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촉촉히 내리는 날에 그의 '비처럼 음악처럼'을 들으며 진한 커피를 마시면 어느 새 내 마음은 20대의 가난했던 시절로 돌아가곤 한다. 눈이 소복히 쌓인 풍경을 보며 그의 '한국사람'이란 하모니카 연주곡을 들으면 눈보라가 치는 황량한 벌판에 서 있는 듯이 가슴 속으로 냉랭한 바람 한줄기가 지나간다.
그는 내가 군대에 있을 때 죽었다. 그가 죽자 '내 사랑 내 곁에'란 노래가 대히트를 했다. 부끄럽지만 나는 군대에서 노래 잘 하는 축에 속하는 병졸이었다. 휴식 시간에 고참들은 심심풀이 삼아 나를 앞에 세우고 '노래 일발 장전'을 명령했다. 그때마다 꼭 김현식의 그 노래를 시키곤 했다. 병영 내에서 그 노래는 꽤나 유행이었다.
내 목소리는 김현식과 결코 비슷하지 않다. 김현식의 거친 음성의 테너라면 나는 음이 높은 노래가 부담스러운 바리톤의 미성을 지녔다. 하지만 고참들은 왠지 미성으로 부르는 내 노래를 듣기 좋다고 말하곤 했다. 나는 달콤한 휴식시간을 반납하고 다른 병사들의 망중한을 위해 노래를 부르는 게 싫었다. 김현식이란 가수를 좋아하긴 했지만, 그때는 그가 밉기도 했다.
세월이 지나 다시 그의 노래를 편안한 마음으로 들어 본다. 사람이 떠나고 노래가 남았다. 노래가 남고 나의 옛날이 저 멀리 사라졌다. '내 사랑 내 곁에'를 따라 불러 보며 나는 별이 한가득 쏟아지던 포천의 하늘을 떠올린다. 언제쯤 지긋지긋한 이곳을 나가게 될까, 별을 헤아리는 마음으로 하루를 세고 또 하루를 세던 그때 그날들이 왜 그리워지는지 모르겠다.
그때보다 비록 세련되고 고급스러워진 일상이지만 그럴수록 굳은 살이 배기는 생활 속에서 때때로 허허로움을 느낄 수밖에 없는 이유는 내가 조금은 산다는 걸 알게 됐기 때문일까? 내가 뒤늦게 철이 들어가기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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