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확한 목표가 혁신을 망친다   

2026. 3. 12.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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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하는 두 팀이 있다고 가정해 보세요. A팀의 회의실은 평화롭고 정돈되어 있습니다. 프로젝트의 목표와 해결할 문제가 첫날부터 명확하게 정의되어 있고, 팀원들은 화이트보드에 일사불란하게 세부 실행 계획과 타임라인을 그리고 있습니다. 

반면, B팀의 회의실은 완전히 딴판입니다. "우리가 진짜 풀어야 할 문제가 도대체 뭡니까?", "그건 너무 표면적인 접근 아닌가요?" 팀원들은 모호한 상황 속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백지상태에서 치열하게 논쟁만 벌이고 있습니다. 당장 내일 해야 할 일조차 정해지지 않았고, 한두 명은 딴청을 피우는 중입니다.

여러분은 어느 팀이 혁신적인 결과물을 창출하리라 기대합니까? 누군가가 돈을 걸라는 제안을 하면 십중팔구 일사불란하고 깔끔하게 출발한 A팀에 베팅하겠죠.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있듯이 처음부터 문제가 명확하게 정의되어야 낭비를 줄이고 성공 확률이 높아진다고 믿기 때문일 겁니다. 

하지만 이 글을 읽으면 여러분이 오랜 상식이 깨지고 말 겁니다. 깔끔하고 완벽한 출발이 오히려 혁신의 기운을 저해하고, 오히려 '지저분하고 모호한(Messy)' 시작이 엄청난 혁신을 낳을 수 있으니까요.

MIT 슬론 매니지먼트 리뷰에 실린 크롬웰(J. R. Cromwell)의 논문은 '엉망진창인 팀'에 숨겨진 힘을 증명합니다. 크롬웰은 모 다국적 기업의 연례 혁신 대회에 참가한 수백 개의 프로젝트 팀을 심층 분석했는데요, 그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애초에 문제 정의가 깔끔하게 주어졌던 팀들보다 프로젝트 초기에는 문제의 정의 자체가 모호하여 갈팡질팡했지만 프로젝트 중반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그 문제를 명확하게 규명해 낸 팀들의 혁신 성공률이 훨씬 높았던 것입니다.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질까요? 이유는 이렇습니다. 시작부터 문제가 명확하게 쥐어지면 팀원들은 '이 문제가 과연 우리가 풀어야 할 진짜 문제인지'를 더 이상 의심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문제를 가장 적은 비용과 시간으로 빨리 푸는 '실행의 효율성'에만 집착하죠. 이런 태도는 점진적인 개선에는 유리할지 몰라도 상식의 세상을 뒤집는 혁신과는 거리가 멉니다. 

반면, 초기부터 모호함과 혼란은 겪은 팀원들은 심리적으로 고통스러워 하지만, 그 과정에서 다양한 관점을 접하게 됩니다. 현상 이면에 숨겨진 진짜 원인(Root Cause)을 찾기 위해 이리저리 부딪히고, 실패하고, 격렬하게 토론하는 과정에서 이른바 '인지적 다양성'이 폭발하죠. 이것이 혁신의 가능성을 높인다고 크롬웰은 설명합니다.

사례를 들어볼까요? 모 IT 기업에서 '쇼핑몰 장바구니 결제 포기율을 10% 낮춰라'라는 명확한 미션을 받은 팀은 결제 버튼의 색상을 눈에 띄게 바꾸거나 페이지 로딩 속도를 0.1초 줄이는 등 기존 프로세스의 최적화에만 매달렸습니다. 문제가 명확하니 그저 소폭의 수치 개선에 그치고 말았던 것이죠.

반면, '최근 MZ세대 고객들이 우리 서비스에서 이탈하는 근본 원인을 찾고 해결하라'는 모호한 미션을 받은 팀은 어땠을까요? 처음 1개월 내내 "우리의 경쟁력이 무엇이냐", "고객이 진짜 원하는 게 무엇이냐"를 두고 팀원들은 갈팡질팡했습니다. 하지만 고객의 행동 패턴을 끈질기게 관찰하고 치열하게 토론하며 프로젝트 중반부를 지날 무렵, 이들은 문제가 장바구니나 결제창의 UI가 아니라 '탐색 과정에서의 타인과의 소통 부재'라는 진짜 문제를 정의해 냈습니다. 결국 친구들과 쇼핑 리스트를 공유하며 실시간으로 소통하는 완전히 새로운 소셜 커머스 기능을 개발해 폭발적인 매출 성장을 이끌어냈다고 합니다. 

혁신으로 가는 길은 처음부터 끝까지 매끄럽게 포장된 고속도로가 아닙니다. 오히려 덤불이 우거진 정글을 이리저리 헤치며 스스로 새로운 길을 만들어가는 탐험에 가깝습니다. 리더와 팀원 모두 프로젝트 초기의 혼란과 의견 충돌을 '준비 부족'이나 '무능함'으로 치부하여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다양한 생각이 부딪히며 낡은 가고의 틀을 깨고 진짜 문제를 찾아가는 가장 건강한 진통이자, 엉망진창인 팀만이 가질 수 있는 숨겨진 힘이니까요.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우리가 지금 해결하려는 이 문제가 '진짜' 문제일까? 혹시 우리가 놓친 더 크고 모호한 본질이 뒤에 숨어있지 않을까?"라는 질문을 던져 보세요. 그리고 팀원들과 치열하게 논쟁하세요. 문제 자체의 깔끔함과 명확함에 매몰되지 말고요. (끝)
 

* 참고논문
Cromwell, J. R., & Harvey, J. F. (2026). The Hidden Power of Messy Teams. MIT Sloan Management Review, 67(3), 3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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