 받아야 할 사람은 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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