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이 넘치는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면 어떤 느낌이 듭니까? 그 사람의 열정에 전염돼 여러분도 덩달아 힘이 나고 기분이 좋아집니까? 아니면 그 반대입니까? 저는 어떠냐고요? 열정적인 분들께는 죄송스러운 말씀이지만 저는 조금은 고개를 갸웃하게 됩니다. 그리고 열정 뒤에 가려진 그들이 진정한 모습은 무엇일까 살짝 의심하게 되죠.
왜 이리 부정적이냐고요? 이 무슨 비뚤어진 의심병이냐고요? 왜냐하면 열정에는 부정적인 측면이 상당히 존재한다는 증거가 많기 때문입니다. 중국 엔지니어링 회사에서 일하는 800여명의 직원들에게 매일 열정과 성과를 평가해 달라고 한 연구가 있는데요, 데이터를 분석해 보니 자신의 열정 수준이 높다고 평가할 때 실제 성과보다 '과장'하는 패턴이 발견되었습니다. 열정이 과신과 자만을 낳았던 겁니다.
또 이런 실험도 있었습니다. 실험 참가자들 중 절반에게는 '나는 시간을 잘 지키는 사람이다'라고 인식하게 하고, 나머지 절반에게는 '나는 매우 열정적인 사람'이라고 상상케 했습니다. 연구자는 두 그룹 모두 성과 수준은 '보통' 수준이라고 알려줬습니다. 그랬더니 열정적인 사람으로 스스로를 인식한 참가자들이 자기가 더 오래 일하고, 더 열심히 일하고, 더 인내하고, 더 높은 성과를 얻을 거라고 기대하더랍니다. 열정 때문에 스스로를 과대평가한다는 것이죠. 실제 성과 수준은 보통이라고 사전에 주지를 시켰는데도 말입니다.
그렇다면 열정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사람에게는 어떤 평가를 내릴까요? 짐작하겠지만, 열정이 충만하고 끓어오르기까지 하는 사람에게는 실제 성과보다 더 높은 기대감을 갖고 더 높게 평가한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조용한 팀보다는 '으싸으쌰'하는 팀의 성과가 더 높을 거라고 추측했으니까요.
이렇게 열정이 객관적 판단을 막는 요소 중 하나이기에 저는 열정적인 사람을 볼 때마다 '이 사람의 열정에 속지 말자'라고 속으로 주문을 외듯 하는 겁니다.
하지만 열정을 보는 저의 관점에 해당되지 않는 분야가 있습니다. 열정이 높아야 일을 잘해낼 수 있는 분야가 그렇죠. 몸을 부딪혀 영업을 하거나 새로운 판로를 개척해야 하는 사람에게는 열정이 긍정적인 작용합니다. 군인도 그렇고요. 이런 일을 해내려면 자신감이 높아야 하는데 바로 열정이 훌륭한 원료가 되죠.
문제는 열정이 그런 분야에서는 긍정적인 '감정 고양 상태'라고 해서 모든 분야에 열정을 기대하는 것입니다. 고도의 지식이나 스킬, 의사결정, 의견 제시 등이 요구되는 분야에는 열정 때문에 생긴 자신감이 과신으로 이어져 실패를 낳을 수 있음을 조심해야 해요. 의사, 연구원, 기획자, 관리자 등 '으쌰으쌰' 하는 모습을 시전한다고 해서 일을 더 잘해낼 거라고 기대할 수 없는 분야에서는 말입니다.
일본 드라마를 보면 열정의 과잉 장면이 불편하거나 우스꽝스러울 때가 종종 있습니다. 열정에 무슨 환상 같은 걸 가진 모양입니다. 어려움에 닥치면 결연히 입술을 깨물면서 주먹을 불끈 쥐는 모습, 친구나 가족이 문제 해결에 골머리를 앓으면 옆에서 '간바레!'를 외치며 힘을 불어넣는 모습이 그렇습니다. 그런다고 안 풀리던 문제가 저절로 풀리기라도 할까요? 코미디라면 모를까, 정극에서도 그러니 어떨 때는 실소가 터지기도 합니다.
저는 열정적이기만 한 사람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과거에 몇 번 당해서 그런지, 실제 성과가 높은 사람을 좋아하지요. 여러분은 어떤가요?
*참고논문
Bailey, E. R., Krautter, K., Wu, W., Galinsky, A. D., & Jachimowicz, J. M. (2024). A Potential Pitfall of Passion: Passion Is Associated With Performance Overconfidence. Social Psychological and Personality Science, 194855062412524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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