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기업들이 경영 상의 곤경을 타개하기 위한 일환으로 직원 수를 대폭 감축하는, 소위 ‘다운사이징’을 실시하곤 합니다. 이런 다운사이징은 주로 미국의 기업들이 그러하듯 해고 통보로 이루어지기도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주로 희망퇴직이나 권고사직의 방식으로 실시되곤 하죠. 얼마 전, 한국씨티은행에서 희망퇴직자를 신청 받으면서 5년치 임금에 해당하는 금액을 위로금으로 지급하겠다고 해서 화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KT는 최근 희망퇴직을 거부하는 직원들에게 오지로 발령하는 등 보복성 인사를 실시했다는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었죠.
오늘 이야기하려고 하는 주제는 이처럼 ‘인력 감축이 이뤄지고 난 후에 관리자들이 구조조정의 칼날 아래 ‘살아남은’ 직원들을 어떻게 대하느냐’입니다. 아마도 많은 경영자들은 뒤숭숭한 분위기를 일소하고 직원들이 업무에 몰입하도록 만들기 위해 소위 ‘유화책’ 내지는 ‘융합책’을 쓰며 직원들의 마음을 달래려고 노력할 겁니다. 예컨대 ‘직원 단합 대회’와 같은 이벤트를 벌이거나 ‘일 잘한 직원에게 더 큰 보상을’ 약속하기도 하죠. 그러나 리스본의 뉴 유니버시티의 페드로 네베스(Pedro Neves)는 겉으로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네베스는 다운사이징 이후 직원들은 관리자들로부터 알게 모르게 ‘학대’를 받을 가능성이 높다는 증거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네베스는 인간이 좌절감을 경험할 때 자신에게 좌절을 안겨준 대상이 아니라 자신보다 약한 대상에게 화풀이를 하는 습성이 기업 조직에서도 고스란히 나타난다고 주장합니다. 누군가 나를 ‘열 받게’ 만들어도 그가 나보다 힘이 센 사람이라면 옆에 가만히 있는 ‘개의 배를 걷어차려는’ 것과 같다고 말이죠. 인력 감축 후에 관리자들은 여러 직원들 중에서 특히 무능력하고, 힘이 약하고 순종적이며, 자존감이 낮고, 도와줄 동료들이 적은 직원에게 ‘개의 배를 걷어차는’ 행동이 집중된다고 네베스는 말합니다.
그는 금융, 건설, 의료 등의 산업에서 활동하는 포루투갈 기업들 12개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임으로써 이와 같은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조사 대상 기업 중 네 곳은 2년 전에 인력 감축을 실시했는데, 순종적인 직원일수록 상사로부터 비난 받고 괴롭힘을 당할 가능성이 높았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순종적인 직원들은 인력 감축 후에 다른 직원에 비해 성과가 더 형편없었고 직원으로서 지켜야 할 행동에도 덜 관여하는 것으로 나타났죠.
왜 그럴까요? 인력 감축 후 회사 분위기가 뒤숭숭하고 불안해지면 위험에 대한 개인들의 민감도가 커지기 마련이라서 어떤 사람이 부당한 공격을 당해도 선뜻 나서서 도와주기가 어렵습니다. 네베스는 이런 상황이 누군가를 학대하거나 괴롭혀도 반격 당하지 않을 거라는 자신감을 높여준다고 말합니다. 관리자들은 자신들의 억울함, 좌절감, 분개를 힘이 약한 직원들에게 화풀이함으로써 조직 분위기를 망가뜨린다는 것이죠.
물론 ‘순종적인 직원일수록 관리자로부터 비판 받는다’가 아니라 ‘관리자의 비판 때문에 직원들이 순종적이 된다’라고 볼 수도 있겠죠. 또한 ‘관리자의 학대 때문에 성과가 저조해지는 것이 아니라 ‘성과가 나빠서 관리자로부터 야단을 맞는다’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네베스는 그렇지 않다는 결과를 후속 분석을 통해 제시하면서 '상황이 안 좋아지면, 관리자들은 순종적인 직원에게 화풀이 행동을 집중한다'는 점을 분명히 합니다.
인력 감축은 가능하면 해서는 안 되지만 회생을 위해 어쩔 수없이 해야 한다면, 그런 충격적인 조치 후에 직원들의 마음을 달래려는 노력이 좌절감을 엉뚱한 곳에 화풀이하려는 인간의 심리 때문에 허사가 될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겠습니다. 관리자들의 억울함과 화를 해소하도록 ‘명상’ 프로그램을 운영한다든지, 직원들이 부당한 학대나 비난을 받을 경우를 대비하여 CEO 직통의 ‘핫라인’을 구축한다든지 등의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인력 감축, 그 후가 더 중요합니다.
(*참고논문)
Neves, P. (2014). Taking it out on survivors: Submissive employees, downsizing, and abusive supervision. Journal of Occupational and Organizational Psychology DOI: 10.1111/joop.120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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