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리더를 “일을 시키는 사람”이라고 한마디로 정의한다. 리더는 모든 일을 다 할 수 없다. 그래도 안 된다. 만약 본인이 일을 다 하겠다고 하면 그건 그냥 마이크로 매니저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직원들에게 왜 일을 시켜야 할까?. 이 질문에 많은 이들은 '성과를 내도록 하기 위해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라고 대답하곤 한다. 어떤 이는 '월급을 주니까 일을 당연히 시켜야 한다'. '일을 안 시키면 놀 테니까'라고 농담처럼 이야기한다.
조직 전체의 관점으로 보면 틀린 대답은 아니지만, 리더 자신의 입장에서 직원에게 일을 시키는 이유는 리더가 '고가치' 업무에 집중하기 위해서이다. 직원들이 리더에게 갖는 가장 큰 불만 중 하나는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다', '업무의 방향을 올바르게 알려주지 않는다', '의사결정을 제대로 내리지 못한다' 등인데, 이런 불만을 뒤집어 보면 비전 제시와 업무 방향 설정, 효과적인 의사결정 등이 직원이 리더에게 요구하는 가장 큰 덕목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직원들은 리더가 자신들의 일을 대신해 주기를 절대 기대하지 않는다. 당장은 자신들의 업무가 경감되니까 대신 일해주는 리더를 좋아할지 모르겠지만, 어디까지나 단기적이다. 리더가 직원들이 해야 할 업무에 빠져 있으면 비전 제시니 전략 수립이니 의사결정이니 하는 리더 본연의 임무를 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자기네와 같은 레벨에서 일하는 리더를 직원들이 믿고 따를 수 있을까?
리더가 고가치 업무에 집중하려면 그만큼 시간적인 여유를 가져야 하고 그렇게 하려면 직원들에게 일을 시켜야 한다. 정확히 말하면, 리더는 직원들이 담당해야 할 일이라면 '최대한' 시켜야 한다.
고가치 업무에 집중하려면 리더 자신이 고가치 업무에 얼마나 시간을 사용하고 있는지를 먼저 면밀히 파악해야 한다. 2주 동안 자신이 어떤 업무에 몇 시간을 사용하는지를 매일 기록해 보라. 그리고 다음과 같은 5점 척도로 평가해 보라.
5점: 리더 본인이 해야 할 '매우' 전략적인 업무
4점: 리더 본인이 해야 할 전략적인 업무
3점: 리더 본인이 해야 할 일상적인 업무
2점: 직원이 해야 할 전략적인 업무
1점: 직원이 해야 할 일상적이고 초보적인 업무
점수별로 2주 동안 얼마의 시간을 투여했는지 살펴보면 고가치 업무에 얼마나 집중하고 있는지, 직원들에게 얼마나 일을 잘 시키고 있는지 깨달을 수 있다. 업무 시간의 60퍼센트 이상을 1~2점 업무에 투여하고 있거나, 80퍼센트 이상을 1~3점 업무에 쏟고 있다면 분명 문제가 있는 것이다. 리더라면 적어도 업무 시간의 50퍼센트 이상을 4~5점 업무에 써야 한다. 그렇다면 직원들에게 어떤 일을 시켜야 할까? 리더가 고차원적 업무에 집중할 시간적, 정신적 여유를 가지려면 직원들은 어떤 일을 담당해야 할까?
커리어 및 비즈니스 전략가이자 <피벗PIVOT>의 저자인 제니 블레이크(Jenny Blake)는 리더가 직원들에게 위임해야 할 일을 '6개의 T'로 제안한다. 그녀는 '누구(who)에게 어떻게(how) 일을 시킬까?'라는 질문에 답하기 전에 '어떤(what) 일을 시킬까?'를 먼저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녀의 제안을 간략하게 살펴보자.
1. 사소한(Tiny) 업무
중요하지는 않지만 업무 수행을 위해 해야 하는 일(회의 참석자 파악, 교통편 예약, 기타 관행적 업무 등)은 실제로는 별로 시간이 들지 않더라도 합쳐 놓으면 전략적인 업무를 수행하기 위한 시간을 잡아먹을 뿐만 아니라
또한 집중력을 분산시키고 의지력을 감소시킨다. 물론 자신이 충분히 처리할 시간적 여유가 있을 때, 직원들이 중요하고 어려운 업무를 담당하고 있을 때는 사소한 업무이라 해도 리더가 직접 수행해도 된다.
2. 지루한(Tedious) 업무
단순반복적이고 아주 간단한 업무는 그다지 머리를 써도 되지 않는 일이라 편하기도 하지만, 금세 지루함을 유발시킬 뿐더러 리더가 해야 할 업무라 할 수 없다. 가끔 기분전환을 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면, 이런 업무는 담당자를 정해 일임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3. 시간을 많이 잡아먹는(Time-consuming) 업무
이런 유형의 업무들이 시간을 많이 필요로 하는 이유는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리더가 이런 업무를 처음부터 끝까지 수행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블레이크는 이런 업무들이 80퍼센트 정도 완료되었을 때 리더가 개입하여 리뷰하고 피드백하며 다음 단계를 위한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한다. 이런 조언의 이유는 그래야 직원들이 이런 유형의 업무를 수행하며 스킬을 함양할 수 있고 노하우를 직접 체득할 수 있는 효과가 있다는 것으로 보인다.
4. 가르칠 목적의(Teachable) 업무
리더의 입장에서 직원을 '가르칠 수 있는' 업무는 직원의 관점에서는 곧 '배울 수 있는' 업무가 된다. 자신에게 아주 익숙한 업무를 리더가 계속 수행한다는 것은 스킬과 노하우 전수를 게을리한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직원이 실행을 통해 배워야 할 업무들은 각자의 역량 및 스킬 수준에 맞춰 적절하게 배분할 필요가 있다. 물론, 일의 수행과정에서 리더가 적절하게 피드백해야 가르치는 효과를 배가할 수 있다.
5. 형편없을 정도로 못하는(Terrible at) 업무
프레젠테이션 슬라이드 디자인, IT 스킬이 필요한 업무 등 리더 본인이 끔찍할 정도로 잘하지 못하는 업무나 직원들이 했을 때 더 나은 품질이 나오는 업무는 직원에게 일임하는 것이 좋다고 블레이크는 말한다. 물론, 직원들에 해줄 것을 기대하고 자기가 못하는 업무를 모두 떠넘기는 경우는 지양해야 하고, 리더 자신도 어느 정도 스킬을 갖추려는 노력이 필요하겠지만, 그럼에도 직원들이 더 잘하는 업무는 조직의 성과 차원에서 직원들이 수행하는 것이 옳다.
6. 분초를 다투는(Time Sensitive) 업무
아주 급하게 처리해야 하는데 리더 혼자 수행하기가 곤란한 경우에는 설령 그것이 리더 자신에게 주어진 책임이라 해도 적절하게 직원들의 도움을 받을 필요가 있다. 여러 가지 일들이 리더에게 한꺼번에 떨어져 마치 저글링처럼 어떤 업무를 먼저 처리해야 하는지 '정신이 없을 때' 혹은 그 모든 업무들을 동시에 수행할 것을 요구 받을 때, 직원들이 상대적으로 중요하지 않은(리더의 위치에서) 업무를 담당하고, 리더는 상대적으로 가치가 높은(리더 본연의 입장에서) 업무를 동시에 처리해야 한다.
과거 한 달 동안 어떤 업무를 리더 본인이 직접 수행했고 어떤 업무를 직원에게 위임했는지 살펴보라. 위의 6가지 T에 해당하는 일들을 본인이 대부분(70퍼센트 이상) 직접 수행했다면 여러 가지 이유로 리더의 업무위임에 분명 문제가 있다는 뜻이고 리더가 해야 할 고차원적 업무를 소홀히 한다는 의미이다.
오해하지 않기를 바란다. 직원들이 무조건 '가치가 낮은 일'을 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직원들은 자신의 위치에서 가능한 한 가치가 높은 일을 해야 하고, 리더 역시 저가치한 일은 되도록 하지 않고 고차원적인 업무를 수행하는 것이 각자의 역할에 올바른 업무 분담임을 기억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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