왠지 모르게 자신에 대해 의심이 들 때, 그리고 그런 의심이 자신감을 감소시키고 우울한 감정이나 초조함을 불러 일으킬 때, 사람들은 종종 그런 의심이 여러 면으로 좋을 것 없다고 느끼면서도 떨쳐버리지 못하곤 합니다. 사물에 대해 어느 정도의 의심은 사고가 건강하다는 뜻이지만, 정도가 심하면 결심한 바를 바로 실행해야 하는데도 꾸물거리거나 방어적이 되고 맙니다. 자신이 생각해도 '자기 의심'의 정도가 지나쳐서 일을 그르치고 있다는 느낌이 들면, 비록 일시적으로만 효과가 있다고 하지만 애런 위치만(Aaron L. Wichman)과 동료들이 제시하는 '의심을 의심하라'는 방법을 쓰면 도움이 될 겁니다.


위치만은 실험 참가자들이 평소에 느끼는 불확실함의 정도(의심의 한 종류)를 "나쁜 일이 생기면 그 이유를 모른다"와 같은 14개의 항목으로 측정했습니다. '자기 의심'에 대한 기질적 특성을 알아보기 위해서였죠. 그런 다음 위치만은 참가자들에게 단어를 재배열하거나 쓸데없는 단어를 제거해서 문장을 의미 있게 만드는 과제를 수행하도록 했습니다. 참가자들 중 절반은 불확실함과 관련된 문장들로 게임을 했고, 나머지 참가자들은 불확실함과 관련 없는 문장들로 과제를 수행했죠. 





게임이 끝난 후에 참가자들은 도보 경주의 기록 향상에 관한 이야기를 읽고나서 성적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이는 8개의 원인에 대해 '확실히 이것이 원인이다'의 정도를 9점 척도로 측정하도록 요청 받았습니다. 그랬더니 평소 불확실함의 정도가 높은 참가자들은 불확실함과 관련된 문장으로 게임을 하고 난 후에 도보 경주의 성적 향상 요인에 대한 불확실함을 낮게 평가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사물을 의심의 눈길로 보는 사람들이 의심의 상황으로 자신도 모르게 프라이밍(priming)되면 오히려 의심이 줄어든다는 결과였습니다. 간단히 말해 의심을 의심하면 의심이 줄어든다는 뜻이죠.


위치만은 이 점에 착안하여 안구(eyeball)의 운동이 의심의 정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아보기로 했습니다. 먼저 위치만은 참가자들 중 절반에게 과거에 불확실하고 의심스러운 상황에 빠졌던 경험을 글로 쓰도록 했고, 나머지 절반에게는 확실하고 자신감에 찼던 이야기를 쓰도록 하여 참가자들을 프라이밍했습니다. 


그런 다음 참가자들은 2분 동안 컴퓨터 모니터 상에서 좌우로 혹은 상하로 움직으로 공을 따라 안구를 움직이는 과업을 수행했습니다. 알다시피 안구의 좌우 운동은 고개를 가로젓는 동작과 마찬가지로 '거부'의 감정을 유발하고, 안구의 상하 운동은 '승락'이나 '인정'으로 인식됩니다. 안구운동을 끝낸 참가자들은 '도날드'라는 가상의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읽고 난 후에 '말다툼을 한다', '기부를 한다', '자신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한다'와 같이 도날드의 특성이라고 제시된 문장에 대해 '얼마나 그럴 것 같은지' 9점 척도로 평가함으로써 불확실함을 어떻게 인식하는지 측정 받았습니다.


결과가 어떻게 나왔을까요? 불확실했던 이야기를 쓴 참가자들은 좌우로 안구를 운동시킨 후에 불확실함을 낮게 인식했습니다. 반대로 안구를 상하로 운동시킨 후에는 불확실함을 생다적으로 높게 느꼈죠. 확실하고 자신에 찼던 과거 경험을 쓴 참가자들은 안구를 상하로 움직였을 때보다 좌우로 움직였을 때 불확실함을 높게 인식했습니다. 불확실하고 혼란스럽고 의심스러운 상황에 빠졌을 때 그와는 다른 대상에 대해 의식적으로 의심의 수준을 높이면 오히려 의심스러운 상황에서 조금은 헤어나온다는 점을 이 결과로 알 수 있습니다.


A가 의심될 때 B를 의심하면, (비록 일시적이겠지만) 전체적인 의심의 정도가 떨어진다는 것에서 보듯이 의심은 '더하기'가 아니라 '곱하기'인 모양입니다. 마치 음수 곱하기 음수는 양수인 것처럼 말입니다. 


의심에 빠져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있다면 그 의심을 의심해 보는 게 도움이 된다는 게 이 실험의 시사점입니다. 개인적으로 항상 불안감을 느낄 때, 의사결정의 상황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때, 의심을 의심하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하는 '메타-인식적'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이죠. 의심에 빠진 자기 자신을 멀찌감치 떨어뜨려 놓고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과정이 개인의 정신적인 건강이나 조직의 올바른 의사결정에 긍정적인 효과가 있을 겁니다. 한번 시도해 보기 바랍니다.



(*참고논문)

Aaron L. Wichman, Pablo Briñol, Richard E. Petty, Derek D. Rucker, Zakary L. Tormala, Gifford Weary(2010), Doubting one’s doubt: A formula for confidence?, Journal of Experimental Social Psychology Vol. 46(2)


Comments

  1. 알 수 없는 사용자 2012.07.21 05:02

    의심이라는 마음의 문제와 안구운동과의 연관성은 이해할 수 없지만, 전체적인 글은 의심을 없애려면 내가 의심하는 그 모양새를 의심하면 효과가 있다...라고 이해했습니다. 내가 의심하는 건 확고한 근거없이 그저 마음이 불안하기 때문이니 크게 신경쓸거 없다... 이런 생각을 가지면 된다는 뜻일까요? 저는 그렇게 이해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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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avicon of https://infuture.kr BlogIcon 유정식 2012.08.24 17:27 신고

      의심하는 자신을 제3자적 관점으로 보면 의심의 근거를 재고하게 된다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

여러 가지로 후대의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리처드 파인만은 배움의 자세에 있어서도 우리에게 신선한 일침을 가한다. 그는 모든 걸 처음부터 자신이 스스로 증명하면서 배웠다. 위대한 학자들이 이미 밝혀 놓은 것이라도 그는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그의 아버지가 “유명한 사람이 말했다는 이유만으로 그 말을 믿지 말라”고 가르친 대로 그는 의심하면서 배우는 습관을 키웠다.

그는 고대 학자들이 2천년 전에 이미 정립해 놓은 수학 규칙을 스스로 발견하는 데에서 기쁨을 찾았다. “나는 공식을 발견하고 싶었다. 그리스인이든 바빌로니아인이든 누군가에 의해 이미 풀렸다는 것은 내게 아무 상관이 없었다. 모든 문제는 나의 문제였고 나는 여기에서 재미를 얻어야 했다.”

그는 한때 브라질 물리학연구센터에 있으면서 학생들을 가르친 적이 있었다. 어느 날 그는 학생들에게 강의실 너머로 보이는 바다를 가리키며 빛이 바다에 반사되면 편광효과(偏光 : 빛의 일부만 통과하는 현상)가 발생한다는 걸 설명했다. 학생들은 그걸 보고 아주 재미있어 했지만, 편광이 발생하는 이론과 바닷물 색깔이 푸른 이유를 서로 연결시키지 못했다. 학생들은 그저 모든 것을 그냥 암기할 뿐 그게 어떻게 응용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파인만이 즐겨 타던 밴


파인만은 1년 간의 브라질 체류를 마치고 소감을 말하는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브라질에는 물리학을 배우는 어린이들이 그렇게 많고 미국 아이들보다 훨씬 일찍 시작하는데 브라질에는 유명한 물리학자가 별로 없다는 것이 놀랍다.”

50여 년 전 이야기지만 우리에게도 뼈아프게 느껴지는 이유는 2천 년대에 사는 우리나라도 그 당시의 브라질과 똑같기 때문이다. "한국엔 유명한 물리학자가 별로 없다"라고 바꿔 말해도 될 정도다. 배우긴 해도 그걸 이해하지 못하고 응용할 줄 모른다. 시험을 보기 위해, 직장에 취직하기 위해 그저 외운다. 배우는 것은 책상 머리에서만 머물 뿐 실생활로 이어지지 않는다. 배움은 배움 자체의 의미를 잃은 채 생존의 도구로 전락한지 오래고 회복될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정리하면, 배운다는 것은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것들을 의심하면서 파고 들어가는 과정이다. 학교나 책에서 습득한 것들이 진짜 그렇게 되는지 스스로 밝히려는 노력이다. 그리고 거기서 멈추지 않고 배운 바가 실생활에 어떻게 응용할 수 있는지 연구하는 것이 배움이다.

배움 = 의심 + 응용


그렇다면 왜 우리는 배움의 과정에서 항상 ‘의심의 눈초리’를 거둬서는 안 되는 걸까? 아래의 그림을 보라. 두 그래프의 ‘수직상’ 거리는 어떻게 되는지 다음 중 옳은 것을 골라 보라.

사용자 삽입 이미지

(1) 두 그래프는 서로 가깝게 다가간다
(2) 두 그래프는 서로 멀어진다
(3) 두 그래프는 항상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다

모르긴 해도 아마 많은 사람들은 (1)을 택했을 것이다. 정답은 (3)이다. 의심스럽다면 직접 자를 가지고 재 봐도 무방하다. B 그래프는 A 그래프를 아래 방향으로 그대로 수직 이동시킨 것이기 때문에 수직상의 거리는 항상 일정하다. 내가 위에서 ‘수직상’ 거리라고 작은 따옴표로 묶어 강조했음에도 그걸 눈 여겨 보는 사람은 드물다.

미국의 통계학자인 윌리엄 클리블랜드(William Cleveland)는 두 그래프가 근접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사람들이 수평상의 거리는 잘 측정하지만 수직상의 거리를 측정하는 데 있어서는 미숙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또한 그는 우리의 눈이 가장 가까운 거리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두 그래프가 점점 근접하는 것처럼 보인다면서, 인간의 심리적인 능력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조작에 의해 쉽게 속아 넘어갈 수 있다고 말한다. 이것이 우리가 무언가를 학습할 때 눈에 보이는 대로 믿지 말고 항상 의심해야 하는 이유다(배움 = 의심).

또한, 배움은 반드시 응용을 통해 완성되어야 한다. 독일의 심리학자 디트리히 되르너(Dietrich Dörner)는 실험 참가자들을 A, B, C 세 팀으로 나눈 다음 그들에게 복잡한 시스템을 다루는 방법을 교육시켰다. 그는 일부러 A팀과 B팀에게는 상당히 자세하고 정교한 절차를 가르친 반면, C팀에게는 체계적이지 못한 방법으로 대충 가르쳤다.

당연히 A팀과 B팀은 교육에 대해 만족감을 나타냈고 C팀은 교육이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그러나 되르너가 교육의 결과를 응용해야만 풀 수 있는 과제를 내 주자 세 팀의 실제 성과는 별 차이가 없었다. 어찌된 일일까?

우리는 보통 어떤 지식을 알고 나면 스스로 ‘똑똑해졌다’고 착각하기 쉽다. 파인만이 실망감을 표했던 브라질 학생들도 아마 그랬을 거다. 하지만 그 지식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유창하게 말할 수 있다 해도 현실에서 그걸 사용해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 커지지는 않는다. 많은 학자들의 연구 결과다. 되르너는 “지식의 ‘습득’은 그 자체로 아무런 가치가 없으며 경험을 대신하지도 못한다”고 말한다. 반드시 응용을 통해 체득된 지식만이 의미가 있는 것이다(배움 = 응용).

배우는 과정에서 의심하고 응용하는 자세를 꾸준히 한다면 미처 알지 못했던 오묘한 의미를 깨달을 수 있으며 기초를 다질 수 있다. 단순히 외우기만 하면 그건 ‘문장’에 지나지 않는다.

또한, 이론으로 배웠거나 상식으로 아는 것들이 사실 옳지 않다는 걸 깨달음으로써 생활에 도움을 얻을 수 있다. 만일 비행기에 2살 미만의 유아를 데리고 탑승할 때 어른의 무릎에 앉히지 말고 반드시 유아용 좌석에 앉히도록 의무화한다면 많은 부모들은 별 의심 없이 환영 의사를 보일 것이다. 유아용 좌석이 안전을 보장한다는 걸 상식으로 배워왔기 때문이다. 자동차의 유아용 시트가 안전하듯이 비행기도 마찬가지 아닐까?

그러나 실은 유아용 좌석이 유아의 생명을 위협하는 것으로 나타났다(자동차의 유아용 시트도 안전을 더 위협하긴 마찬가지다. 많은 운전자들이 시트의 안전함만 믿고 더 난폭하게 운전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아이를 반드시 유아용 좌석에 태워야 한다면 비싼 항공기 요금을 그만큼 더 내야 한다. 그래서 비행기보다 훨씬 위험한 자동차로 여행하는 걸 선택하게 되고, 안전을 위해 내린 조치가 오히려 더 많은 아이들의 생명을 잃게 만든다. '잘' 배우지 않으면 위험해질 수 있는 것이다.

오늘은 일견 당연한 듯이 보이는 질문을 던져보자. 그리고 그것이 우리의 삶에 어떤 의미로 응용될 수 있는지 고민하자. 삶의 지혜는 단순하며 자명한 듯 보이는 질문에 답하고, 지식과 현실을 연결하려는 노력을 통해 체득되는 것임을 기억해 두자. 삶은 늘 배우는 과정이니까 말이다.
 

Comments

  1. Favicon of http://appleii.tistory.com BlogIcon appleii 2008.08.27 11:21

    남의 말을 잘 믿는 사람들의 특성 때문이 아닐까요? 의심이 많은 사람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분위기 때문인것 같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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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avicon of https://infuture.kr BlogIcon 유정식 2008.08.27 22:05 신고

      사람들은 남의 말을 잘 믿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죠. 잘 믿어야 할 경우엔 안 믿고, 믿지 말아야 할 때는 잘 맏는 경향이 있죠. 댓글 감사합니다.

  2. 박종식 2008.08.27 16:08

    한국엔 유명한 물리학자가 "별로" 없다?
    물리학을 배우고 있는 학생으로서 "별로" 공감가는 말이 아니네요.
    인구대비 유명한 물리학자를 따져봐야 하지 않을까요
    인구 12억(?)의 중국에서 12명의 유명한 물리학자가 있다면 한국에선 1명의 유명한 물리학자만 나와도 중국보다는 많다고 생각이 되네요.
    매스컴에 나와야 유명한 물리학자라고 말씀하시면 저도 반박을 하지는 못하겠지만 물리를 전공하는 분야에서는 한국의 물리학자들은 꽤 유명합니다.
    그렇게 유명한데 왜 노벨상을 못받을까요?
    제 생각엔 돈과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턱없이 모자란 연구비로 큰 연구성과를 올리는 많은 연구그룹들이 한국에는 많이 있습니다. 물론 외국의 10배나 많은 연구비를 받으면서 1/10의 연구성과를 내고 있는 그룹도 있지만요. 하지만 그렇게 많은 연구비를 받는 팀은 극소수에 불과하지요.
    돈과 기회가 차이가 있는데 그 결과는 당연히 차이가 있다고 생각이 듭니다.
    만약 돈과 기회를 스스로 못찾는다고 하시면 그건 과학도들의 배우고 연구하는 자세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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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avicon of https://infuture.kr BlogIcon 유정식 2008.08.27 22:08 신고

      네. 박종식님의 말씀 십분 동감합니다. '한국엔 유명한 물리학자가 별로 없다'라는 말은 교육열로는 세계 1위면서, 과학적 업적은 그것에 매우 미치지 못하는 현상을 역설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진짜로 유명한 물리학자가 있는지, 혹은 연구비의 규모가 얼마인지 등과는 다른 이야기입니다. 이 점 이해를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3. Favicon of http://heartone.tistory.com BlogIcon 심장원 2008.08.27 16:13

    백문이 불여일견이요, 백견이 불여일행이라 하는데
    저도 배운 걸 응용하고 경험하려 더 노력해야겠습니다.
    삶은 늘 배우는 과정이라는 선생님 말씀 지당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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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avicon of https://infuture.kr BlogIcon 유정식 2008.08.27 22:10 신고

      심장원님, 고맙습니다. 배운 것에서 그치면 배우지 않은 것만 못하다는 말을 파인만 선생께서 일갈하고 있습니다. 그가 그립네요.

  4. 나그네 2008.08.27 17:57

    얼마전 독일의 물리학자 막스 플랑크에 관한 다큐를 봤습니다. 학문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사상이라는것이 어지러웠던 시대를 거치며(나찌정권) 저렇게 큰 학자가 탄생했다는것이 놀랍더군요. 학문이라는것은 어떤 타이틀이나 명예가 목적이 아니라, 진리에 대한 싸움이라고 하더군요. 그리고 지금 우리 사회에는 이 학문에 대한 진정한 의미가 얼마나 남아있고, 또 그 진정한 의미를 위해 공부하는 이들이 얼마나 있을지...
    황..박사, 큐레이터 신..씨 이런 괴물들을 탄생하게 한 이 땅에는 분명 학문에 대한 의미가 퇴색되어져 있는듯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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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avicon of https://infuture.kr BlogIcon 유정식 2008.08.27 22:18 신고

      암기와 입시를 강조하는 이런 교육 풍토가 미래의 막스 플랑크들을 조기에 없애버리는 것은 아닌지 염려스럽습니다. 이 글 제목도 그런 의미에서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5. ertai 2008.08.27 19:25

    저도 물리학을 공부하는 한 학생입니다만..

    나름 외국에서 교수님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한국출신 물리학자로 저명하신분들 꽤 계십니다.

    요즘 물리학의 추세가 우주라든가 소입자같이 연구하는데 돈이 많이 들고 거대한 시설이 필요한 경우가 많아서..

    매스컴에 막 실릴정도의 경우가 적을 뿐 이라고 봅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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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avicon of https://infuture.kr BlogIcon 유정식 2008.08.27 22:13 신고

      네. 유명하신 우리나라 물리학자 분들 많다는 것을 부정하는 글은 아닙니다. 교육열에 비해 과학적 업적의 결과가 미치지 못한다는 의미로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6. CostaCurta 2008.08.27 20:43

    이휘소 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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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avicon of https://infuture.kr BlogIcon 유정식 2008.08.27 22:14 신고

      네. 돌아가지 않으셨다면 노벨상을 탈 만한 인물이었습니다. 고맙습니다.

  7. 모르겠군요 2008.08.27 20:49

    한국에도 저명하신 물리학자가 계신데... tv출연을 안해서 그런건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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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avicon of https://infuture.kr BlogIcon 유정식 2008.08.27 22:21 신고

      댓글 감사합니다. tv출연을 통해 얻는 인기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토록 교육열이 높은데, 그 결과가 이것 밖에는 안 되는 것인지, 뭔가 방향이 틀린 것은 아닌지 되돌아 보자는 의미로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8. 민광 2008.08.27 20:57

    저도 들은적 있어요. 강상관계(strong-corelation system)를 연구하시는 유명한 한국인 물리학자가 있다고 들었거든요. 찾아보니 정상욱 박사님이라고 러트거스대학교에서 물리학을 가르치는 교수님이시라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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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avicon of https://infuture.kr BlogIcon 유정식 2008.08.27 22:16 신고

      전 물리학 분야에 대해 잘 모르지만, 유명하신 분들이 꽤 많을 거라 짐작됩니다. 파인만이 지적했던 브라질의 경우처럼, 우리가 겉핥기로 공부를 하는 건 아닌가 반성해야 한다는 의미로 제목을 그렇게 붙인 것입니다. 댓글 감사합니다.

  9. 2008.08.27 22:09

    위의 그래프 문제에서 정답은 1번과 3번입니다. 어떤 그래프를 수직선상으로 내렸다는 것이 수직선상의 거리가 일정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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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avicon of https://infuture.kr BlogIcon 유정식 2008.08.27 22:17 신고

      흥미로운 주장이십니다. 좀 더 설명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 Favicon of http://appleii.tistory.com BlogIcon appleii 2008.08.27 22:34

      저도 궁금합니다. 자세히 설명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A 그래프의 y값에서 B 그래프의 y값을 뺀 값은 항상 일정한 상수가 나온다는 것이 본문의 의도인것 같습니다만, 용어상의 정의가 잘못된 것인가요. 아니면, 수학적인 다른 의미가 있다는 것인가요.

    • 김정호 2008.08.27 23:01

      저도 이 문제를 보면서 의문이 들었습니다. 보통 그래프를 수직이동하면 y값이 일정한 차이를 두게 됩으로서 그래프의 간격이 일정해지는게 보통입니다. 하지만 위의 그래프는 점점 그래프의 기울기가 증가하는 가속도의 그래프와 갔습니다. 때문에 일정한 간격을 두겠지만 극한에 이르게 되면은 그래프가 서로 만나지 않을까 합니다.

    • Favicon of http://appleii.tistory.com BlogIcon appleii 2008.08.28 21:37

      두 그래프의 차이점은 상수항 뿐입니다. 따라서 두 그래프의 기울기는 같습니다. A그래프의 기울기가 증가하면 B그래프의 기울기도 똑같이 증가합니다. 이것은 무한히 증가시켜도 마찬가지입니다. 두 그래프의 기울기가 같은 크기로 증가하므로 두 그래프는 가까워지지 않습니다.

    • 김정호 2008.08.29 22:28

      애플님 그렇게 따지면 애초에 극한이라는 생각을 할수가 없습니다. 예를 들면 지수함수나 로그함수같은것을 볼때 아무리 무한히 간다고 해도 점근선에 다을수가 없습니다. 이론적으로는 하지만 극한의 경우로 따졌을때 그 수치는 미미 하면 무시할 수준이므로 무시한다고 하죠 때문에 미분과 적분이 성립하는건데 님이 말한대로라면은 미분과 적분도 성립이 불가능 한거 아닌가요??<제 수학적 지식이 모자라서 이런 말 할수도 있으니 불쾌감 가지시지 마시고 그냥 반론만 ㅎㅎㅎ 가끔다가 그냥 막 까대는 사람들이 있어서>

    • Favicon of http://appleii.tistory.com BlogIcon appleii 2008.08.30 12:53

      극한값은 거의 근접하니까 무시하라는 값이 아니라, 그 값에 근접한다는 말을 대신한 것입니다. 극한값이 2가 나왔다는 것은 2에 근접해 나간다는 뜻이지. 2에 가까우니까 2라고 하자는 뜻이 아닙니다. 즉, 극한값이 2라는 것은 '점점 2에 가까워진다.' 입니다. 그리고, 수학적인 문제를 가지고 얘기하는 것이므로 전혀 불쾌하지 않습니다.

  10. LastRadiance 2008.08.28 00:46

    현재의 한국의 교육제도를 꼬집을 수 있는 주옥같은 글이네요.
    현행 교육제도에서는 수능에 올인하다보니 단편적 지식만 익히려는 습관을 성인이 되서도 버리지 못하게 되는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간단한 예를 들자면 고등학교 인문계열 교과서인 윤리부문의 사상사를 배우다보면 데카르트의 "방법적 회의"라는 명제를 공부하게 되는데 학생들은 단지 '데카르트가 그런말을 했구나'하고 넘어가게 되죠. "모든것을 의심해보라"라는 명제를 공부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실행할 생각조차 하지 않구요. 작금의 이런 현실이 기득권층이 만들어놓은 부당한 편법과 계층장벽을 자라나는 학생들이 의심없이 받아들이게 되는 상황을 만들게 되고 이에따라 '악법도 법이다.'라고 멍청하게 떠들대는 사람이 하나둘 나오는게 아닌가 생각되어 걱정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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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avicon of https://infuture.kr BlogIcon 유정식 2008.08.29 15:41 신고

      고맙습니다. 배우면서 한번쯤 의심할 만한 지식도 그냥 넘어가는 게 비일비재 합니다. 교육하는 사람 입장에서 보면 편하겠지만, 교육 받는 사람은 그 시간 만큼 미래를 잃는 것이겠죠.

    • 김정호 2008.08.29 22:31

      저도 동의합니다. 그리고 최근에 어느 한 교수님이 말씀하시던데 악법도 법이다라는 말을 소크라테스는 하지 않았다고 하더군요 어떠한 이유로 와전됐다고 하던데 잘기억이 안나네요 ㅎㅎ

  11. Han 2008.08.28 09:22

    많이 공감합니다. 외국에 오래살진 않았지만, 그쪽 아이들을 격어본 바로는 교육의 방식과 사고방식, '책임'이라는 것에서 많이 다른것을 느꼈습니다. 글쎄요.. 전 주입식 교육에 대해 전부 나쁘다고는 생각을 안합니다. 이 주입식 교육덕분에 우리나라 학생들이 세계에서 1~2위 가는 성적을 올리곤 하지 않습니까? 하지만 역시 창의력이나 적응력에서는 떨어지다 보니.. 주입식교육과 외국식의 창의적 교육이 접목될수 있으면 좋을텐데 말이죠.. 뾰족한 대안을 내좋을 만한 머리가 아니라 그냥 한마디 거듭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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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avicon of https://infuture.kr BlogIcon 유정식 2008.08.29 15:39 신고

      파인만이 꼬집은 것도 바로 Han님이 말씀하신 것과 같습니다. 생각할 줄 아는 방법을 가르쳐야 하는데, 지식만 주입시키는 우리나라 교육...도대체 언제쯤 나아질까 싶습니다.

  12. 마구잡이 2008.08.28 11:46

    이건 물리학의 문제가 아니라 교육과 철학의 문제네여..문제는 사물의 본질을 꿰뚫어 볼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교육을 한다는 것은
    기술적으론 별로 어렵지 않다고 생각됩니다..단지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할때보더 더한 어려움이 있을거라 봅니다...즉 결국에는 정치의 문제로 귀결되는 것이라 봅니다..참으로 우울하네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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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avicon of https://infuture.kr BlogIcon 유정식 2008.08.29 15:40 신고

      네..교육과 철학의 문제죠. 철학 있는 교육 정책이 절실합니다. 공씨 스타일 말구요. 감사합니다.

  13. Favicon of http://blog.naver.com/morpheuz82 BlogIcon 구차니 2008.08.28 12:21

    그래프 하나에 많은 생각을 하게 되네요 ㅎ
    좋은 내용 잘보고 갑니다만.. 확실히 우리 나라의 삐뚜러진 학습열은 어떤 방향이던지 바로 잡아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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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avicon of https://infuture.kr BlogIcon 유정식 2008.08.29 15:38 신고

      댓글 감사합니다. 요즘 국제 중학교 신드롬을 보니, 우리나라 교육열이 삐뚤어진 게 분명합니다. 교육열로만 본다면 노벨상을 수십 개 탔을 만한 국가가 바로 우리나라죠.

  14. Lets 2008.08.30 09:40

    음.. 당신이 이 글 다음에 쓴 여자가 남자보다 수학을 못한다고? 란 글을 보다가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서 이 글도 보게 되는 군요.

    설명을 하기 위한 몇가지 예를 보면서, 저도 당신에 대한 편견에 사로잡이게 되는 듯 합니다.

    "당신은 과학자가 아니라 수필가입니다. 제발 당신의 감성을 과학으로 가리지 마세요. 그게 솔찍해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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