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에서는 며칠 전에 직원에게 시켰던(위임했던) 일을 취소하거나 다른 방향으로 시켜야 하는 경우가 왕왕 발생한다. 경영진으로부터 다른 지시가 내려왔거나, 경쟁사가 예상치 못한 전략으로 치고 나왔거나, 아니면 법적 이슈나 일본의 무역제재와 같은 돌발변수가 터져 그쪽부터 대응해야 하는 급박한 경우 등 그 이유는 아주 다양하다. 혹은, 일을 시킨 리더 본인의 생각이 다르게 바뀌거나 관심이 바뀌었기 때문인 경우도 흔하다.

이렇게 내외부 환경 혹은 리더 본인의 생각이 바뀌면 이미 지시했던 일을 폐기하고 다른 방향으로 일을 시켜야 하는데, 이때 리더가 어떤 식으로 일을 '번복'하는지가 직원의 일할 동기를 유지한다는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포인트이다. 일을 번복하기 위해(일을 폐기 혹은 변경하기 위해) 직원을 만나기 전에 리더가 다짐해야 할 것은 '직원 입장에서 생각하기'이다. 다시 말해, 일이 번복되었을 때 직원은 어떤 감정이 들지 상상하고 직원의 감정을 헤아리고 도닥이려는 태도를 취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지시했던 일은 이제 그만해."라며 일을 번복하는 리더의 말을 들을 때 직원은 어떤 감정이 들까? 가장 먼저 발생하는 감정은 '그동안 '쓸데없는' 일을 했구나'라는 것이다. 자료를 수집하고, 유관부서나 기관에게 자문을 구하고, 보고서의 틀을 세우기 위해 머리를 쥐어짜고, 의자에서 엉덩이를 떼지 않은 채 보고서 작성에 열을 올리던 모든 시간이 무의미하게 여겨지기 시작한다. 물론 '월급 받고 일하는' 직장인이니 내가 했던 일이 무의미한 것으로 변했든 그렇지 않든 또다른 일을 맡아서 하면 그만이라고 '쿨'하게 넘어갈 수도 있지만, 그런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대부분의 직원들은 자신의 노력으로 만들어진 '작품'이 의미없이 폐기되는 것을 보며 급격한 동기 저하의 위기에 직면한다. 

 



이렇게 '일의 의미'에 대해 회의감을 경험한 직원들의 생산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행동경제학자 댄 애리얼리(Dan Ariely)는 '일의 의미'가 생산성과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실험을 진행했다. 그는 실험 참가자인 하버드 대학 학부생들에게 바이오니클(Bionicle)이라 불리는 레고 블럭을 조립하도록 하고 처음 완성하면 2달러를 주고 그 다음 회부터는 매회 11센트씩 깎아서 지급하겠다는 말을 전했다. 그는 학생들을 몰래 두 그룹으로 나눴는데, '의미 그룹'의 학생들은 바이오니클 하나를 완성하면 책상 위에 올려 놓을 수 있었고 실험진행자로부터 새로운 세트를 건네 받았다. 이 학생들은 책상 위에 놓인 노동의 결과를 확인하면서 의미를 가질 수 있었다. 반면 '시지푸스 그룹'에 속한 학생들은 말 그대로 시지푸스처럼 무의미한 반복 작업으로 느껴지는 상황에 처해야 했다. 바이오니클을 만들자마자 실험진행자가 냉정하게 그것을 바로 부수어버리고 다시 만들라고 했으니 말이다.

실험 결과, 의미 그룹의 학생들은 평균 10.6개의 바이오니클을 완성했지만, 시지푸스 그룹의 학생들은 7.2개 밖에 완성하지 못했다. 또한, 의미 그룹은 수고료가 1.01달러 이하가 될 때 그만하겠다고 말한 반면, 시지푸스 그룹은 1.40달러일 때 두 손을 들었다. 일의 의미를 느끼지 못하니 그만큼 빨리 포기를 선언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리더는 일의 번복으로 인한 직원의 동기 저하를 막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첫째, 일을 번복하게 된 배경과 이유를 충분히 설명해야 한다. 가능한 한 육하원칙을 꼼꼼하게 적용하여 직원이 이해할 때까지 설명을 이어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직원을 만나기 전에 머리 속으로 설명의 흐름을 생각하고 간단하게 메모를 하면 중구난방하지 않고 명확하게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이때 지켜야 할 원칙은 '리더 본인'의 입장에서 이야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위에서 그렇게 하래.", "사장님이 하라니까 어쩔 수 없지, 뭐", "까라면 까야지, 별 수 있어?"라는 식으로 남의 탓을 하면서 '메신저'처럼 굴면 곤란하다. 미국 드라마 <밴드 오브 브라더스(Band of Brothers)>의 주인공 리처드 윈터스가 훌륭한 리더라는 점은 그가 중대장 소블가 부적절한 지시를 내려도 소대원들에게는 소블을 탓하며 책임을 회피하려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는 사실에서 엿볼 수 있다.

 

물론 '위'에서 일을 번복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할지라도 윗사람이 일을 번복하게 된 이유를 파악한 다음(그러려면 리더는 윗사람에게 이유를 '용감'하게 물어야 한다), 자신을 '주어'로 하여 배경과 이유를 설명해야 한다. "위에서 그렇게 하래"라고 말하는 리더를 보며 직원들은 '그러면 당신의 생각은 무엇인데?'라며 반감을 가지며 리더를 신뢰하지 않게 된다. 윗사람의 지시로 일을 번복하게 됐다는 말을 전해야 할지라도 최소한 본인의 생각을 더해야 한다. 

경우에 따라 직원이 일을 번복해야 하는 이유를 리더와 함께 알고 있다면, 배경과 이유 설명을 간략히 하거나 생략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럴 경우라도 직원에게 "이해가 안 되는 것이 있으면 개의치 말고 물어보라"고 질문을 던져야 한다. 똑같은 정보라도 각자의 입장에서 다르게 해석하고 다르게 수용하는 게 인간의 심리이니까. 

둘째, 미안한 마음을 전달해야 한다. 배경과 이유를 충분히 설명한다고 해서 직원의 가라앉은 마음을 끌어올리지는 못한다. 짧게 말해도 된다. 리더 자신이 충분히 고려하여 내린 결정이라는 것을 전달하고 직원의 감정을 헤아리고 있음을 느끼게 할 수 있다면 짧은 말과 함께 잠깐의 침묵이 효과적일 수 있다.

셋째, 지금까지 했던 업무의 의미를 인식시켜 주어야 한다. 이것이 미안함을 진정으로 표할 수 있는 방법이다. 애리얼리의 실험에서 봤듯이 고작 레고 블럭도 만들자마자 폐기 당하면 급격히 동기가 떨어지는데, 몇날 며칠 고생하여 만들어낸 보고서나 자료가 이제는 아주 소용이 없는 것으로 치부된다면 누가 일할 맛이 나겠는가? 다른 업무를 할 때도 '혹시 이 일도 없던 일이 되어 몽땅 버려야 하는 것 아냐?'라는 의심을 하기 시작하면 일에 몰입하기가 어렵고 아웃풋 역시 그리 뛰어나지 못할 것이다. 

 



그렇기에 리더는 지금까지 했던 작업의 내용이 충분히 의미 있다고 말해야 하고 나중에 유사한 일이 생기면 그때 사용할 수 있다고 직원을 안심시켜야 한다. 예를 들어, 일본의 무역제재로 일본 협력업체와의 제휴방안 논의를 중단해야 한다면 "나중에 일본과 관계가 개선되면 그때 자네가 마련한 방안이 아주 큰 도움이 될 거야. 조만간 그렇게 될 거라고 생각해."라고 말할 필요가 있다. 또한 팀에서 관리하는 '자료 라이브러리'가 있다면 그곳에 적절한 네이밍으로 저장해 달라고 한다든지, 자신에게 이메일로 지금까지의 작업 결과를 보내 달라든지, 아니면 팀 회의 때 간략한 내용을 공유케 한다든지 해야 한다. 그저 "그거 이제 그만하고 다른 일을 해"라고 말하며 지금까지의 고생을 인정하지 않거나 "지금까지 쓸데없는 일을 하느라 수고 많았네"라고 '쓸데없음'을 리더가 앞장서서 꼬리표를 달아서는 절대 안 된다. 

넷째, 동일한 업무를 다른 방향으로 다시 해야 할 경우에는 일정을 새로 설정해야 한다. 다시 말해, 이미 시켰던 일을 폐기하는 경우가 아니라, 다른 방향으로 해야 할 경우라면 아웃풋이 나오는 마감일을 새로 정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때, 리더가 먼저 마감일을 제시하지 말고 직원의 의견을 물어보고 최대한 직원에게 맞춰 주려는 태도가 요구된다. "이렇게 바꿔서 하려면 10일이 더 필요하겠는데요?"라고 한다면, 리더 자신에게 주어진 재량권을 발휘해 직원의 의견을 받아줄 필요가 있다. 

그런데 많은 리더들이 "왜 그렇게 시간이 많이 필요해? 주말이 있잖아", "야근을 좀 해야겠어"라며 마감일을 원래대로 고수할 것을 직원에게 강요한다. 남쪽으로 열심히 가던 중에 북쪽으로 방향을 돌려서 가야 한다면 그만큼 시간이 더 드는 게 당연함에도 불구하고(원점까지 와야 하고 또 원하는 만큼 북쪽으로 가야하니까) 직원의 'work & life balance'를 깨 가면서까지 마감 준수를 강조한다. 물론 상황이 급박하면 마감일 준수가 필수적일 수 있다. 이럴 때는 직원에게 최대한 양해를 구하고 리더가 지원할 수 있는 것을 적극적으로 제시해야 한다. 정말로 급한 일이라면 여유가 있는 동료직원들에게 협력하여 일을 진행할 것을 지시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직원의 양해를 최대한 구하고 직원의 뜻을 존중하겠다는 태도를 보이는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이 산이 아닌가봐'라며 일을 번복할 때 보통의 리더는 어떻게서든 직원에게 책임 추궁을 받지 않으려는 쪽으로 행동한다. 일을 번복하면 직원은 기분이 나쁠 수밖에 없다. 그 분노와 짜증이 리더에게 향하기 마련이다. 직원에게 욕을 먹지 않고 '착한' 리더로, '존경 받는' 리더로 남고자 하여 일의 번복을 남의 탓으로 돌리면서 책임을 피하려 한다면 그건 현명하기는커녕 무능하다는 뜻이다.

일의 번복된 배경과 이유를 충분히 설명하고, 미안함의 진정을 느끼게 하며, 지금껏 수행한 일의 의미를 소중히 하고, 직원의 의견을 최대한 반영하여 일정을 새로 설정하는 것, 이것을 기억하고 실행한다면, '병가지상사'처럼 매일 일어나는 일의 번복 속에서 직원들의 동기 저하를 최대한 막고 일의 성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알지만 말고, 오늘부터 바로 실천하기 바란다.


*참고논문
Ariely, D., Kamenica, E., & Prelec, D. (2008). 

Man's search for meaning: The case of Legos. 

Journal of Economic Behavior & Organization, 

67(3-4), 671-6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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