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런 폭스(Myron L. Fox) 박사는 1973년에 '의료인 교육에 있어 수학적 게임이론의 활용('Mathematical Game Theory as Applied to Physician Education)'이란 제목의 강연을 3차례 진행한 바 있습니다. 그는 이 강연을 병원 관리자, 심리학자, 정신과 의사, 교육자, 사회복지사 등 의료와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실시했지요. 폭스 박사에게서 교육을 받은 사람들은 직업상 모두 고학력자였습니다.

폭스 박사는 강의가 끝나고 나서 수강생들과 함께 토론하는 시간을 가졌고, 그날 강의가 어땠는지 설문을 받았습니다. 거의 모든 참석자들이 폭스 박사의 강연이 굉장히 흥미진진하고 수학적 게임이론이 일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고 평가했습니다.

폭스 박사는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놀랍게도 그는 고용된 배우였습니다. 그는 게임이론의 '게'자도 모르는 철저한 문외한이었죠. 강의의 모든 내용을 달달 외워서 말했을 뿐입니다. 적절하게 옷을 차려 입고 근엄하고 확신에 찬 발성으로 '박사'라는 권위를 표했습니다.

마이런 폭스 박사(?). 정말 권위자 같지 않습니까?


그가 강의 도중에 말한 대사를 면밀히 들어보면 서로 모순되는 것도 많고, 인용한 참고문헌도 엉터리고, 의미 없는 개념들을 멋대로 화려하게 나열한 것에 지나지 않음을 알아차렸겠지만, 참석자 중에서 그가 엉터리 박사라는 사실을 눈치 챈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이처럼 권위를 나타내는 말을 적절히 섞고 연출을 잘하면 사람들을 쉽게 속아 넘어가게 만들 수 있습니다. 이를 '폭스 박사 효과(Dr. Fox effect)'라고 말합니다. 

1996년에 이와 비슷한 일이 있었습니다. 물리학자 앨런 소칼(Alan Sokal)이란 사람은 과학과 합리성을 비판하는 논문을 '소셜 텍스트(Social Text)'라고 불리는 문화연구 학회지에 제출했습니다. 이 학회지는 과학을 비판하기로 유명한 잡지였습니다. 하지만 소칼의 논문은 과학에 대해서 엉뚱하게 비판하는 주장들, 그러니까 별 근거 없이 과학을 비판하는 내용들을 여기저기서 끌어모아 짜깁기한 것에 불과했습니다. 

앨런 소칼



애석하게도 학회지의 편집자들은 소칼의 짖궂은 장난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엄격한(?) 심사를 거쳐 소칼의 논문을 학회지에 싣습니다. 소칼이 이렇게 장난을 친 이유는 인문학자들이 과학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면서 무조건 비판만 가한다는 점을 꼬집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이해가 되지 않는 말이라도 그럴 듯하게 포장하면 '먹힌다'는 것을 보여준 단적인 사례입니다.

사람들은 권위에 약합니다. 침팬지들이 우두머리에게 복종하고 충성함으로써 생존의 안녕을 보장 받는 것처럼 인간의 DNA에도 그런 본능이 남아있는 모양입니다. 권위를 나타내는 행동이나 말투, 눈빛, 분위기, 남성성을 강하게 풍기는 냄새 등을 통해 후광효과를 연출하면 대개는(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지만) 꼼짝없이 권위에 굴종하고 맙니다. 뭔가 의심이 든다 해도 권위자가 보는 앞에서는 그의 심기를 건드릴 만한 언사를 하지 못하죠.

게다가 사람들은 자신이 잘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겉으로 드러내려 하지 않습니다. 모르면서도 "아, 정말 훌륭한 내용이군요"라면서 맞장구를 칩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으로 인식되어 '잘 아는 무리'로부터 방출되기를 원하지 않기 때문이죠. 

몇몇 모임에 가보면 일반인들을 위해 무언가를 설명해 준다고 하면서도 자기네들만이 아는 용어를 남발하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아마도 그런 용어를 쓰는 것이 습관이 되었고, 또 그 용어를 써야만이 개념을 옳게 정의하는 것일지 모릅니다. 

흥미롭게도 아무도 그 용어가 무슨 뜻인지 설명을 요구하는 발언은 하지 않습니다. 청중의 자격으로 그 자리에 있던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사람들의 이러한 '이중적인' 행동으로 인해 '배우' 폭스 박사는 강연 내용이 훌륭하다는 평가를 받았고 소칼의 엉터리 논문이 자칭 권위지에 게재된 것이죠.

여러분은 전문가들이 상대방을 배려해서 좀더 쉽고 단순한 말로 자신의 주장을 표현해주길 원한 적이 있을 겁니다. 법률용어가 너무 어렵다, 쉽게 풀어서 말하면 될 것을 왜 에둘러 표현하냐, 고 말입니다.

하지만 "쉽고 간단한 말로 표현하면 전문가들은 유명해질 수 없고 일자리를 얻을 수도 없다. 그렇게 하면 사람들이 전문가의 말을 존중하지도 않는다. 여기에 지식인들의 고민이 있다"라고 노엄 촘스키는 말합니다. 전문가들이 쉽게 말해주길 원하면서도 동시에 쉽게 말하는 전문가를 신뢰하지 않는다는, 사람들의 '이중성'을 꼬집는 말입니다.

이러한 '이중성'이 껍데기 뿐인 권위자들이 판을 치게 만드는 원동력입니다. 평소에는 권위를 더해주고 조작하는 여러 장치에 대해 혐오감을 드러내면서(입으로는 그렇게 이야기하면서) 정작 그런 장치를 해제시킨 '진짜 순수한 권위자'들을 평가절하하거나 눈길조차 주지 않습니다. 과학의 대중화에 앞장 섰던 칼 세이건을 '방송인'일 뿐이라고 격하시켰던 것처럼 말입니다.

허세만 가득한 권위자들을 몰아내고 '순수한 권위자'에게 온당한 찬사를 보내는 사회, 전문가를 향해 당당하게 설명을 요구하는 사회, 그런 사회를 과연 만들 수 있을까요? 권위에 대한 맹목, 혹은 이중성에 대해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참고 도서 : '촘스키처럼 생각하는 법')
(*참고 논문 1 : The Doctor Fox Lecture )
(*참고 논문 2 : A Physicist Experiments with Cultural Studies )
(*참고 동영상 : http://ecclesiastes911.net/doctor_fox.htm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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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1. 인스프리 2010.12.09 09:44

    알고 있는바를 가장 쉽게 설명 해줄 수 있는 사람이 정말 많이 아는 사람이라고 들었는데 그 말이 정답인가 보네요~^^
    오늘 하루 수고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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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avicon of https://infuture.kr BlogIcon 유정식 2010.12.15 22:50 신고

      어설프게 아는 사람들은 어렵게만 설명하려 들죠. 그래야 자기 권위가 선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 저도 경계하는 바입니다. 고맙습니다.