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의 의미와 전략가의 역할   

2015. 2. 3.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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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두머리 수컷인 이에론은 젊은 수컷인 루이트가 자신의 권위에 도전을 걸어오자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무리의 거의 모든 암컷을 독차지하는 즐거움을 누려왔던 이에론은 루이트가 자신이 보는 앞에서 암컷과 짝짓기를 하자 큰 충격을 받았다. 게다가 루이트가 또 다른 수컷인 니키와 연합을 형성하고 암컷들이 이 신진세력에 줄을 대기 시작하자 이에론은 선택의 갈림길에 설 수밖에 없었다. ‘루이트와 일전을 벌여야 하는가, 아니면 순순히 물러나야 하는가? 어떻게 하는 것이 나에게 최선인가?’ 고민을 거듭하던 이에론은 루이트에게 우두머리 자리를 내주고 니키와 손을 잡는 전략을 구사했다. 그래야 예전에 누리던 특권들 중에서 몇 가지라도 누릴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관찰 연구를 주도했던 동물행동학자 프란스 드 발은 집단 내에서 가장 힘센 수컷이 권력을 누리는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빠른 자라고 해서 경주에 이기는 것이 아니고, 강한 자라고 해서 전투에서 이기는 것은 아니다’는 성경의 구절처럼 밀이다. 그의 연구는 정치의 뿌리가 인간 이전에 이미 형성되어 있다는 점, 침팬지들도 자기가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로 나아가기 위해 계획을 수립할 능력이 존재한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준다. 침팬지들 사이에 일어나는 동맹의 형성과 권력 투쟁의 증거만 봐도 그렇지 않은가? 결론적으로 말해 전략은 인간만의 전유물이 아니며 그 기원은 인간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생명의 진화 과정에서 전략이 등장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진화론자들은 희소하고 필수적인 자원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머리를 쓰는’ 전략이 필수적이라고 말한다. 유인원은 상대편을 만날 때 수적 규모와 수컷의 구성비율로 쌍방 간의 물리적인 힘의 균형을 계산하는 데 아주 능하다. 자기들이 약하면 도망가고, 자신들이 월등하면 싸움을 걸기 위해서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적보다 더 많이 더 빨리 생각할 줄 하는 능력이었고, 이러한 생존 투쟁의 자연스러운 결과가 ‘전략을 수립할 줄 아는 능력’으로 얻어진 것이다.


전략의 의미를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지나치게 남발되는 바람에 오히려 정의 내리기 어려운 단어로 전략이란 단어만한 게 또 있을까? 전략(strategy)의 어원은 ‘사기를 높이기 위한 건강한 정신’을 의미하는 그리스어 스트라테제마타(strategemata)에서 왔다. 로마의 원로원 의원이었던 프론티누스는 “미래에 대한 통찰, 아군의 유리한 점, 계획과 결단 등과 관련해서 사령관이 성취하는 모든 것을 가리킨다”고 말했다. 통상적으로 전략은 목적과 방법 사이에 일정한 균형을 유지하는 것, 혹은 목표를 달성하는 데 필요한 자원과 수단을 파악하는 것이라는 말로 정의되지만 왠지 쉽게 와닿지 않는다. 전략은 단기적이고 사소한 관점이 아닌, 장기적이고 본질적인 내용을 바라보는 것, 증상보다는 원인을 밝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전략을 학술적 관점이 아닌 실용적 관점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전략은 원래 ‘전쟁의 기술’을 가리키는 군사학 용어이지만 요즘에는 기업들이 더 많이 사용한다. 나의 경험으로 볼 때, 사업 전략, 마케팅 전략, 영업 전략 등과 같이 기업 조직에서 전략이라는 단어가 한번 이상 언급되지 않고 넘어가는 날은 없다. 1960년대 이전에 기업들이 전략이란 말을 쓴 적은 거의 없었다. 1970년대가 되어 경쟁사와의 각축을 ‘전쟁’으로 묘사하면서 ‘전략은 기업의 과제’이라는 이미지가 생겨났다. 이런 시각은 하버드대 경영학 교수 마이클 포터가 <경쟁론>을 펴내면서 굳어졌다. 어쨌든 국가나 대기업과 같이 사활을 거는 의사결정을 내릴 때만 전략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일상적인 문제에서도 전략적 사고가 유용하다. 전략은 ‘힘을 창조하는 기술’이라는 관점으로 보면 인간의 활동 중에서 전략이 필요 없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춘추전국시대가 낳은 위대한 병법서 <손자병법>의 손자는 전략의 의미를 좀더 실용적으로 접근했다. 그는 “싸우지 않고 이기는 방법이 백전백승보다 더 낫다”, “적이 다른 세력과 연합하는 것을 막으라”는 말을 함으로써 전략의 핵심은 ‘속임수’에 있음을 분명히 한다. 손자는 적을 잘 속여 싸우지 않고 이기려면 ‘선견지명’이 있어야 하고 적의 작전계획과 특징, 장수들의 성격 등과 관련한 정보에 달통할수록 선견지명이 나올 수 있다고 말한다. 손자병법의 유명한 문구 ‘지피지기 백전불태(知彼知己百戰不殆)’는 훌륭한 전략의 기반이 정보에 있음을 한마디로 표현한다. 이는 경영전략을 고민하는 경영자들에게 여전히 유효한 교훈이다.




동양에 손자가 있다면 서양에는 마키아벨리가 있다. 그는 아군보다 잠재적으로 더욱 강한 적의 힘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가의 문제에서 손자의 생각과 궤를 같이 한다. 그는 저서 <전술론>에서 가능한 한 모든 전투력을 총동원해야 한다고 역설했는데, 적보다 더 많은 정보를 가지려면 속임수와 첩자의 활용이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가능하면 싸우지 않고 이겨야 한다는 말도 손자의 관점과 일치한다. 하지만 그가 손자와 다른 점은 외부의 적보다는 ‘내부의 잠재적인 적’에 관하여 더 많은 관심을 보였다는 것이다. 그는 전략의 성공에는 내부 규율이 매우 중요하고 권력자가 규율에 소홀할 때 뒤통수를 맞게 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래서인지 그는 대표적인 저서인 <군주론>에서 겉으로는 비난 받을 짓을 하지 않을 것처럼 행동하면서 은밀하게 바라는 ‘모든 짓’을 바로 실행하라고 서슴없이 주문한다.


많은 이들이 ‘계획’과 ‘전략’을 동일한 의미로 간주한다. 하지만 이 두 단어를 분명하게 구분해야 한다. 계획은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절차를 상세하게 제안하는 과정을 뜻한다. 그래서 확신을 가지고 한 단계에서 다음 단계로 나아가고 모든 일이 순조롭게 이루어질 때 ‘계획대로’란 말을 쓰는 것이다. 하지만 모든 계획이 그러한가? 생각치도 못했던 돌발변수가 나타나기 마련이지 않은가? 바람이 적쪽으로 부는 것을 보고 화공을 펼쳤더니 갑작스럽게 비가 내리거나 바람이 방향이 바뀌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위대한 군사전략가인 클라우제비츠는 어떤 전쟁계획이든 애초에 의도대로 수행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바로 불확실성 때문이다. 따라서 전략은 환경이나 타인(혹은 적)이 우리가 세운 전략을 망가뜨리려 할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관한 것이다. 설정한 목표대로 질서정연하게 나아가는 계획은 현실에서 거의 없다. 전략은 수시로 바뀌면서 진화할 것을 전제로 한다. “이것이 우리의 전략이니 고수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전략가는 전략의 의미를 오해하는 셈이다. 유비무환이란 여러 시나리오를 미리 구상하고 각 시나리오에 적극적으로 대비하는 것(시나리오 플래닝)임을 기억해야 한다.


전쟁에서 보여준 나폴레옹의 천재성은 독특한 전략에 있다기보다 상황에 따라 적절하게 해석하여 응용하고 대담하게 실천했다는 데 있었다. 그는 적의 전선에서 약점이 노출되는 지점을 발견하면 그곳에 병력을 집중하여 가차없이 돌파하고, 적을 측면이나 후방에서 공격하는 전술을 즐겨 구사했다. 하지만 그는 무모하지 않았다. 연전연승의 비결은 돌파의 결정적인 시점을 기다리고 또 기다린 신중함에 있었다. 그러던 그가 러시아를 굴복시키지 못하고 몰락한 까닭은 그런 집중력을 잃어버렸고 상황 변화에도 불구하고 전술의 변화를 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략은 ‘부단히 바뀌는 것’이라는 점을 망각할 때 위기가 찾아온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




그렇다면 전략가의 역할은 무엇인가? 전략가는 어떤 역량을 갖춰야 하는가? 군사 이론가 콜린 그레이는 모름지기 전략가라면 ‘어디에 노력을 기울여야 가장 큰 성과를 거둘지 파악하기 위해 수많은 변수가 복잡하게 상호작용하는 시스템을 하나의 온전한 전체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각각의 부분들과 그것들 사이의 관계, 과거와 현재뿐만 아니라 미래에 미칠 수 있는 영향을 파악해야 하고, ‘큰 그림’을 보면서 전쟁과 관련된 모든 것에 익숙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러한 사람이 과연 현실에 존재할까? 앞서 언급했듯이, 전략의 실행에 불확실성은 반드시 제기되기 마련이라서 설령 사전에 모든 것을 꿰뚫어 봤다 하더라도 상황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급변한다. 그러므로 모든 분야에 완벽성을 기함으로써 훌륭한 전략가가 되려는 시도는 무모할 뿐더러 가능하지도 않다. 위대한 전략가들은 갈등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 무엇인지, 그 특징들이 어떻게 영향 받는지 파악하는 능력이 탁월하다, 그들의 재능은 다른 사람들을 ‘행동으로 설득하는 능력’에 있다. 조직의 리더들은 전략의 중요성을 실감하고 역사적인 전략가들의 고민으로부터 혜안을 얻기를 바란다.



(*참고도서)

<전략의 역사 1, 2>, 로렌스 프리드먼 저, 이경식 역, 비즈니스북스,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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