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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저녁이었다. 공원 산책을 1시간 가량 하고 우리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던 중이었다. 누군가가 내 뒤에 서길래 힐끗 봤더니, 시장을 다녀온 듯 장바구니를 든 여자분이었다. 내 나이 또래 돼 보였다.
엘리베이터가 1층까지 내려오는 데에 시간이 좀 걸렸다. 나는 그냥 주머니 속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면서 숫자판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여자분도 장바구니를 든 채 엘리베이터를 기다렸다.
헌데, 그 여자분의 표정이 좀 불안해 보였다. 급하게 집에 올라갈 일이라도 있나? 나는 그냥 그렇게 생각했는데, 그 분이 내 얼굴을 힐끗 보기를 반복하는 걸 느꼈다. 왜 그러시나? 내 얼굴에 뭐라도 묻어 있나?
엘리베이터가 3층을 지나 2층으로 내려오는 순간이었던 걸로 기억된다(잘은 모르겠다). 불안한 표정을 하던 그 여자분이 장바구니를 든 채 황급히(?) 자리를 뜨는 것이었다. 마치 날 피하는 것처럼. 슬쩍 보니, 다른 쪽 엘리베이터로 달려가는 모습이 보였다(우리 아파트는 복도식이라서 다른 라인의 엘리베이터를 이용할 수 있다).
왜 저러실까? 지금까지 엘리베이터를 같이 기다렸는데, 조금만 기다리면 엘리베이터가 올텐데, 왜 다른 엘리베이터로 가버리는 거지? 나는 이렇게 생각하다가 엘리베이터 입구 옆에 있는 거울 속 내 모습을 봤다. 검은 색 바지와 검은 색 점퍼, 산책할 때 자주 입는 옷이다.
혹시.... 그 여자분은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생각한 것 아닐까? 이렇게 검은 색의 옷이 그분에게 불안감과 공포스러운 상상(?)을 일으킨 게 아닐까? 요즘 강호순이 저지른 엽기적인 연쇄살인으로 흉흉하다 보니, 혹시 그분이 나를 사이코패스로 오해한 게 아닐까?
이런.... 스스로 생각해도 내 얼굴이 혐오감을 주는 얼굴은 아닌데... 뭐, 사실 사이코패스 강호순도 얼굴만 보면 그렇게 엽기스러운 살인을 저지를 것 같지 않은 선한 인상 아닌가? 그러니 그 여자분이 날 오해했을 수도 있겠다 싶다. 단 둘이 엘리베이터를 탔다가 화를 당할까 두려웠을 테니까 말이다.
쩝. 기분이 그리 좋질 않았다. 무고하게(?) 오해를 받았으니까 말이다. '저 사이코패스 아니에요'라는 증명서를 몸에 지니고 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고. 세상 인심이 흉흉한 것 같아 참 걱정이다.
입춘도 지났으니, 검은 색 옷을 탈피하고 좀 산뜻하게 입고 다녀야겠다. 그러면 덜 오해하지 않을까, 란 헛헛한 기대나마 해볼 수 밖에. 의도하지 않았지만 나 때문에 공포감(?)에 휩싸였을 그분에 죄송스러운 마음이다. 이게 남자인 죄인가? ^^;;
강릉의 '하슬라 아트월드'에 있던, 설중(雪中) 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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