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에 어떤 분이 저에게 "책을 쓰고 싶은데 목차를 어떻게 구성할지 고민입니다. 그걸 못 정해서 아직 시작 못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라고 조언을 구하더군요. 오늘은 그 분께 해드린 저의 조언을 여기에 옮겨써 봅니다.
가장 큰 고민이 책의 구성, 책의 목차라고 말하는 까닭은 아마도 책 전체의 논리 구조를 수립하고 그 아래에 글을 짜임새 있게 배치하는 것을 대다수의 '책쓰기' 관련 책에서 무엇보다 강조하기 때문인 듯 합니다. 하지만 과연 목차를 정하는 게 가장 중요할까요?
저도 처음 책을 쓸 때는 전체 주제를 맨 꼭대기에 두고 그 밑에 파트를 배치하고, 파트 밑에는 챕터로 세분하고 챕터 밑에는 소주제를 나열하는 방식, 소위 ‘피라미드 구조’로 책의 전체 목차를 구성하는 작업부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쉽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목차를 만들고 수정해도 엉성해 보였고 구멍이 숭숭 뚫린 듯한 느낌이 들었죠.
왜 그랬을까요? 저는 한참 후에야 이유를 깨달았습니다. '자료 수집 단계'를 거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이죠. 책 한 권을 쓰려면 자신이 수년 간의 경험과 노하우를 가지고 있다 해도 각종 자료(논문, 기사, 사례 등)를 반드시 수집해야 합니다. 본인의 지식, 경험, 노하우만으로는 책의 주제를 커버하지 못하니까요.
세상에는 이미 여러분보다 똑똑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여러분에 앞서서 무언가를 해놓았고 그걸 기록으로 남겼을 겁니다. 그걸 하나씩 찾아내면 "이건 내가 미처 고려하지 않은 측면이군." 혹은 "이 자료는 내 주장에 좋은 근거가 되겠어."라는 걸 깨닫게 되죠. 그리고 목차를 어떻게 구성할지 서서히 윤곽이 드러납니다.
요컨대, Top-down 방식이 아니라 충분한 자료 수집을 기초로 목차를 만들어 가는 Bottom-up 방식을 따라야 합니다. 그래야 쉽기도 하고요.
그렇다면 자료 수집은 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요?특별한 지름길이 있을 것 같지만, 사실 자료 수집처럼 묵묵하고 우직하게 진행해야 하는 일도 없습니다. 저의 자료 수집 방법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책을 쓰겠다고 마음 먹으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 중 하나가 인터넷 서점에 들어가서 관련 책을 검색하는 것입니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 말이 있듯이, 문학 분야가 아니라면 분명 동일하거나 비슷한 주제를 다루는 책들이 적어도 몇 권은 존재할 겁니다.
비슷한 주제를 다루는 책이라 해도 어떤 책은 여러분의 생각과 일치하는 방향으로 쓰여졌고 또 어떤 책은 여러분의 논리와 완전히 반대쪽을 지향하기도 하겠죠. 무엇이든 개의치 말고 그 책들을 장바구니에 넣으세요. 언어 장벽이 없다면 아마존에 들어가 외국 저자의 책을 구매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보다 넓고 보다 깊은 내용을 습득할 테니까요.
저는 관련된 책들을 적어도 10~20권 정도는 먼저 읽어 볼 것을 강력하게 권합니다. 여러분이 지향하는 논리를 강화하고 보강하는 데 이보다 손쉽고 시간이 적게 드는 방법이 있을까요? 그 책의 저자들은 여러분보다 책쓰기에 있어 ‘선배’입니다. 그들이 어떤 구조로 책을 구성했는지, 어디에서 사례를 구했는지 등을 파악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문장과 문단 배치를 어떻게 했는지를 참조하는 데 훌륭한 교재가 될 겁니다.
또한, 책을 읽어 가다가 ‘어, 이건 좀 아닌데…’하며 논리상의 오류나 비약을 발견하고 ‘나라면 어떻게 이 논리적 오류를 극복할까?’라며 반면교사적인 공부를 할 수도 있죠. 독서광이 돼라는 소리는 아니다. ‘자기 분야’ 선배들의 책을 제대로 정독한 적도 없으면서 책을 쓰겠다고 덤비는 것은 스파링 훈련을 한번도 해보지 않은 채 링에 오르는 얼치기 복싱선수와 마찬가지일 겁니다.
이렇게 장바구니에 담아놓은 책들을 온라인으로 바로 주문하는 것도 좋지만, 사정이 된다면 오프라인 대형서점에 가서 그 책들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는 것이 좋습니다. 웹페이지에 나온 소개글은 대단하게 되어 있지만 정작 몇 페이지 들춰보니 ‘하나마나 한’ 이야기만 나열된 책들이 좀 많습니까? 그런 책들은 ‘아, 이렇게 책을 쓰면 안 되겠구나’라는 점을 파악하는 용도로만 사용하세요.
저는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책은 책 말미에 참고문헌 목록이 충실하게 적혀 있는 책입니다. 참고문헌이 생략돼 있거나 대충 적힌 책들은 신뢰가 가지 않죠. 저자 본인만의 생각과 지식, 사례만으로 글을 쓰지는 않았을 터인데 참고문헌이 생략돼 있거나 대충 적혀 있으면 독자에게 무언가를 기만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참고문헌 목록을 잘 갖춘 책을 내가 좋아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출처를 내가 직접 찾아내 읽는 재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출처가 논문이라면 구글에서 그 논문을 초록(abstract)를 읽어보고 “이거 괜찮네” 싶으면 논문 전체를 다운로드해서 읽곤 하죠. 참고문헌이 충실하게 적힌 책들은 이렇게 자료 수집의 범위를 확대시키는 고마운 존재입니다. 책의 본문만 읽지 말고 참고문헌을 하나씩 검색해서 읽는 습관을 가지세요. 이 또한 자료 수집의 과정이니까요.
"조언 감사합니다."라는 그 분의 인사에 저는 이렇게 마무리해 드렸습니다.
"자료 수집은 '게걸스럽다' 싶을 정도로 해야 합니다. 시시때때로 해야 하고, 축적된 양이 풍성해야 하죠. 책이든, 인터넷 기사든, 아니면 누군가의 언급이든, 모두를 메모하고 스크랩해 둬야 합니다. 나중에 다 쓸일이 있으니까요. 아 참! 에버노트 같은 앱은 쓰지 마세요. 모아두기만 하고 안 볼 걸요? 메모장이면 충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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