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혁신을 망친다   

2026. 3. 13.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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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들어 팀원들이 내놓은 보고서들은 놀라울 정도로 깔끔하고 논리적이라는 느낌이 들 겁니다. 왜 그럴까요? AI를 활용해 작성했기 때문이죠. 그러나 내용은 훌륭한데, 정작 "그래서 이 데이터가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갖느냐"는 질문을 던지면 꿀 먹은 벙어리가 되는 모습을 자주 발견하지 않습니까? 겉은 그럴듯하지만 알맹이가 없는 듯한 '지식의 공동화' 현상. 이것이 지금 우리가 직면한 AI 시대의 그림자입니다.

흔히 지식이 더 자유롭고 쉽게 공유될수록 조직의 성과가 높아질 것이라 믿을 텐데요, 지식 공유가 마찰 없이(Frictionless) 너무 쉬워지면 오히려 지식 생산 자체가 중단된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워릭 경영대학원의 제르커 덴렐(Jerker Denrell)은 이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만약 누군가 고생해서 만든 지식을 아무런 노력 없이 그대로 복사해 쓸 수 있다면, 사람들은 스스로 지식을 생산하기보다는 남이 만든 것이나 AI가 제시한 것을 기다리는 '무임승차(Free-riding)'를 선택한다고 말이죠. 

이렇게 되면 조직 전체의 지식 수준은 각자가 각개전투로 공부할 때보다 나아지지 않거나, 오히려 퇴보하는 상황에 직면합니다. 챗GPT, Gemini와 같은 도구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것은 미래 지식의 공급원을 스스로 차단하는 행위다 될 수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혹시 AI가 '집단지성'의 결정체라고 여깁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사실 AI의 작동 원리는 '가장 확률이 높은 다음 단어'를 선택하는 것입니다. 즉, AI는 철저하게 '평균'을 지향하죠. 수많은 데이터를 학습한 AI는 가장 보편적이고 안전한 답을 내놓는 데 최적화되어 있습니다.

창의적인 문제 해결 과정에서 AI에 지나치게 의존하면 첫째, AI가 제시하는 비슷한 논리 구조로 사고가 모이게 됩니다. 조직 내의 '다양성'이 사라져 버리죠. 둘째, AI가 그럴듯한 논리로 결과를 내놓으면 인간은 그 논리적 허점을 파고들기보다 그저 수정하는 수준에 머뭅니다. 근본적인 이유, '왜?'라는 질문을 하지 않죠.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AI를 폐기하고 아날로그 시대로 돌아가야 할까요? AI를 정답지가 아니라 내 사고의 한계를 부수는 자극제로 활용해야 합니다. AI가 제시하는 답을 무작정 따르기보다 "AI가 어디까지 확장해서 답을 냈는지"에 주목해야 하죠.

예를 들어 "이 세탁기를 효과적으로 광고할 문구(카피)를 뽑아줘"라고 AI에게 질문했다고 가정해 보죠. AI가 제시한 여러 후보들 중에 마음에 드는 하나를 고르려고 하지 마세요. 사람들이 광고 문구를 짜낼 때는 세탁기를 주로 사용하는 사람(주부, 1인가구 등)을 타겟으로 하는데 만약에 AI가 세탁물을 소비하는 사람(가족 구성원들)의 입장에서 광고 문구를 냈다면 "아, 우리가 그런 입장으로 카피를 만들어 본 적이 없구나!"라고 깨달아야 합니다. 이것이 AI를 창의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태도입니다.

말은 쉽지만 이런 태도가 저절로 생기지는 않습니다. 덴렐은 '흡수 역량'을 길러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흡수 역량이란 타인의 지식을 이해하고 활용하기 위해 사전에 갖추어야 할 기본 지식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AI가 짠 고급 프로그래밍 코드를 받더라도 내가 코딩의 기초를 모르면 그 코드를 내 업무에 맞게 수정하거나 응용할 수 없겠죠. '내가 먼저 충분히 공부해야 AI의 답을 창의적인 방향으로 활용할 수 있다'라는 점을 인지해야 합니다.

혁신은 '가장 확률 높은 평균값'을 내놓는 AI의 결과물이 아니라, AI가 내놓은 답의 허점을 찾아내거나 그 답을 기초삼아 새로운 관점과 아이디어를 획득할 수 있는 '흡수 역량'에서 비롯됩니다. 기초지식과 경험이 없는 상태에서 AI 지식을 쌓아올리는 것은 그저 언젠가는 무너질 모래성입니다.


*참고논문
Denrell, J., Luukkonen, J., Chater, N., & Liu, C. (2026). The Need For Absorptive Capacity Alleviates the Free-Rider Problem in Knowledge Production. Available at SSRN 60938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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